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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목소리 / 장석창

부흐고비 2020. 2. 14. 18:38

엄마의 목소리 / 장석창
제19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


“인공호흡기는 언제까지 달아야 하나? 심폐소생술은?”

중환자실에서 장인어른의 면회를 마친 후였다. 처가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장모님이 내게 물어보셨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림을 느꼈다. 그들은 사위가 아닌 의사로서 내 의견을 구하는 듯했다. 아니 보호자와 담당 의사의 생각을 절묘하게 절충한 답변을 기다렸다고 봐야 할 게다. 중환자실로 옮긴 뒤 50여 일을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연명하고 계신 장인어른은 거의 뇌사상태다.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여러 차례 고비를 넘기신 장인어른의 7년여에 걸친 투병 생활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가족들은 지쳤고 점점 무덤덤해져 갔다. 이제 결정할 때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던 ‘중단과 지속’이라는 상반된 단어의 충돌이 아마 그들에게도 있으리라. 의사라는 이유로 어려운 결정을 슬쩍 내게 미뤄버리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힘들었다. 대신 내가 신경외과 전공의 때 만났던 어느 모자(母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진이는 식물인간 상태의 여섯 살 남자아이였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신경외과 인턴으로 의사생활을 시작한 3월 초, 진이 모자와 나는 처음 만났다. 진이는 식물인간 상태의 남자 환자들이 모여 있는 다인병실에 입원해 있었다. 식물인간이라는 선입견을 배제하면 진이의 겉모습은 잠든 그 또래의 아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두침침한 분위기의 병실에서 노인들 사이에 누워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진기한 풍경이었다. ‘어린아이가 왜 식물인간이 되었을까?’ 이런 호기심도 잠시뿐, 처음 시작한 의사생활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나에게 더 이상의 의문은 생기지 않았다. 당시 신경외과 인턴의 주요 업무는 식물인간 환자들에 대한 처치였다. 진이도 여느 식물인간 환자처럼 코에 비위관, 목에 기관절개관을 꼽고 있었다. 어린 진이에게 하는 처치는 일반 성인들보다 훨씬 힘들었다. 더구나 나는 초보 인턴이 아닌가. 손놀림이 서투를 수밖에. 내가 비위관을 꼽기 위해 오랜 염증으로 좁아진 진이의 콧구멍을 여러 번 쑤셔대고 있으면 옆에 있던 진이 엄마가 거들었다.

“인턴선생님, 이건 이렇게 하면 더 잘 될 것 같은데요.”

정말 그랬다. 처치 중 진이의 양쪽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통증을 느껴서라기보다는 자극에 대한 반사작용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진이가 할 수 있는 존재증명이기도 했다.

진이 엄마는 조금 특별한 보호자였다. 그 병실에 가면 온통 진이 엄마의 목소리만 들렸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오랜 간병생활에 지쳐서 무표정하고 말이 없어지지만 그녀는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처치를 하러 병실에 들어가면 굳어진 아들의 사지를 주물러 주며 말을 건네고 있는 엄마와 눈을 감고 그 말을 경청하고 있는 것 같은 아들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진아, 우리 진이 치료해 주려고 선생님이 오셨네. 아파도 조금 참아요. 그래야 얼른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지.”

‘참, 저게 다 무슨 소용이람. 혹시 청각이 살아있다 해도 그냥 소리로만 들릴 것을. 훌륭한 사람? 그래, 진이가 이런 모습이라도 살아있는 것이 엄마한테는 훌륭한 사람일 테지.’

열 달 동안 아기를 품은 모정(母情)의 깊이를 그때는 가늠할 수 없었기에 진이 엄마의 행동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소 냉소적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진이 엄마는 뱃속에 진이를 품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자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임신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엄마는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이 기뻤다. 말로만 듣던 모성애를 처음으로 느꼈다. 그때부터 진이와의 교감은 시작되었다. 사랑한다 말해주었고, 동화책을 읽어주었고, 자장가도 불러주었다. 진이를 쓰다듬어주는 마음으로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진이는 양수의 진동으로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 출렁임으로 엄마의 손길을 느꼈다. 기분이 좋을 때면 팔을 휘젓거나 발길질을 하면서 엄마의 사랑에 답해 주었다. 태동(胎動)을 느낀 엄마는 행복했다. 지금 식물인간 상태인 진이도 엄마에게는 그때와 다르지 않다. 진이가 눈을 깜빡이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몸을 움찔하는 것을 볼 때면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뱃속의 진이에게서 느꼈던 태동처럼.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뱃속의 진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자라 태어났던 것처럼, 엄마는 진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진이 모자와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1년 후 나는 신경외과 전공의로서 진이의 주치의가 되었다. 주치의가 되면서 진이의 병력을 살펴보았다. 진단명에는 ‘외상성 뇌경막하 출혈과 미만성 축색돌기 손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2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진이는 수차례 뇌수술 후 생명은 건졌지만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 나는 사고 경위를 알고 싶어서 진이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이었어요. 마중을 나가야 하는데 제가 조금 늦었지요. 나가보니 차는 벌써 떠났고 진이 혼자 서 있더군요. 그래서 힘껏 진이를 불렀지요. 소리를 듣고 달려오다가 그만….”

자책감 때문인지 진이 엄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반가웠던 진이는 주위를 살피지 않고 엄마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사고 직전에 들었던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의미를 알고 들었던 마지막 엄마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No Interval Change’

선배 전공의가 기록한 진이의 경과기록지에는 이 문구가 무수히 적혀 있었다. 사고 직후 수술을 하고 지금의 상태로 고정된 후, 의료진에게 진이는 관심 밖의 환자였다. 의학적으로 거의 변화가 없는 상태, 중환자가 넘쳐나는 대학병원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특별히 더 해줄 치료 방법이 없었다. 의국회의에서 진이의 이름은 거론된 적이 없었다. 회진 때에도 진이가 있는 병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경로에 불과했다. 모든 치료는 주치의인 내가 맡아서 했지만 딱히 담당교수님께 보고드릴 일도 없었다. 나 역시 진이의 경과기록지에 항상 이렇게 적을 수밖에 없었다. ‘No Interval Change’

의료진의 무관심에도 진이 엄마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가끔 볼 일이 있어서 그 병실에 들를 때면 다정한 모자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회진을 돌던 중에 담당교수님이 신기하다는 듯 말씀하셨다.

“오, 이 녀석. 몰라보게 컸네.”

담당교수님의 눈에 진이가 오랜만에 보였던 모양이다. 엄마의 목소리에 응답이라도 하듯 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이렇게 진이는 또 다른 존재증명을 하고 있었다.

그해 장마철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을 자려는데 창밖에서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밤이었다. 아침에 의국회의 준비로 바쁜 나에게 병동에서 호출이 왔다. 진이의 호흡에 이상이 있다는 것이다. 진이 엄마가 발견하고 병동 간호사에게 알린 모양이었다. 급히 진이에게로 달려갔다. 진이는 자가 호흡이 거의 없었고, 혈압도 잡히지 않았다. 신경학적 검사를 해보니 동공은 확대되어 있었고, 다른 뇌간 반사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어젯밤까지 멀쩡하던 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분명히 뇌에 산소공급이 제대로 안 됐을 텐데….’ 진이 엄마에게 물어보니 특별한 일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급히 진이를 중환자실로 옮기고 응급처치를 했다. 의국회의에서 담당교수님께 보고 드렸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간단히 말씀하셨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밤사이 기관절개관이 막혔던 모양이구만. 그래서 저산소성 뇌손상이 온 거야. 원래 뇌가 온천치 못했으니 더 치명적이었겠지.”

실로 오랜만에 의국회의에서 진이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상태가 나빠져야만 의료진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진이의 현실이었다. 회의가 끝났을 때 나는 이것이 진이의 마지막 남은 존재증명이 아니길 바랐다.

진이의 상태는 계속 나빠져서 거의 뇌사상태가 되었다. 중환자실에서 나오면서 진이 엄마와 면담을 했다.

“지금은 거의 뇌사상태인 것 같습니다. 언제 심정지가 올지 모르겠습니다.”

진이 엄마는 각오하고 있었다는 듯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

“심정지가 오더라도 심폐소생술은 하지 말아주세요. 교수님에게도 그렇게 전해 주세요.”

내 귀가 의심되어 진이 엄마에게 다시 물어보았는데 대답은 여전했다.

“왜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지요.”

“거의 뇌사상태라면서 심폐소생술은 왜 하시려는 거지요?”

“기적이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그냥 보내기에는 진이가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심장이 다시 뛰면 이전 식물인간 상태로라도 돌아오나요?”

물론 그건 아니다. 뇌사로 진행되고 결국 죽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환자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는 알량한 자부심이라도 세우시려는 것은 아닌가요? 평소에는 관심도 없으셨으면서….”

진이 엄마는 그간의 서운함을 토해냈다. 정곡을 찌르는 그녀의 말에 내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은 이어졌다.

“그리고 제가 왜 진이가 못 알아듣는지 알면서도 제 목소리를 계속 들려줬는지 아세요? 그건 제 목소리가 진이에게는 뱃속에서부터 들었던 가장 친숙한 소리였기 때문이에요. 진이는 제가 얼굴을 쓰다듬어주면 눈을 깜박거리기도 했고, 이야기를 해주면 몸을 움찔하기도 했어요. 그래요. 우리는 그렇게 통했어요. 그런데 지금 진이는 전혀 반응이 없더군요. 아마 진이도 엄마의 사랑을 못 느끼며 살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심폐소생술이란 게 가슴을 짓이기듯이 누르고, 전기 충격을 줘서 온몸을 팔짝 뛰게 하는 거지요? 그 조그만 가슴에… 흐흑, 이제 진이에게 더 이상의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아요.”

한동안 진이 엄마와 나는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피하듯이 그 자리를 떠났다. 담당교수님께 말씀드리니 그냥 보호자가 원하는 대로 해주라고 하셨다.

진이에게 심정지가 임박했다. 나는 가족들에게 진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 했다. 진이 엄마는 진이 얼굴과 심장박동이 그려지는 모니터를 교대로 바라보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이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아들에게 들려준 마지막 엄마의 목소리였다. 잠시 후 진이의 심장이 뛰지 않는 것을 확인한 나는 사망선고를 내렸다. 오열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오랫동안 병과 싸우다 떠난 작은 남자아이가 내 앞에 누워있다. 아이는 사고 직전에 달려가서 안기려 했던 엄마의 품에 다시 일어나 안기고 싶지 않았을까? 자기를 아프게 했고, 자기 삶을 너무나 짧게 만들었던 어른들을 원망하지 않았을까? 회진 때마다 자기 앞을 무심히 지나가 버리는 의사들에게 서운하지 않았을까? 엄마 뱃속에서부터 지금까지 들어왔던 엄마의 목소리가 앞으로 그립지는 않을까?’

나는 진이가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곳에서 편히 쉬기를 빌었다. 창밖에는 장맛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진이 모자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처가 식구들은 아무 말 없이 헤어졌다. 며칠 후 장인어른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편안히 영면(永眠)하셨다. 인공호흡기를 떼고 한 시간 만에. 나는 한 발짝 뒤에 서서 주치의 선생의 무미건조한 사망선고를 들었다. 순간, 지난날 나에게 사망선고를 들었던 몇몇 보호자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깨달았다. 의사는 측정된 활력징후로만 환자를 보려 하지만, 보호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환자를 살핀다는 사실을. 그리고 두 평행선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진이 엄마의 결정이 정말로 옳았는지 알지 못한다. 진이 모자의 이야기가 처가 식구들의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도 알 수 없다. 계측되지 않는 것은 어느 의학서적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진이 엄마나 처가 식구들 모두 망자(亡者)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사실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진이에게 죽음이란 무엇일까? 그저 깊은 잠에서 더 깊은 잠으로 빠져드는 과정일까? 타인에 의해 결정된 삶의 마감 시간, 자신은 의사조차 밝힐 수 없다. 주치의인 나는 철저히 들러리다. 심장이 멈추기를 기다리다 사망선고만 내릴 뿐. 진이 엄마는 말한다. 진이에게 더 이상의 아픔을 주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이별의 순간, 마지막으로 엄마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진아, 우리 꼭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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