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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아버지의 혼불 / 김용삼

부흐고비 2020. 2. 8. 15:41

아버지의 혼불 / 김용삼
제30회 신라문학대상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자 속도감이 완연해진다. 서너 시간의 여유 탓인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탑게 인사를 나누던 일행들이 하나둘 노루잠을 청하고 있다. 차분하게 비 오는 날의 서정을 누리기에 제 격인 분위기다.

살며시 커튼을 들추어 바깥을 살핀다. 출발할 때 쏟아지던 발비는 어느새 실비로 잦아들고 있다. 빗방울은 버스의 속도감에 끈질기게 저항하며 유리창으로 몸을 던진다. 그러나 빗살무늬의 긴 빗금을 긋곤 이내 허공으로 튕겨나간다. 속도에서 탈락한 빗방울들은 뒤따라오는 차의 전조등에 투사되어 폭죽처럼 부서져 내린다.

허공으로 점묘되어지는 빛의 파편들은 오래 전 고향의 밤하늘을 물들이던 반딧불이의 군무와 오버랩 된다. 망연하게 비와 반딧불이의 추억을 오가다문 득 내 기억 한 켠에 켜켜이 묵혀 있던 불덩이 하나를 발견한다. 오랫동안 내 안에 터주처럼 들앉아 트라우마가 되던 것이다. 일순 머리끝으로 찌릿찌릿 정전기가 일고 온 몸이 그닐거린다. 그날도 그랬다.

"야야, 일어나바라. 너그 아부지 또 숨이 안 잽힌대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깔딱잠에 빠진 나를 깨웠다. 하지만 어제도, 그제도 온 집안에 곡소리를 터지게 만들었던 아버지다. 급박한 상황에도 내성이 생긴 것인지, 내 움직임은 굼뜨기만 했다.

숨바꼭질 하듯, 아버지의 숨은 벌써 사흘밤낮동안 정지와 운행을 반복했다. 잠시잠깐 아버지 곁을 지키던 자식들과 달리 어머니는 금강경을 외며 몇날 며칠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어머니의 다급한 호출에 잠기를 털어내며 아버지 코에 검지를 대본다. 들고나는 호흡이 없었다. 부릅뜬 눈만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끝까지 초점을 놓지 않고 있을 뿐.

어머니가 손으로 아버지 눈을 쓰윽 문지르자 거짓말처럼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인제는 증말 가는 갑다. 창문부터 모조리 다 열어뿌라. 나무관세음보살." 어머니는 연신 꽉 쥔 염주를 돌리며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읊조렸다. 흠집 난 레코드판이 같은 음절만을 반복 재생하듯.

아버지방의 쪽창이 열리자, 음력 유월답지 않은 밤바람이 서늘하게 흘러들었다. 눈이 어둠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하늘엔 동전크기의 불덩이가 어둠 속에 잠시 머물다 미확인물체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마치 대보름 쥐불놀이 때, 동심원에서 떨어져 나간 끄트리불이 사선을 긋고 먼 우주로 사라지던 것처럼. 그 불의 잔상이 망막에서 사라질 쯤 내 몸에는 찬물을 끼얹은 듯 소름이 돋았고 머리끝엔 정전기가 일었다.

"엄니, 저거 도깨비불 아인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불이 사라진 쪽을 가리키며 괴성을 질렀다.

"그기 혼불일꺼로? 너거 아부지 혼줄이 끊어져서 하늘에 불로 뜬기다."

어머니는 연거푸 '아미타불'을 뱉어내며 열린 창밖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육과 혼이 이어져 평생 아버지의 삶을 쥐락펴락했다는 혼줄. 그 줄이 끊어지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혼은 불이 되어 공중으로 떠오른다. 그 불을 신호로 저승사자는 아버지를 긴긴 황천으로 인도하는 것이란다.

그 순간 어머니의 이야기가 마치 오래던 납량특집처럼 오싹한 소름으로 귓가를 맴돌았다. 수명을 다하기 직전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영혼의 불. 공동묘지의 도깨비불 같았던 아버지의 혼불은 그날 이후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남아 나를 괴롭혔다.

아버지는 5남매의 넷째로 태어났다. 빈농의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라야 튼실한 몸 하나가 전부였지만, 아버지는 농사일보다 배움에 더 목말라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지청구는 귀가 따갑도록 쏟아졌고, 그럴수록 아버지는 밭일보다는 이웃에 사는 일본서 유학한 친구와 어울려 밖으로만 나돌았다.

좌우의 이념대립으로 혼란했던 해방 직후, 아버지는 그 친구와 어울렸다가 사상의 멍석말이를 당했다. 배고픈 친구의 한 끼를 챙기고 한뎃잠을 면하게 해주었다는 것이 죄목이었다. 사상과 이념의 뜻조차 모른 채 멍석 위로 쏟아지는 매타작을 오롯이 몸으로 받아낸 아버지는 평생 폐를 다스려야 할 만큼 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송장 칠거라고 작정했는데, 목심이란 게 참 숭하게도 질기더라."

그날 이후 어머니는 아버지가 요강에 쏟아내는 누른 고름덩이를 비우는 게 일과였고, 폐에 영험하다는 먹거리 마련에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덕분에 아버지는 며칠쯤 혼이 나가 있었지만 끝내 목숨줄은 놓지 않았다.

채 추스르지 못한 몸으로 내몰린 전쟁터에서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수히 넘나들었을 것이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혼줄만은 모질게 붙잡았던 아버지다. 오로지 소총 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전장, 결국 아버지는 낙동강 최후방어선 참호 속을 날아든 포탄에 큰 부상을 당하게 되었다. 후송된 군병원에서 아버지는 마치 달팽이처럼 침상에 웅크린 채 악착같이 혼줄을 붙들고 있었다. 탯줄 대신 얻은 아버지의 혼줄은 쇠심줄보다 질겼던 셈이다.

조기전역으로 돌아온 고향동네는 더 이상 상한 몸과 마음을 뉘일 안식처는 아니었다. 결국 아버지는 야반도주하듯 식솔을 이끌고 도시로 나왔다. 고작 스무 살, 꽃다운 어머니에게 가장이라는 험난한 자리를 넘겨주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전쟁이 분단의 선을 남겼다면, 전쟁처럼 지나온 아버지의 시간도 당신의 삶을 두 동강 내어 버렸다. 건강하고 혈기왕성 했던 아버지는 과거 속에만 존재하였다. 아버지는 그때로 되돌아갈 수도 없었고. 되돌아갈 의욕도 챙기지 못하였다. 생계와 자식교육은 당연히 어머니의 몫이었다. 텅 빈 집에서 아버지는 혼자 화투 패를 뜬다든지 공터 평상을 지키며 무료한 볕바라기를 하는 것이 하루의 전부였다. 줄줄이 커가는 자식들이 밥을 굶든 학교에 빠지든,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가장 노릇이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장지문을 통해 들리던 아버지의 기침소리만 우리를 기다렸고, 어머니는 언제나 부재중이었다. 결국 어머니의 등은 나이 오십에 일흔 노인처럼 수북해졌다. 내가 아버지에게 애증의 옹이를 키우던 시기도 그때부터였으리라. 어머니의 어깨가 쳐질수록 나는 아버지를 밀쳐냈고, 알게 모르게 아버지의 무능에 대한 원망의 뿌리를 키워갔던 것 같다. 내 혼란스러웠던 성장기를 모조리 아버지 탓으로만 돌리며.

그렇게 맞은 아버지와의 이별. 혼불이 트라우마가 된 것은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삶을 진중하게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는 자책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날 밤 부릅뜬 눈에서 당신의 뼈아픈 회한을 읽지 못했던 나도 어느새 그때의 아버지만큼 세월을 껴입었다. 아비로, 남편으로, 한 남자로 아버지의 아픔을 속속들이 체감할 나이가 되었건만, 이미 단 한마디 위로의 말도 건넬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버스는 빗속을 뚫고 달리지만,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밤에 붙박이처럼 멈춰서 있다. 이제는 소용없어진 후회만 빗물처럼 내 안을 축축하게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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