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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득호도 (難得糊塗) / 정판교

부흐고비 2008. 1. 22. 09:44

 

難得糊塗




‘난득호도(難得糊塗)’는 정판교(鄭板橋)가 남긴 유명한 유묵으로 중국에서는 술 이름으로 뿐만 아니라 각종 기념품 등에 트레이드마크화 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糊塗’란 중국어에서 어리석음, 흐리멍텅함, 똑똑치 못함, 엉망임, 분명치 못함, 애매모호함을 가리키는 단어라고 하니 ‘난득호도’ 란 바보인 척하기는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가 가능하겠다.


▣ 저자 정판교

양주팔괴(揚州八怪)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강소성 홍화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섭(燮), 판교는 그의 호이다. 옹정 10년(1732년)에 향시에 합격하고, 건륭 원년(1736년)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산동성 범현 현령, 유현 현령을 역임했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후 많은 고아들을 돌보았고, 가뭄이 들면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 자신의 녹봉을 모두 들이는 등 청렴한 관리로서의 모범을 보였으나, 건륭 17년 이재민 구휼문제로 상관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관직을 잃었다. 이후, 그는 낙향하여 청빈하게 살면서 난, 대나무, 돌을 그리며 일생을 보냈다.


제1편 爲人 : 낮추는 생존의 기술

1장 內智外愚 : 속은 지혜로우나 겉으로는 어리석다 - 모자라는 척하는 법
2장 內巧外拙 : 안은 교묘하나 겉으로는 서투르다 - 미련한 척하는 법
3장 不飛不鳴 : 날지 않고 울지 않는다 ― 벙어리인 척하는 법
4장 委曲求全 : 자신을 굽혀 일을 성사시켜라 - 순진한 척하는 법
5장 大柔若剛 : 크게 유약하나 강한 척하라 - 용감한 척하는 법
6장 大進若退 : 크게 전진하나 후퇴하는 척하라 - 패한 척하는 법
7장 居安思危 :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라 - 두려운 척하는 법
8장 無爲而爲 : 행함이 없이 행하라 - 나태한 척하는 법

제2편 辦事 : 물러섬으로 전진하는 책략

1장 深藏若虛 : 깊이 감추어 마치 없는 것처럼 하라 - 드러내지 않고 일을 행하는 법
2장 容貌若愚 : 용모를 마치 어리석은 것처럼 하라 - 모호하게 일하는 법
3장 能忍則安 : 인내할 수 있어야 평안하다 - 참을성 있게 일하는 법
4장 順水推舟 : 물길을 따라 노를 저어라 -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일하는 법
5장 欲擒故縱 : 잡기 위해 놓아주라 - 융통성 있게 일하는 법
6장 緘口自重 : 입을 다물고 자중하라 - 비밀을 지키며 일하는 법
7장 藏器于身 : 무기를 몸에 감추어라 - 위장하여 일하는 법
8장 托陰行陽 : 음을 돋보이게 하여 양을 행하라 - 빌려서 일하는 법

제3편 處世 : 화합의 원칙

1장 和氣致祥 :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 - 온화한 마음자세를 배워라
2장 吃虧是福 : 손해 보는 것이 바로 복이다 - 족함을 아는 마음자세를 길러라
3장 以德報怨 : 덕으로 원수를 갚아라 ― 관용의 마음을 가져라
4장 自得其樂 : 스스로 그 기쁨을 얻어라 - 평상심을 잊지 마라
5장 戒急用忍 : 급한 것을 경계하고 인내를 이용하라 - 의연한 태도를 단련하라

제4편 社交 : 누구와도 원만하게 처세하는 기교

1장 說着易, 做着難 : 말하기는 쉬워도 행동하기는 어렵다-친구를 사귐에 있어서의 바보철학
2장 是也朦朧, 非也朦朧 : 옳아도 몽롱하고 옳지 않아도 몽롱하다-대화 속에 담긴 바보철학
3장 合不得, 分也不得 : 더해서도 안 되고 나누어서도 안 된다 - 가정에서의 바보철학

 

 



제1편 위인爲人 - 낮추는 생존의 기술

內智外憂(내지외우) : 속은 지혜로우나 겉으로는 어리석다 - 모자라는 척하는 법

‘속으로는 지혜로우나 겉으로는 어리석다‘는 말이 총명한 사람의 특징이라면,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 는 말은 잔꾀를 부리는 사람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큰 지혜를 지녔으되 어리석은 척하라. ‘ 이는 고금을 통틀어 처세의 지혜를 말하는 가장 오묘한 진리이다. <難得糊塗>

 

지혜로우나 어리석은 척하고, 기량이 뛰어나나 우둔한 척하는 것은 자고로 총명한 사람의 본질이다. 따라서 총명한 사람은 늘 숙이고 낮추지만, 미련한 사람은 스스로 총명한 척하여 결국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된다. <太平廣記>에 다음과 같은 고사가 나온다. 한 노나라 사람이 긴 장대를 가지고 성 안으로 들어갈 궁리를 하다가 먼저 장대를 세워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장대가 성문보다 높아서 들어갈 수 없었다. 이번에는 장대를 눕혀서 들어가려 했지만 장대가 성문의 폭보다 길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이때 한 노파가 그에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나는 성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주 많은 일들을 보아왔네. 장대를 자르면 들어갈 수 있을 텐데 왜 그러고 있는 것인가?” 이리하여 노나라 사람은 노파의 말대로 장대를 잘라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만약 누군가가 그에게 장대를 손아귀에 쥐고 들어가면 된다고 말해주었더라면, 그는 장대를 자르지 않고도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한 것은 그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바보 같은 노파를 만났다는 점이다. 노파는 스스로 총명한 줄 알고 잘난 체하며, 장대를 잘라서 성 안으로 들어가는 ‘묘책’을 내놓았다. 우리는 결코 ‘노나라 사람’처럼 스스로 총명한 줄 아는 사람의 말을 무턱대고 믿어서는 안 되며, 스스로 총명한 줄 아는 사람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사에 ‘총명한 척’ 미련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오래 전부터 중국인은 ‘감추고 가리는 것’을 좋아했다. 늘상 자신의 좋지 않은 점이나 부족한 것들을 감추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감추고 가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어수룩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어수룩하고 바보스러운 행동은 늘 다른 사람들의 양해를 얻을 수 있었고, 사람들은 흔히 그러한 행동을 마땅히 인정해줘야 하는 결점으로 인식해왔다. 사람이 어수룩한 체할 때는 항상 다음의 행동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약 단순함이 자신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아예 얼굴을 두껍게 하여 취한 척, 잘 안 들리는 척, 미친 척, 죽은 척하여 상대로 하여금 어찌할 도리가 없게 만들어야 한다. 위·진 시대의 사람 阮籍은 죽림칠현 가운데 한 명이었다. 위나라의 권신 司馬昭는 원적과 사돈을 맺고자 했다. 하지만 원적은 당시의 혼탁한 조정의 기류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원적은 결국 그로부터 60일 동안을 연일 술에 취한 채로 지냈다. 진짜든 취함을 가장한 것이든 그는 이 60일 동안뿐 아니라 거의 평생 동안 술에 취해서 지냈다. 당시의 조정은 문인들이 깨끗하게 살다가 좋은 끝을 보기가 어려울 만큼 험악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그토록 혼탁했던 시대를 살았던 관리들은 때로 어수룩하고 바보 같은 행동으로 곤경을 모면하곤 했다.

옛 성현들은 “용감하나 두려운 척하고, 지혜로우나 어리석은 척하라”고 말했다. ‘지혜로우나 어리석은 척하는 것’은 상대가 생각지 못한 틈을 타서 제압하는 담판의 기교로서 외교나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응용되어왔다. 언젠가 일본 항공업계를 대표하는 세 명의 일본인과 미국의 비행기 제작회사 사이에 협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일본이 바이어였고, 미국은 팔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미국 측에서 적극적으로 제품에 대한 선전을 전개했다. 그들은 회의실 내에 여러 기종의 사진을 가득 붙여놓고, 많은 광고자료와 사진들을 비치해 두었다. 그들은 2시간 30분에 걸쳐 3대의 영사기를 동원하여 할리우드 영화를 연상케 할만 한 회사소개 영상물을 보여주었다. 자신들의 협상능력을 강화하고, 멋진 회사소개를 하기 위해서였다. 상영이 끝난 후 미국 측 고위인사가 자신 있게 일어나서 전등을 켰다. 그의 얼굴에 필승의 신념이 찬 미소가 배어 있었다. “보신 소감이 어떠신지요?” “우리는 이해를 못했습니다.” 뜻밖에도 한 일본 대표가 이렇게 대답했다. “언제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까?” “전등을 끄고 영사기를 틀어서 상영하는 순간부터 못 알아들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미국 측 협상 대표는 절망감을 느꼈다. 하지만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다시 영사기를 켰고, 이번에는 앞서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상영했다. 상영이 끝난 후 일본 대표단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하지만 일본 대표단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국 측 협상 대표는 화난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그럼, 여러분은 우리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랍니까? 우리가 한 것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니 묻는 것입니다.” 이때 일본 측 대표 한 사람이 천천히, 그리고 침착하게 자신들의 조건을 조목조목 늘어놓았다. 결국, 일본 항공사 대표단은 자신들조차 예상하지 못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지혜로우나 어리석은 척한다는 것은 순리에 맡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태연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또한 짐짓 가부를 단언하지 않는 자세를 가장하는 것이다. 태도를 분명히 밝히지 않고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자신의 강점을 일시에 드러내어 상대가 손을 쓰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혜롭되 어리석은 척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상대방의 책략에 대한 대응방법을 이미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內巧外拙(내교외졸) : 안은 교묘하나 겉으로는 서투르다 - 미련한 척하는 법

예부터 성공한 사람은 외부 사물로 인해 일희일비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사람은 때로 기쁘고 때로는 근심을 피하기 어렵지만 결코 감정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기쁜 일은 얼굴에 드러내도 무방하지만 좋지 않은 일일수록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일단 겉으로 드러내면 감정에 매몰되기가 쉽기 때문이다. 원한도 마찬가지여서 일단 얼굴에 드러나면 감정의 힘이 배로 강해진다. 따라서 성공하고자 한다면 결코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을 해놓고도 사과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사과해야 할 때는 즉시 사과하되, 이것을 형편없다거나 쓸모없다고 느낄 필요는 없는 것이며, 책임지되 비굴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결심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가 사랑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하라. 사랑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는 원천은 바로 내면의 따뜻하고 상냥한 마음이다. 명석한 두뇌, 과감한 결단력, 강한 책임감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인간미가 없다면 일을 떠난 다른 부문에서는 멍청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고 약간의 단점을 가지고 있다. 지나치게 완벽한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이 가까이 오지 않는 법이다.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면 동료와 부하직원들이 당신에게 친밀한 감정을 가지고 다가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신이 귀찮지 않으려면 주제넘게 나서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함부로 남 앞에 나서지 말라는 얘기다. 돌아오는 것은 욕뿐이다.

不飛不鳴(불비불명) : 날지 않고 울지 않는다 ― 벙어리인 척하는 법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은 즉위 후 3년이 다가도록 날마다 음주와 향락에 젖어 있었다. 심지어 그는 ‘간언하는 자는 죽음에 처하리라’라는 방까지 내다 붙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충신들은 간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우선 중신 伍擧가 분연히 일어섰다. “황공하오나, 대왕께 수수께끼를 내고 싶사옵니다. 산등성이에 새 한 마리가 있는데,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으니 이것은 무슨 새이옵니까?” “3년 동안 울지 않았다. 그렇다면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하겠구나! 3년 동안 날지 않았다. 한번 날면 하늘에 닿겠구나!” 말을 마치자 돌연 뜻을 깨달은 장왕이 말했다. “짐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겠노라. 이만 물러가라.” 오거가 물러 나왔지만 그 후로도 장왕의 행동은 그 도를 더할 뿐이었다. 이번에는 대신 蘇從이 의연히 앞으로 나왔다. “그대는 간하는 자는 죽음에 처한다는 방을 보지 못했단 말인가?” “오늘 신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왕께 간하여, 만약 대왕께서 깨달으실 수만 있다면 비록 신이 죽는다 해도 마다하지 않겠나이다.” 마침내 장왕은 신하들의 충성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는 연회를 중단하고 조정대사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주연에서 함께 어울려 놀던 무리들을 엄히 벌하고, 오거와 소종 두 대신들과 국정을 의논했다. 이때부터 초나라는 흥성하여 예전의 영향력을 회복했고, 장왕은 천하를 호령하는 패주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날지 않고 울지 않는다. 는 고사이다. 장왕은 왜 처음 3년 동안 날지 않고 울지 않았을까? 이는 본래 장왕의 숨은 책략이었다. 제후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고, 이로써 진정한 충신을 가려내려는 것이었다. 이는 패업을 이루기 위한 준비였다.

소위 어수룩한 척하는 것은 일종의 위장술이다. 이는 상대를 제압할 목적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억누르고, 여러 치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전략이다.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는 사람은 세상에서 부딪히는 갖가지 굴욕이나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자존심에 얽매이는 경향이 있다. 위·촉·오가 대립하던 삼국시대, 패업을 성취한 촉나라 왕 劉備의 정치력은 바로 얼굴이 두껍다는 데 있었다. 그는 원래 군사력도 정치적 경험도 없는 인물이었다. 그에게서는 정치적 면모를 전혀 볼 수 없었으며, 또한 잘 울기로 유명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동정을 사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울었다. “유비의 강산은 눈물에서 나온 것이다”라는 속담이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눈물을 흘릴 수 있고, 잘 울 수 있고, 진심으로 울 수 있고, 안면을 몰수한 채 울 수 있는 것은 보통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유비의 철판전략이다.


제2편 판사辦事 : 물러섬으로 전진하는 책략

深藏若虛(심장약허) : 깊이 감추어 마치 없는 것처럼 하라 - 드러내지 않고 일을 행하는 법

입신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총명과 지혜이나, 이런 총명과 지혜는 때로 어수룩함에 기대어 드러난다. 정판교는 총명함에도 크고 작음의 구분이 있고, 어리석음에도 진위의 구분이 있다고 했다. 소위 작은 재주를 피우는 것은 진짜 바보의 거짓 지혜이며, 큰 총명함으로 작은 재주를 부리는 것은 거짓 어리석음이자 진정한 지혜라고 말했다. 사람이 어수룩하게 살기는 어려우니, 이는 큰 지혜가 바로 어수룩함 속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난득호도>

무릇 사람 중에는 한평생 늙도록 고생하고 애를 써도 여전히 인생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극한 노력으로 마침내 인생의 참뜻을 깨닫는 사람이 있다. 청대 양주팔괴(揚州八怪:청대에 양주 출신의 8인의 화가)의 한 사람이었던 정판교는 후자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인생의 참뜻을 깨달은 것은 냉정한 세태와 조정의 추악한 실태를 보고 나서부터였다. ‘難得糊塗’, 18세기 이전 중국의 처세관과 인간관계의 지혜가 이 한마디 속에 녹아있으며, 이는 중국인의 전형적인 생존관이 되어왔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정판교는 가히 중국 바보철학의 宗師라 할 수 있다. 정판교의 바보철학에서 ‘어수룩하다’는 말의 뜻은 참으로 오묘하다. 여기서 말하는 ‘어수룩함’이란 분명하고 또렷한 것과 구별되는 인생태도이며, 더 나아가 분명하고 또렷한 것과 상부상조하는 행동표현이다. 따라서 이 말에는 지극히 높은 사상과 실용적인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 인생은 세상에 대한 인식이 깊어짐에 따라 몇 개의 단계로 나뉜다. 어린 시절에는 단순히 좋고 나쁨,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소위 ‘어수룩함’은 존재하기 어렵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사고의 깊이가 더해가게 되어 일의 시비를 명확히 가린다거나 좋고 나쁨의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모호함의 지혜로 처리하고 대응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데, 바로 인생의 이 단계에서 ‘바보철학’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실 냉철히 생각해보면, 생활 속의 많은 개념들은 내적인 함축과 외적인 표현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 하나같이 모호하면서 점진적 변화의 과정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비춰보았을 때, 성공을 추구하는 과정은 많은 우여곡절과 우회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어쩔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조금은 모자란 듯 보여도 무방할 것이다. 어수룩함은 어떤 것과도 비교하지 못할 오묘한 작용을 한다. 인생의 긴 여정 속에서 매사 항상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볼 수는 없다. 대신 인생에서 지극히 중요한 일들 -사업, 인격, 개성, 사랑, 인품 등- 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한순간에 시비를 판별하기 어려운 문제나 득실을 가늠하기 어려운 일에 대해서는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로 대응한다. 이럴 때야말로 어수룩하고 모자란 것이 빛을 발하는 때이다. 시비가 분명한 것도 아름답지만 안개 속에서 보는 꽃도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아름답다면 때로는 어수룩해도 좋을 것이다. 이 또한 우리가 말하는 ‘바보철학’의 모습이다.

容貌若愚(용모약우) : 용모를 마치 어리석은 것처럼 하라 - 모호하게 일하는 법

요즘에는 총명한 사람은 남아돌지만 바보는 부족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지만 진정 총명한 사람은 많지 않다. 진정 총명한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금기를 아는 사람이다. ‘신분이 높으면 사람들의 시기를 받고, 관직이 높으면 주인이 싫어하며, 녹봉이 많으면 원망을 산다.’는 것이다. 한나라 초엽, 천하를 통일한 고조는 長良의 큰 공을 치하하여 그에게 새로이 봉토를 하사하고자 했다. 하지만 장양은 이렇게 말했다. “늙은 몸을 전하께 바쳤고, 전하께서 또한 소신의 계책을 수락하였으니, 이는 주군과 신하의 약속을 실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하께서 제게 봉토를 하사하심은 과한 것이옵니다.” 이렇게 장양은 넓은 봉토를 마다하고 외따로 떨어진 곳의 작은 땅을 하사 받았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공에 자만하거나 욕심을 내지 않았기에 평안한 만년을 보낼 수 있었다. 인류의 고통과 분쟁은 바로 지나치게 영리하고 강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모두가 소박하고, 너그럽고, 부드럽고, 다투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삶은 분명 지금보다 행복해질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좀더 총명해지기를 바라지만 이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사람, 나보다 돈을 더 잘 버는 사람, 나보다 지위가 더 높은 사람, 나보다 더 큰 명성을 누리는 사람이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조금 어수룩하고 멍청하다면 그 또한 인정해야 한다. ‘바보’는 자신을 더 높은 단계로 인도하는 계단이다. ‘바보’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가르침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매일 거울을 보고 “오늘, 너는 바보처럼 살았는가!”라고 자신을 향해 물어봐도 좋을 것이다. 조금은 어수룩하고 멍청하게 사는 게 진정 현명한 삶이다. 바보가 된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부단히 배우고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바보스럽기 때문에 고로 나는 존재한다’ ‘바보스럽기 때문에 고로 나는 성실하다’ ‘바보스럽기 때문에 고로 나는 거리낄 것 없다’ 이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바보스럽고 우둔함은 성공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공을 도와주는 것이다.

能忍則安(능인즉안) : 인내할 수 있어야 평안하다 - 참을성 있게 일하는 법

옛 선현이 말하기를,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 계책을 어지럽힌다고 했다. 인내는 일종의 처세학문으로, 특히 기꺼이 다른 사람 밑에 있고자 하는 보통사람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마음 심心’ 위에 ‘칼 도刀’를 얹은 것이 ‘인忍’이다. 매사에 인내할 줄 알아야 하며, 인내하는 사람일수록 곤경에 처했을 때 더욱 큰일을 이루어낸다. <난득호도>

‘인생에서 십중팔구는 뜻과 같지 않다’는 속담이 있다. 분명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이런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에 칼 하나를 얹은 바보철학을 배우는 것이다. 당대의 시인 장공의 <百忍歌>는 자신의 사욕과 분노를 참는 것에 대해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백인가, 백 번 참을 인을 노래하라. 인내는 대인의 도량이요, 군자의 근본이다. 참으면 여름이 덥지 않고, 참으면 겨울이 춥지 않다. 참으면 가난이 낙이요, 참으면 삶이 영원하다. 귀함도 참지 못하면 기울고, 부유함도 참지 못하면 줄어든다. 劉伶이 명을 달리한 것은 다만 술을 참지 못해서였고, 陣君이 나라를 망친 것은 다만 색을 참지 못해서였고, 石崇이 가산을 탕진한 것은 다만 재물을 참지 못해서였다. 오늘날 죄를 범하는 사람은 모두 참을 忍을 알지 못한다. 고래로 성취한 사람 중에 인내하지 않은 사람이 누구던가. 소인은 참지 못하여 큰 지모를 어지럽히고, 군자는 참을 수 없는 일을 참음으로 큰일을 이룬다. 그러므로 인내하는 사람이야말로 곤경에 처할수록 더욱 큰일을 이룰 수 있다.

孟賞君은 제나라의 재상으로 명망이 높았다. 그의 집안에는 늘 많은 식객들로 북적거렸는데, 식객 중 한 명이 맹상군의 첩과 사통을 하자 어떤 사람이 맹상군에게 그 사정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맹상군이 담담하게 말했다. “미인을 좋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니 더 이상 얘기할 것 없네.” 일년 후, 맹상군은 그 식객을 불러서 말했다. “아직까지 적당한 자리를 주지 못해 마음이 편치 않구먼. 지금 위나라의 국왕이 나와 사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네. 자네에게 마차와 은전을 준비해줄 테니, 위나라로 가서 관리가 되는 것이 좋겠네.” 이 식객은 위나라로 간 후 위나라 왕의 신임을 받아 중용되었다. 후에 제와 위의 관계가 악화되었는데, 위의 왕은 다른 나라와 연합하여 제나라를 치고자 했다. 이때 그 식객이 위 왕에게 말했다. “소신이 위나라로 오게 된 것은 맹상군이 신을 대왕께 천거했기 때문이옵니다. 신이 듣기로는 제와 위의 선왕들께서 훗날 자손들이 절대 서로를 공격하지 않도록 하자는 약조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 지금 다른 나라와 연합하여 제를 치려고 하시니, 이는 선왕의 맹약을 어기는 것일 뿐 아니라 동시에 맹상군의 우정을 저버리는 것이옵니다. 제를 치시겠다면 신이 대왕의 면전에서 목숨을 끊을 것이옵니다.” 이 말을 들은 위왕은 그의 의리에 탄복하여 제나라를 공략하고자 하는 생각을 거두었다. 제의 백성들이 이 소식을 듣고, “맹상군 나리께서 좋은 일을 하시더니, 화가 복이 되었구나. 하며 칭송했다. 당연히, 여기서 말하는 ‘인’은 넓은 가슴, 관대한 도량을 전제로 한다. 이를 가지고 일을 대한다면 모두가 화합하여 친구가 될 수 있다.

藏器于身(장기우신) : 무기를 몸에 감추어라 - 위장하여 일하는 법

예봉이란 본래 칼의 날카로운 끝을 말하는 것이지만, 이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재능을 의미한다. 예봉은 다른 사람을 찔러 상처를 입힐 수도 있고, 자신을 찌를 수도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데 있어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며, 평상시에는 칼집 속에 넣어두어야 한다. 이렇듯 지나치게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면 실패를 자초하기가 쉽다. 예봉을 드러내는 사람이 중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흔히 사람은 어려움은 함께 하되 영예는 함께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천하를 통일할 때는 각지의 영웅호걸들이 한 사람의 휘하에 모이고, 서로의 예봉을 드러내며 겨룬다. 하지만 천하가 안정되면 맹장과 공신들의 재능은 황제에게 위협이 된다.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 관직을 잃고 죽임을 당했는가!

洪應明은 <채근담>에서 ‘군자는 예봉을 지나치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여러 차례 적고 있다. 이 말은 예봉을 녹슬게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 권세 혹은 재력을 믿고 사람들 앞에서 기세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봉을 숨기는 것은 자신의 학식이나 재능을 더욱 강화할 수 있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능력과 기술을 익히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 모두는 늘상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고심하곤 한다. 따라서 재능이 있는 사람은 언행에 예봉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반대로 깊이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凡才인 듯 보이고 마음에 품은 큰 뜻도 없는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예봉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일 뿐이다. 옛날 선비들은 한탄하기를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여 원망하면 군자가 아니로다!”라고 했다. 천재는 자신의 능력을 나타낼 기회가 없을 것을 염려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일을 제대로 못하여 특별한 성취를 이루지 못할까를 염려한다. 曾國藩은 “군자는 무기를 숨기고 때가 오기를 기다려 행동한다. 고 말했다. 군자는 재능이 있으되 쓰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제3편 처세(處世) : 화합의 원칙

和氣致祥(화기치상) :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 - 온화한 마음자세를 배워라

처세와 인간관계 문제는 때로는 절대적인 是非가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함께 친구가 되고 화합할 수 있느냐이다. 바보철학에서는 ‘오랜 오만(長倣)’과 ‘많은 말(多言)’이 화합을 해치는 두 가지 주된 요소이며, 더욱이 친구를 떠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성숙한 사람일수록 겸허하게 행동하고 적게 말한다. 이렇게 할 때 온 천하가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난득호도>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고 한다. 서로 화목할 때 상서로운 일이 찾아온다는 얘기다. 가정은 물론이요, 조직과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한 잔의 물에 비한다면, 미소는 이 한 잔의 물에 더해지는 단맛이다. 바보철학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나치게 따지지 않고 관용하는 마음과 미소로 대할 때 필히 좋은 보답이 돌아온다고 말한다. 웃는 얼굴은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예리한 무기이다. 풀기 어려운 난관에 부딪혀서 기분이 엉망일 때일수록 더욱 더 미소가 필요하다. 모든 고민을 내려놓고 동료들과 웃고 이야기하다 보면 최악이었던 기분이 조금은 풀릴 수 있고,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 ‘제집 앞 눈은 자기가 치운다. 는 태도로 무관심해서도 안 된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인색하게 굴지 말고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만약 자신이 일을 잘못 처리하여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면 한시라도 빨리 사과하라. 용기 있는 사과는 상대방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매사 상대방의 뜻을 헤아려서 배려해준다면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절대적인 시비를 가리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비가 분명하고 매사 구분이 명확한 사람은 흔히 人德이 없는 반면, 어수룩하고 늘 싱글거리며 웃는 사람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이곤 한다. 어떤 조직에서든 구성원들로부터 언제나 환영받고 상사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말해서 여러 사람들과 두루 잘 지내는 인덕 있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인기 있는 사람은 어떤 방면 혹은 여러 방면에서 대다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친구를 사귄다거나 사업상의 관계를 확립할 때도 ‘사람을 끄는 사람’을 선택하고 더 나아가서 이런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붉은 것을 가까이하면 붉어지고 검은 것을 가까이 하면 검어지는’ 이치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을 끄는 사람’을 업무적인 인간관계망 속으로 끌어들여서 좋은 친구로 만든다면 당신의 인간관계 역량 또한 알게 모르게 크게 확대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사람을 인정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오해를 사거나 타인의 불공평한 비판, 심지어는 치욕스런 말을 들어야 하는 경우를 당할 수 있다. 그러나 불공평한 비판이나 듣기 힘든 욕설을 듣는다 하여 상대와 마찬가지로 이성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화 낼 시간이 있으면 돈을 벌라’고 하지 않는가. 값비싼 정력, 값비싼 시간을 쓸데없이 화를 내는 데 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치욕스런 욕설이나 비판 앞에서 ‘원수를 사랑하는’ 수양의 경지에 이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타인으로 인해 내 기분과 건강이 영향을 받지 않게 할 수는 있어야 한다. 화를 내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자신을 벌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분노를 가슴속에 쌓아 놓으면 얼굴이 경직되고 주름이 생기며, 또한 지나친 긴장으로 심장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흔히들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오해를 받으면 명백하게 해명하려 들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진정 총명한 사람은 사실 이런 때에도 해명하지 않고 조용히 침묵한다. 혀를 놀리는 것은 침묵만 못하며, 상대가 비방을 멈추는 이유는 내가 침묵하기 때문이다.

吃虧是福(흘휴시복) : 손해 보는 것이 바로 복이다 - 족함을 아는 마음자세를 길러라

정판교는 군자는 사람을 위해 노력하되 이익을 탐해서도 공을 탐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공과 이익을 양보하고 이름도 양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걸음 물러서면 그만큼 이익을 얻고, 한번 손해 보면 그만큼 복이 쌓인다는 것이다. 반대로, 한번 교만하면 그만큼 욕이 더해지고, 한번 이익을 차지하면 한번의 화가 찾아온다고 말한다.

재능과 학문을 갖췄음에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풍애는 제나라의 맹상군의 도움을 받은 유생 가운데 하나였다. 어느 날, 맹상군은 자신의 봉지인 벽성에 사람을 보내어 소작농이 진 빚을 받아오게 할 생각으로 누가 가겠느냐고 물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하지만 돌려받은 돈으로 무엇을 사와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풍애가 말했다. “우리 집에 없는 물건을 사오게!” 맹상군은 이렇게 말했고, 풍애는 명을 받아 떠났다. 풍애가 벽성에 도착해서 자세히 알아보니, 이곳 백성들의 생활이 말할 수 없이 궁핍하여, 도무지 밀린 빚을 상환할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풍애는 백성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놓고 말했다. “내가 빚을 받으러 온 이유는 맹상군 나리께서 3천여 명의 문객을 양성하시느라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이오. 하지만 내가 길을 나서기 전에 나리께서 당부하시기를, 갚을 능력이 되는 빚은 돌려받고, 당분간 상환할 수 없거든 미루어 주라 하셨소. 만약 갚을 능력이 도저히 안 된다면 채무증서를 불살라버리라고 하셨소.”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맹상군 어른은 우리의 은인이시다!”라며 환호했다. 풍애가 돌아와서 보고하자, 맹상군의 안색이 일순간 변했다. “나는 지금까지 자네에게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다 여기고 극진히 대해주었거늘 나를 위해 고작 이런 일을 하는 건가?” “나리, 그곳 백성들의 생활은 말할 수 없이 곤궁하여, 비록 채무증서를 남겨둔다 한들 돈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옵니다. 차라리 채무증서를 불태움으로써 백성들이 나리께 고마워하도록 하는 것만 못하옵니다. 제가 떠날 때 나리께서는 ‘내 집안에 없는 것을 가져오라’ 하셨습니다. 저는 이 집안에 가장 부족한 것이 돈이 아니라 민심이라고 생각했고, 이번에 저는 이것을 나리께 가져왔사옵니다.”

얼마 후, 맹상군의 명성이 크게 높아지자 진나라 왕이 그를 곁에 두고자 했지만 맹상군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진의 왕은 맹상군의 위세가 제나라 군주보다 더 크니 왕위를 맹상군에게 물려줘야 할 것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이 소문을 들은 제나라 왕은 곧바로 맹상군을 파직하고 그를 자신의 봉지로 돌아가게 했다. 풍애는 마차를 몰아 맹상군과 함께 봉지인 벽성으로 돌아갔다. 벽성의 백성들은 맹상군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집에서 나와 큰길에서 그를 맞이했다. 이 모습을 본 맹상군은 감격하여 눈시울을 붉혔다. “자네가 나에게 민심을 사왔구먼. 자네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물건을 사다주었네.” 맹상군은 그제야 ‘손해 보는 것이 결국에는 이득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득과 실, 화와 복은 자리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볼 때 손해를 보는 것이 사실은 후에 복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自得基樂(자득기락) : 스스로 그 기쁨을 얻어라 - 평상심을 잊지 마라

기쁨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소망은 끝이 없지만, 기쁨은 한 그릇의 소금물처럼 마실수록 갈증을 느끼게 만든다. 따라서 진정 총명한 사람은 적당할 때 멈추는 이치를 알고 있다.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억지로 구하려 하지 말고,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은 버려야 한다. 버리는 법을 알아야 기쁨이 찾아온다. 짐을 지고 가는 길은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네 삶은 시시각각 취사선택해야 하는 과정에 있다. 언제나 취하고 차지하기만을 갈망하는 나머지 차지하는 것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소홀히 한다. 그러나 버리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동쪽에서 버리고 서쪽에서 찾는’ 이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좀더 온화한 마음으로 만물을 고요히 바라보며, 세상과 함께 시적인 정취를 느끼고, 적당히 버릴 줄 알 때 마음의 평정을 얻고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인생은 마치 토지와도 같아서 이곳에 희망과 성공을 심을 수도 있고 원망의 씨앗을 뿌릴 수도 있다. 마음속 깊이 간직한 치욕,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많은 사랑스러운 것들을 다치게 하며, 우리 자신은 고통의 심연에 갇히게 된다. 또 다른 사람의 행운을 보며 기뻐해 줄 수도 없게 된다. 그러기에 미움과 원한의 뿌리를 발견한 후에는 최선을 다해 맞서야 한다. 맞서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잊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해묵은 미움의 감정을 도려내고 새로운 꿈과 열정으로 인생에 움푹 팬 습지를 메울 줄 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 종류의 강렬한 감정을 소유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랑을 품고 동시에 원한을 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원한은 대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자신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다. 어느 대학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진실한 우정으로 상대방을 대하면 65~70%는 우정의 반응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사랑은 사랑을 낳고,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는 게 바로 이런 의미가 아니겠는가.

戒急用忍(계급용인) : 급한 것을 경계하고 인내를 이용하라 - 의연한 태도를 단련하라

흔히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면 정신없이 대응하다가 갖가지 실수를 범하곤 한다. 일이 일단락된 후 냉정하게 생각하면 후회막급이다. 만약 조금만 냉철하게 대응했더라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의 인내력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을 때 어떤 사람은 목숨을 버리지만 어떤 사람은 필사적으로 버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를 버티면 본전이고 둘을 버티면 하나를 번다. 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이 돈을 잃어버렸다. 그는 기숙사 내에 있는 한 직원이 훔쳐갔을 것이라며 의심했다. 그러나 심증만 있을 뿐 실제 그가 훔쳤다는 것을 확인할 만한 증거는 없었다. 본래 근거 없이 시작된 의혹은 시간이 감에 따라 옅어지게 마련이지만, 이 직원은 오히려 반대였다. 의혹이 점차 그에 대한 미움으로 바뀌었다. 결국 그는 그 직원이 잠자고 있는 틈을 이용해 그를 살해하고 말았다. 그에게 왜 살인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근거도 없는 의혹 때문이었다고 했다. 만약 그가 의혹을 말로 표현했다면, 혹은 친구에게 자신의 의심이 당연한 것인지 의논만이라도 했더라면 이런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함으로써 잃었던 이성을 되찾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은 어느 한 가지 생각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쉽게 막다른 골목을 향해 내달린다. 이럴 때는 친구의 충고가 매듭을 푸는 데 크게 도움이 되어 잃었던 침착함을 되찾게 해줄 것이다. 뜻하지 않은 일을 만났을 때 침착 하라. 머리가 뜨거워지면 안 된다. 한순간의 충동은 일을 더 어렵게 만들뿐이다.

제4편 사교(社交) : 누구와도 원만하게 처세하는 기교

說着易, 做着難(설착이, 주착난) : 말하기는 쉬워도 행동하기는 어렵다

-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의 바보철학
사람을 사귈 때는 반드시 천지를 감동시키는 ‘어수룩한’ 정신에 뿌리를 두고 성심으로 대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만이 여러 부류의 사람과 교류하여 그들을 친구로 만들 수 있다. <난득호도>

인간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비결은 바로 ‘誠’이다. ‘성’이란 글자 속에는 마음을 비우고 가슴을 넓혀 사심이나 잡념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성’으로 대할 때만이 진실할 수 있고, 누구에게도 속임을 당하지 않으며, 비로소 진정으로 친구를 사귈 수 있다. 따라서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나 자신부터 성실하고 허심탄회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사람의 본성은 원래 선량하여 거짓과 위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심을 가질 때 비로소 자신의 몸에서 허위의 악한 뿌리를 완전히 잘라버릴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동고동락하며 큰일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성’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는 진실해야 한다. 자신의 과실을 알고 이를 바로잡을 줄 알아야 하며 잘못을 바로잡는 데 추호도 인색해서는 안 된다. 둘째는 성실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과 수준을 알고, 虛名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 셋째는 성심을 가져야 한다. 성심으로 사람을 대하며 허심탄회한 태도로 처세해야 한다. 성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용기를 갖게 하며, 처음의 뜻을 잃지 않게 하며, 마침내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친구를 얻게 해준다. 넷째는 성의가 있어야 한다. ‘정성이 닿으면 金石도 갈라진다. 라고 하지 않는가. 다섯째는 사심이 없어야 한다. 친구에게 술수를 부린다거나 빈부를 구분하여 사람을 차별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한마디로 성심으로 사람을 대할 때, 다른 사람도 비로소 당신을 성심으로 대하게 될 것이다.

合不得, 分也不得(합부득, 분야부득) : 더해서도 안 되고 나누어서도 안 된다

- 가정에서의 바보철학
‘百事가 화합이 귀하고, 집안이 화합하면 萬事가 흥하다’는 속담이 있다. 가정에서의 화합과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가정에서의 내전은 동풍이 서풍을 누르면 서풍이 동풍을 누르는 격으로 대부분 부부간의 불화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가정 내에서는 많은 대화와 정을 기초로 한 일체의 어수룩한 전략, 어수룩한 전술로 임하는 것이 상책이다. <난득호도>

가정이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우선 ‘화목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가정 내의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다음 원칙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물어서 안 되는 것이면 묻지 않는다. 둘째, 해서 안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셋째, 관여해서 안 되는 일은 관여하지 않는다. 넷째, 말해서 안 되는 일은 말하지 않는다. 이상의 원칙들은 가정 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원칙이기도 하다. 사실 어떤 부부간에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힘든 모순이 존재한다. ‘함께 한다’는 것이 언제나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의 교류이다. 남편은 아내의 따뜻한 보살핌과 아내가 이룬 성취를 칭찬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또한 아내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야외활동을 함께 하면서 대화의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남자는 당근을 먹는 노새와 같다. 여자는 당근을 노새 앞에 놓고 노새가 끄는 수레에 타고 있기만 하면 된다. 노새는 자연히 여자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장기적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매일 똑같은 당근은 노새를 질리게 한다. 노새를 굶어죽게 만들 요량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보기 좋은 용모를 유지하는 것이다. 외적인 용모뿐만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에 남자가 감동 받도록 해야 한다.

 

聰明難 糊塗難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수룩하기도 어렵다

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            총명한 사람이 어수룩하게 되기는 더 어렵다
             放一着 退一步 當下心安    한 생각을 버리고 한 걸음 물러서면 마음이 편안해 지리니
非圖後來福報也                도모하지 않아도 나중에 복된 응보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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