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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메주각시 / 박헌규

부흐고비 2020. 2. 9. 18:18

메주각시 / 박헌규
제25회 신라문학대상


절집 마당이 술렁인다. 이른 아침의 고요는 잰걸음으로 뒷산 인봉재(嶺)를 넘고 콩 익는 냄새가 산중에 진동한다. 검은 무쇠 솥 뚜껑을 비집고 나온 허연 김이 온 부뚜막을 휘감고 돌아 나풀나풀 춤을 추며 뒤란 장독대 사이사이로 숨어든다.

자주 찾는 산사(山寺)에 메주 쑤기 울력이 있었다. 동짓달 짧은 해를 염두에 둔 듯 동살이 채 잡히기도 전에 울력꾼들이 동동걸음을 치면서 부산을 떨었다. 나는 볏짚을 가지런히 추발(抽拔)하여 깨끗이 다듬고 녹녹히 축여 ‘메주각시’를 틀었다. 미덥지 않아서일까? “각시가 예뻐야 장맛이 난다.” 모두들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어찌나 용을 썼던지 손가락이 아리고 물집까지 잡혔다.

메주각시를 트는 일은 지난해에도 했었다.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어도 모양새가 얄궂었다. 허나 올해는 지난번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이름값 할 정도의 ‘각시’를 만들 수 있었다.

메주각시는 메줏덩이의 가장자리를 에워싸고 묶어서 건조시킬 때 사용한다.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메주를 달기 위해 볏짚으로 만든 새끼줄 모양의 끈을 말하며 일명 ‘각시’라고도 부른다. 이것은 단순히 메주를 매달기 위한 끈만은 아니다. 끈으로만 친다면야 볏짚보다도 더 미끈하고 질긴 것들이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지 않는가. 끈의 역할의미를 훨씬 넘어선 아주 소중한 또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메주각시는 반드시 볏짚으로 만들어야 한다. 볏짚 속에 많이 들어있는 ‘고초균’이라는 발효균을 메주에 접종시키기 위해서이다. 우리 전통 메주를 띄우는(발효) 데는 고초균 효소가 절대 필요하다. 물론 오늘날 공장에서 인공 배양균인 ‘황국균’이라는 것을 접종시켜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개량 메주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맛이라든가 영양 면에서 메주각시가 만들어내는 우리 전통 메주를 따를 수는 없다.

이처럼 좋은 된장, 간장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발효가 잘된 메주가 있어야 하듯이 우리의 전통 메주는 각시의 몸이 썩으면서 나오는 고초균 발효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끼니때마다 만나는 된장에 메주가 있다는 것은 쉽게 알고 있어도 메주가 만들어지기까지 각시의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삶은 모르고 있다. 더군다나 ‘각시’의 존재마저도 그냥 지나치고 있어 안타깝다.

지푸라기 몇 올로 엮어진 가녀린 몸, 각시는 투박스럽고 무거운 메줏덩이를 가슴에 품고 뼈를 깎는 듯한 긴 고통의 시간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아간다. 온전한 햇살 한 줌 들지 않는 외진 곳에서 시렁에 목을 매달고, 동지섣달 차가운 냉기와 맞서 온갖 시련과 아픔을 참고 삭인다. 시렁가래는 아픔에 못 이겨 늙은 낙타 등처럼 휘어져 내리는데도 각시는 메주를 내려놓지 않는다. 또한, 마지막 발효 숙성과정을 위해 변변치 못한 구석방 냉돌 위나 헛간에서 낡은 이불 한 조각 뒤집어쓰고 제 몸을 썩히는 희생을 감내하기도 한다.

찰나의 시간도 엉덩이 붙이고 숨 고를만한 자리는커녕, 말라비틀어지고 썩어 문드러져도 누구 한 사람 애정 어린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각시’ 이름에 걸맞은 삶이라고는 잠자리 눈곱만큼도 찾을 수가 없다.

메주각시의 삶을 보노라면 마치 우리 어머니를 보는 것 같다. 메주가 아버지라면 메주각시는 어머니이다. 메주와 각시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된장, 간장은 우리 사 남매에 비견 할만도 하다. 메주각시의 희생적인 삶이 양질의 메주를 만들고, 맛 나는 된장과 간장을 낳는 것처럼 아버지의 남다른 삶에는 어머니의 거칠고 힘든 세월이 있었다.

아버지는 한평생을 시골 농촌에 계시면서도 손톱 발톱에 흙 넣지 않고 살았다. 부(富)도 명예도 없는 시골 대서방(代書房) 말단 서기로 분에 넘치는 한량 흉내를 내면서 집안일하고는 담(墻)을 쌓고 살았다. 힘든 농사일이며, 크고 작은 집안일 건사와 종부(宗婦) 책임까지 모두 어머니 혼자 몫이었다. 거기다가 우리 형제들 대처에 나가 공부까지 시키느라 어머니의 몸 고생, 마음고생은 한도 끝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는 남은 가족,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참고 삭히면서 자신을 추스르고 다독거렸다.

어머니는 나이 열아홉에 칠 남매 맏이인 두 살 어린 신랑 만나 일흔이 넘도록 고된 시집살이를 해야 했었다. 십여 년을 중풍으로 방안에서 누워만 계시던 시어머니 병구완과 시동생, 시누이 그리고 당신 자식들 뒷바라지에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했다. 이따금 들려오는 사모님 소리는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침 일찍 양복 차림으로 면소 앞 대서방으로 갈 때, 어머니는 아버지가 입다 버린 구멍 난 바지를 입고, 호미 들고 논밭으로 나가야 했다. 어머니의 들일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일을 한다고 ‘밤중 여인’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얻어가면서 쉼 없이 밭고랑을 팠다. 고관절 부위 뼈가 닳고 문드러져 인공 뼈를 넣는 수술 뒤에도 어머니의 일손은 멈추지 않았다.

메주각시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는 남편과 자식을 위한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좋은 일에 공(功)은 늘 아버지 몫이고 잘못된 일에 원망과 허물은 어머니 당신 차지였다. 인생 삶에 고(苦)와 낙(樂)은 누구에게나 같이한다고 했지만, 메주각시의 삶이나 우리 어머니의 삶에는 기쁨과 즐거움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지난한 삶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어느 이른 봄, 말(午)날에 메주는 떠나가고 각시는 허물어진 몸, 빈껍데기 신세가 되지만 시골에 홀로 남아 자식들 위해 고향 집 지키는 어머니처럼 지나온 삶을 원망하지 않는다. 한 움큼의 검불이 되어 자신을 태우며 마지막 숭고한 삶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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