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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감은사지에 핀 사랑 / 전미경

부흐고비 2020. 2. 9. 18:46

감은사지에 핀 사랑 / 전미경
제21회 신라문학대상


이른 아침의 감은사지는 고요에 갇혀 있었다. 소리 없는 외침만이 정적을 흔들어 깨우는 아담한 곳이었다. 잠시 뒤 동해의 일출은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더니 석탑을 비추었다. 햇살은 갈라진 틈새까지도 파고들었다.

감은사지는 비어 있으나 비어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모든 것을 끌어안을 것 같은 넉넉함이 절터에 배어 있었다.

마음 복잡한 날, 사심 없이 찾기로는 그만인 곳이다. 인연의 수레에 동승한 이들에게 한 땀 한 땀 박음질하는 심정으로 정성을 기울였으나 돌아오는 것은 시기에 찬 눈빛일 때 위로받은 곳이기도 했다.

지난날 겉포장에 싸여 내면을 볼 수 없었던 얼룩진 마음의 빛깔들을 감은사지에서 풀어헤쳐 보면 불필요한 색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감은사지에서는 부처의 미소가 사라진 듯했지만 사라진 것이 아닌 석탑에 비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부처의 온화한 미소로 인해 마음의 평화를 찾았었다.

신라는 월성을 중심부에 두고 동쪽은 가람을 지어 신라를 지켰으며 서쪽은 큰 봉분을 만들어 서방 극락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누렸다. 동과 서의 절묘한 조화는 감은사지의 삼층 석탑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동서 삼층 석탑은 그저 말없이 묵묵할 따름이었다. 건널 수 없는 세월의 강을 사이에 두고 동탑과 서탑은 서로 바라보기만 하는 해바라기였다. 지척을 두고서도 다가갈 수 없는 석탑 부부의 애틋함은 못다 핀 사랑으로 피어올랐다.

천삼백여 년을 훌쩍 뛰어넘었음에도 새색시의 수줍은 미소는 세월에 깎인 석탑의 팬 부분이 말해 주었다. 가슴속 말 못할 사연은 세월의 이끼로 피어올라 오히려 편안함을 보내왔다. 균열이 간 석탑 곳곳은 지난날의 아픔을 말해 주듯 주름진 인생의 무늬가 그려 있었다.

모진 풍랑 속에서도 감은사지의 삼층 석탑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은 서로를 바라보는 동탑과 서탑의 눈빛이었다. 어느 부부가 이보다 더 진한 사랑을 꽃피울 수 있었을까? 탑돌이를 하다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부부는 아니어도 그저 서로를 지켜주고 아껴 주는 마음만으로 천 년을 이어 왔기에 과연 가없는 사랑이었다.

처음 감은사지를 찾았을 때 동서 나란히 놓인 석탑을 보며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지아비와 지어미의 서로에 대한 보살핌은 모든 것이 소실되어 갔음에도 그 자리를 지키게 했다.

오고 가는 세월의 무게에도 아랑곳없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수많은 사연을 품은 석탑은 주위의 수군거림에 개의치 아니하고 자신의 갈 길을 묵묵히 걸어 나왔다.

하나의 별이 우주에서 빛을 발하는 것보다는 두 개의 별이 함께 어우러졌을 때 그 아름다움은 더욱 빛날 수 있다. 하나가 아닌 둘의 탑이었기에 모질고 긴 아픔의 세월을 함께 이겨낼 수 있었다.

석양에 물든 삶의 흔적들이 모두 일어나 세상을 향해 소리칠 때 의연히 받아 줄 수 있는 하늘 닮은 호수는 감은사지의 지킴이 곧 나란히 선 쌍탑인지도 모른다.

두 나뭇가지가 맞닿아서 같이 살아가는 것을 연리지라 한다. 화목한 부부 또는 남녀 사이를 일컫는 말이다. 석탑의 조화는 곧 부부의 이해와 너그러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움을 틔워 석탑 주위를 설렘과 희망으로 부풀게 하는 날에도, 초록의 싱그러움이 끝없는 우주를 향해 빛을 쏘아 올리는 날에도 석탑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스산한 가을날 낙엽들이 정처 없이 뒹굴다 자신이 마음 둘 곳에 발길을 돌리는 날에도, 눈 덮인 감은사지에 적막이 흘러내려 홀로 고독을 이겨낸 날에도, 의연한 자세로 사계를 함께 즐긴 석탑이었다.

감은사지에는 세월을 이긴 돌판 여러 개가 불상 대신 가부좌를 틀며 앉아 있었다. 가람의 모습은 역사 속에 소멸되어 갔으나 절의 흔적만은 석탑이 지켜 오고 있었다.

금당의 바닥을 돌다리처럼 만든 후 건물을 세워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이 감은사의 금당으로 들어와 쉴 수 있도록 만든 구멍 난 흔적을 보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법당이 있던 곳에 돌판 여러 개와 이름 없는 들풀들이 옹기종기 마음 붙이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자랑스러움마저 일었다. 사라져 가는 역사를 작은 힘으로 버틴 흔적들은 또 다른 역사를 지켜 왔다.

감은사가 소실되면서 무명의 풀들은 대웅전이 있던 곳에 둥지를 틀며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가람이 배치되었던 곳은 곧 들풀의 안식처가 되었다. 왕실에서 행차하여 사찰로 올라올 수 있도록 쌓은 석단도 바닷물에 씻기고 깎여 흐릿한 자취만 남았지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수북한 잡풀들이 석단 대신 길을 안내했다.

감은사지에서 내려다본 들판은 마치 이웃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일었다. 작지만 아담하고 소박한 들판은 외로운 역사를 이겨내던 석탑이 위로받은 곳인지도 모른다.

석탑은 사시사철 한곳만 응시해야 했기에 보이는 곳이 세상의 전부였다. 그러면서도 천 년 역사를 흡수하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대왕암의 정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문무왕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동해 바다가 유난히 푸른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거대한 불덩이가 수평선으로 고개를 내밀때 마다 대왕암을 스친 기운은 고스란히 감은사지 삼층 석탑에 스며들었다. 버려야 할 것과 담아야 할 것의 경계를 알고 있는 석탑은 햇살을 품으며 상대의 석탑에게로 따스함을 보냈다. 서로에게 온기를 건네느라 석탑에게는 늘 따사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역사 속에는 많은 가람이 사라지고 여러 개의 절터가 남아 있다. 남북의 회랑보다 동서 회랑의 길이가 길게 구성된 점과 금당을 중심으로 동서의 회랑을 연결하는 중회랑을 둔 점은 감은사만이 가진 특징이었다.

충심과 효심이 새겨진 돌판은 모나지 않은 부드러운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긴 역사를 이어 온 충효가 지금까지도 맥을 이을 수 있었던 것은 쇠로 된 찰주가 노반석을 관통하여 탑신부에 꽂혀 있었기 때문이리라.

탑신부에서 사람의 근본 도리인 가르침이 흘러내려 화랑의 세속오계를 탄생시켰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찰주는 선비의 위상처럼 곧은 모습으로 석탑의 지조를 지키고 있었다.

세상 흐름에 빠르고 느림을 탓하지 않는 동탑과 서탑에 핀 사랑의 꽃은 여유와 너그러움이라는 씨앗을 어제에 이어 오늘도 뿌리고 있다. 감은사지의 삼층 석탑은 우주 속에 자리한 끊을 수 없는 부부애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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