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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갈목비 / 전영임

부흐고비 2020. 2. 9. 18:17

갈목비 / 전영임
제26회 신라문학대상


어두운 터널의 수렁과도 같았던 시간들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못하셨다. 여우비가 내리던 날 금빛 모래 쓸리어 내리는 강을 건너, 진달래가 흐드러진 산길을 지나, 너울너울 꽃상여를 타고 먼 길을 떠나셨다. 살아온 인생길 가장 화려하고 호강스런 순간이었다. 동구길에서 아버지를 보내고 일곱 계단을 올라 두 평 남짓 당신의 체취가 배인 사랑방을 찾았다. 문을 열자 움츠려있던 방의 기운이 보무라지처럼 풀썩 일어나 소스락거렸다. 당신의 향기였다.

아버지는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가녀린 몸으로 농사일을 하셨다. 너울가지가 없어 아무 말 없이 혼자 사는 할머니들의 밭갈이며 힘든 일을 도와주시던 듬쑥한 분이었다. 풀에 할퀴고 밭일에 무디어진 손으로 농사일이 끝나면 쉬지 않고 갈목비를 엮으셨다. 손놀림이 빨라지는 만큼 아버지의 손끝도 모지라 지문이 지워져갔다. 하지만 그 손끝에는 당신의 행복이 숨어 있었기에 한순간도 소홀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누웠던 자리 가만히 누워본다. 정사각의 공간이 참 좁다. 천정도 저리 낮았을까? 이 집에서 유일하게 당신의 공간이었던 방, 주인을 잃은 방엔 고요를 더한 적막이 들었다. 한줄기 빛기둥이 뚫린 창호지 문구멍을 통해 새어든다. 아니 그것은 빛기둥이 아니었다. 모래알보다 작은 금빛 찬란한 입자의 무리였다.

문구멍을 통해 새어든 입자들이 네 귀퉁이 천정을 천천히 순회하다 기웃대듯 낡은 옷장 위에 잠시 머물렀다. 천천히 벽을 타고 내려와 낮은 문턱 옆에 서성거린다. 반쯤 닳은 갈목비가 잠깐 들썩거렸다. 나풀댄 것도 같다. 시나브로 금빛 입자들은 다시 창호지 문구멍을 통해 서서히 타래 치며 구름발치 아래로 사라졌다. 순간 아버지를 만났다. 내 착각이어도 좋았다. 당신의 영혼이 떠나시기 전 다시는 못 올 이 방안을 한 바퀴 둘러보고 가시는 거라 믿기로 했다.

계절 중 가을이 가장 좋았다. 그리고 겨울도 좋았다. 언제나 일그러진 표정의 아버지는 가을이면 낯꽃이 환하게 피었다. 겨울이면 그 얼굴에 튼실한 열매가 맺혔다. 내가 좀 곰살갑게 굴면 평소 없던 너털웃음마저 웃으셨다. 가슴이 넉넉해지는 시간이다. 우리는 가으내 갈대를 꺾었다. 성지미 개울가에 숱 많은 갈대가 있고, 삭골 논 옆에는 잎이 잘 떨어지지 않는 갈대가 많다고 아버지는 일러주셨다. 경험에 따라 밀절미가 좋은 것이 어떤 것인지 배우며 익혔다. 더러 억새를 꺾어와 갈대라고 우기는 막내딸을 보고 너털웃음으로 갈대와 억새의 차이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설명해 주시던 당신이셨다. 마뜩한 갈대를 꺾어 올 때마다 웃는 얼굴이 좋아 나는 연신 푸서리 가득한 강가에서 갈대를 꺾으며 방글거렸다. “일은 즐겁게 하는 거란다. 즐겁게 해야 쉽게 할 수 있지. 그리고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면 최선을 다해 즐겁게 해야지.” 평생토록 내 삶의 지침이 되어준 입버릇 같은 말씀이었다.

아버지는 막 피기 전 갈대를 사용하셨다. 이미 꽃이 피어버린 것은 꽃잎이 바람에 흩어져 빗자루로는 쓸 수가 없다. 꽃 피기 전 갈대를 꺾으려면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했기에 항상 강기슭을 기웃거렸다. 한 줌 두 줌 모인 갈대는 저녁이면 소여물 솥에 푹 찌셨다. 설마르지 않게 며칠을 그늘에서 정성스럽게 손질하셨다. 볕을 보면 잎이 너무 말라 바스락 거리며 부서지기 때문에 더디 마르더라도 항상 볕이 들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는 처마 한 귀퉁이에 긴 줄을 엮어 매달아 두곤 하셨다. 알맞은 바람과 정성스러운 손길에 질 좋은 재료가 준비되는 것이다.

가으내 모인 갈대는 농사일이 끝난 겨울이면 하나 둘 갈목비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숱이 많은 실팍한 방 빗자루를 엮으셨다. 반 타원형의 숱이 타박하고 손잡이가 통통한 짧은 빗자루는 다른 것과는 달리 방안의 작은 먼지까지 깨끗하게 비워내는 마술을 부려서 인기가 좋았다. 하나의 갈대가 열 개의 무리로, 그 열 개의 무리가 모이고 모여 한 자루의 갈목비가 완성되기 까지 때로는 종일 걸렸다.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의 빗자루를 참 좋아했다. 더러 엮는 분도 있었지만 유연 노장한 아버지의 매운 손끝이 만들어내는 비법을 따르지는 못했다.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당신들이 쓰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도회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매년 갈목비는 부족했다. 동네사람들은 완성된 빗자루를 받으며 한 두 갑의 담배를 선물로 주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당신께선 손사래 치셨다. 사랑방 동쪽으로 난 창호지 문 옆에는 천정에 가까운 가장 높은 벽에서부터 갈목비가 하나씩 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성된 빗자루는 곧 주인을 찾아 떠났다. 처음으로 만든 것은 새살림을 차린 자식에게 주셨다. 나에게는 작고 귀여운 나만의 것이 쥐어졌다. 특히 고마웠던 분들은 잊지 않고 챙기셨다. 그것이 당신께서 그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보답이었다. 그 다음 순서가 주문받은 것이었다. 빗자루를 받아 드는 그들의 표정과 감사의 말들이 당신께서 오랜동안 갈목비를 엮게 하신 비결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배우지 못한 무지와 열등을 줄이고 자존감을 상승시키는 아버지만의 슬기주머니였는지도 모른다.

여덟 살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5형제 중의 막내였던 당신은 큰어머니 손아래서 자랐다. 유난히 작은 키에 가지처럼 마른 체구, 배우지 못한 열등, 한글에 대해 까막눈이었던 이유로 움츠러들었다. 전 재산과도 같았던 집을 아주 헐값에 팔고 난 후 처음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며칠을 앓으시는 모습을 보았다. 평소 물질에는 욕심이 없던 분이셨다. 집 짓는 일을 하는 큰외삼촌의 권유에 없는 돈 긁어모으고 빚까지 얻어 집을 지었다. 그 집에서 큰 언니가 공장을 다녔고, 오빠 둘과 작은 언니가 중, 고등학교를 다녔고, 골수염을 앓던 내가 머물며 병원을 다녔다. 그런 집을 언니들 시집보내랴, 오빠들 장가들이랴 형편이 부족한 탓에 지인의 소개로 팔았는데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집이 두 배로 뛰어오른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본 건 돈에 대한 욕심만은 아니었다. 평소 배우지 못한 무지함과 보고 듣는 귀가 어두워 헐값에 속아 팔아버린 것에 남세스럽고 고통스러워하셨다. 그런 열등을 잊고 자존감에 꽃을 피우게 만든 것이 갈목비였다.

“아제가 엮은 빗자루가 최고”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동네 분들의 말씀속에서 당신의 능력을 인정받음이 큰 기쁨이고 위안이었을 것이다. 집집마다 아버지가 엮은 빗자루가 없는 집은 없었다.

아버지는 갈대를 만질 때는 여유가 있었다. 가끔은 목청껏 노래도 부르셨고, 더러는 옛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 옆에서 갈대 이삭을 정리하며 도란거리는 시간이 유일하게 부녀가 나누었던 즐거운 시간이었고 행복한 추억이었다. 당신의 헛기침 소리와 갈대 부딪는 사그락거림은 어둑새벽이 되어서야 조용해지곤 했다. 여린 갈대로 태어나 하나의 빗자루로 만들어져 평생토록 온방안 먼지 비워내며 몸이 닳도록 제 역할에 충실 하는 갈목비는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과 헌신을 아끼지 않은 아버지의 가풀막 같은 삶과도 닮았다.

생각해 보면 갈목비는 당신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셨던 지혜로운 삶의 지침이었던 것 같다. 갈대가 피기 전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눈여겨봐야 하듯, 적절한 시기의 중요성과 관심을 가르쳐 주셨다. 성급함 없이 천천히 말리는 일에서 인내와 진중함을 보여 주셨다. 추운 겨울 갈목비를 엮으며 시간의 활용법과 게으름 없이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법을 알게 하셨다. 자신이 좋아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진정한 행복의 느낌을 일깨워 주셨다. 나누는 마음에서 기쁨을 얻게 하셨고 인정받는 삶의 소중함도 알려주셨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 일일이 갈목비를 엮으며 가르치던 아버지의 깊은 마음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신은 갈목비를 통해 준비하는 삶. 최선을 다하는 삶, 나누는 기쁨과 참 행복을 가르치려 하셨던 것 같다.

들썩이던 갈목비를 동행시키기로 했다. 동구길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너울너울 바쁜 걸음으로 꽃상여를 뒤따랐다. 당신의 생을 가장 빛나게 해 주었던 유일한 자존감이었고, 기쁨이었고, 행복이었던 갈목비를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가을바람으로 지천에 갈대가 은빛 물결처럼 일렁인다. 이 가을 아버지는 하늘나라 어느 한 모퉁이에 자리 틀고 앉아 처렁처렁 목청껏 노래하시며 갈목비를 엮고 계시지는 않으실까?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 사이로 백발의 인자한 아버지 모습이 오버랩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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