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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작살고래 / 최경숙

부흐고비 2020. 2. 8. 15:43

작살고래 / 최경숙
제29회 신라문학대상


단번에 전광석화처럼 내 눈에 꽂혔다. 고래가 척추에 작살이 박힌 채 온 몸을 펄펄 요동치고 있다. 임신한 처와 자식을 떠나 화석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모습 같다. 암벽 속에서 필사적으로 탈출을 감행하는 고래의 몸짓이 검푸른 파도를 밀어 낼 것 같은 생동감에 온 몸이 떨린다.

무슨 이유일까. 바다 속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걸까. 고래등뼈에 대형 작살이 번개 자물쇠처럼 처.절.히 박힌 것을 보니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선사시대의 아비규환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래 떼들이 천길 바다 속에서 이동하는 광경이 내 눈 속에 풍덩 빠져 들어 온다.

아침나절 날씨가 점심 때 까지 내숭을 부렸다. 눈치를 못 챈 나는 별렀던 반구대 암각화를 보려고 출발했다. 얼마가지 못해 굵어지는 빗방울에 차창이 얼룩무늬를 지었건만 고래를 만나러 가는 길을 막을 수 없었다. 힘센 빗줄기가 풀밭 풀들을 비틀거리게 했고, 쏟아 붓는 빗물에 도로에는 빗물 웅덩이가 생겼다. 그 옛날 바다에도 이런 폭우가 쏟아졌으리라.

고래 등에 작살이 꽂힌다. 살겠다는 거구가 중력을 거부하듯 솟구쳐 오른다. 찰나였지만 빗속혼란과 바다의 광경이 마음속에서 번갈아 실제와 혼동이 생긴다. 고래들은 고통에 꿈틀거리고 작살을 맞을 위기에서 벗어나려 요동을 친다. 현실은 절박하고 아우성은 귀를 울린다. 만년 가까운 세월을 마다하고 가장이라는 책무에 작살이 박힌 채로 암벽 속에서 견디고 있다.

내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가장다운 가장이셨다. 넘쳐나는 아버지의 사랑에 급체를 할 지경이었다. 가장이란 이름으로 당신의 인생을 송두리 채 자식에게 들이밀었다. 논밭 팔아서라도 유학 보내 주겠다는 아버지께 나는 앞뒤도 안 보고 결혼을 했다. 딸을 믿던 아버지에게 던진 배신의 작살이었다. 딸 보고픔에 목 말라하는 아버지를 외면하는 냉정의 작살도 꽂았다. 그것도 모자라 모진 말로 아버지 가슴에 마구마구 상처를 냈다. 지금은 가슴시린 후회의 작살이 내 가슴에 꽂히는 중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갑자기 불어난 태화강의 강물은 바위에 박혀있던 고래를 풀어주는 해방의 물줄기였다. 반구대고래는 물이 차면 살아 헤엄쳐 오르고, 물이 빠지면 암각화 되어 돌 감옥에 갇혀 수장되는 신세였다.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가장만이 견딜 수 있는 숭고하고 거룩한 인내다.

암벽 속 고래는 신석기 말에서 청동기의 세월을 넘어 왔다. 백골이 풍수 화토를 거쳐 화석이 되어 지금 모습을 드러냈다. 정지된 시간에 멈춰진 몸짓은 시간을 벗어나지 못해 포박 당하여 물속에 수장되었다. 하지만 곰곰이 바라볼수록 암각화는 생사윤회의 무상함을 설법하려고 보낸 조물주의 편지가 되었다. 안내판 반구대 사진은 대략적 얼개를 짠 모습이었지만 그것조차 오천년이 넘은 세월을 잊은 채 내 머릿속에 새로운 문양으로 새겨졌다. 급기야 암벽에 그려진 아버지 고래 등에 꽂혀있는 작살이 용틀임을 일으키는 환상이 되었다.

암석이 되어버린 고래 여러 마리가 내 눈길을 부여잡았다. 앞장서서 도망가는 거북이 몇 마리. 뒤에는 척추 뼈에 작살이 꽂힌 채 가족을 챙기느라 뒤처진 고래 가족이 한눈에 들어왔다. 임신한 엄마 고래, 동생을 업은 누이 고래, 그리고 고만고만한 동생들, 물을 뿜고 있는 이웃 고래가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필사적으로 도망을 친다. 엉성한 그물도 물리치고 볼품없는 울타리도 넘었다. 가족을 보호하려던 아버지 고래가 앞장서서 가족을 안내한다.

작살이 등에 내려 꽂혔을 때 고래는 어떤 소리를 낼까. 호랑이처럼 포효하는 울음을 내질렀을까. 그 신음이 들리는 듯하다. 작살이 박힌 채로 바위 속에 들어가 딱딱하게 굳어 버렸어도, 바다로 갈 꿈은 잊지 않았을 터. 약육강식은 그 시대에도 존재했었구나. 암각화에 그려진 고래 모습에서 냉혹한 자연의 질서를 읽는다.

문자가 없었던 시대 사람들은 사냥감을 그림으로 새겼다. 암각에 새겨진 사냥 그림은 넉넉한 바다사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기원한 뜻이다.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희망으로 바위 돌에 새겼다. 고래 잡는 법에 대한 교육용 그림이었거나 고래가장에게 작살을 찍었던 죄를 고래가족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남겨 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놓쳤던 고래를 다음 사냥엔 꼭 잡으리라는 약속으로 암각에 메모를 해둔 것일까.

암각 속에 있는 고래그림을 들여다본다. 잠시 선사시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고래잡이를 떠나며 안전과 풍요로운 수확을 빌었을 것이다. 잡아 온 고래를 부위별로 골고루 나누며 함께 떠들썩하게 즐거워하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공동운명체의 행복이랄까. 원시공동체 사회라면 사냥감이나 어획물의 분 배 또한 몹시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까. 모두가 만족하는 분배를 행했을까. 지도자가 무리한 요구를 하지나 않았을까. 칼 잡은 이가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나 않았을까. 오만가지 상상은 어느덧 오늘의 사회제도를 생각나게 한다.

배의 모습도 보인다. 젓는 노가 작고 엉성하여 볼품이 없다.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에 비해 고래는 비비추꽃 이파리를 펼친 듯한 꼬리모양까지 상 세히 묘사되어 풍채가 늠름하다. 고래사냥 장면을 생명력 있게 표현하고 고래의 특징을 실감나게 표현했지만, 배보다 배꼽이 큰 모습인지라 수수께기 같은 지혜가 필요했다.

선사 고래들은 리만해류를 따라 동해안으로 남하하여 왔을 것이다. 물위로 떠오르다가 인간의 바다 사냥감이 되었다. 태고의 수난기를 거친 고래의 운명은 숭고하게 승화되어 인류역사를 증명하는 작용을 한다. 과거로 떠난 것들이 침묵으로 되살아난다. 오랜 수난기를 거쳐 드러난 과거에 미래가 잉태되어 있다. 우리들의 오늘도 수천 년이 지난 후, 어떤 상황이 암각에 각인될까. 어떤 모습으로 후손들 눈에 띌까. 멀고도 아득한 생각이 천만갈래로 퍼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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