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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매화는 얼어야 핀다 / 손광성

부흐고비 2020. 2. 18. 21:41

매화는 얼어야 핀다 / 손광성


오랜 세월 두고 매화만큼 사랑을 받아 온 꽃도 달리 더 없을 듯싶다. 시인치고 매화를 읊지 않으이 없고, 화가치고 매화 몇 점 남기지 않는 이 드물다.

사랑을 받으면 부르는 이름 또한 그만큼 많아지는 것일까. 매화는 달리 부르는 이름이 없다. 청우淸友니 청객淸客이라 하기도 하고, 일지춘一枝春, 또는 은일사隱逸士라고도 한다. 모두가 그 맑고 깨끗한 품성을 기려 이르는 말이다. 게다가 엄동설한에도 훼절함이 없는 고아한 청결. 해서 매화는 소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에 넣기도 한다.

진나라 때이다. 한때 문학이 성하자 매화가 늘 만개했다고 한다. 그러다 문학이 쇠퇴하자 매화도 따라서 피기를 멈추었다고 한다. 그 후부터 문학을 사랑하는 꽃나무라 하여 호문목好文木이라 부르기도 한다.

꽃과 시, 시인과 꽃나무 그리고 그들의 교감.
빙자옥절氷姿玉折 이여, 눈 속에 네로구나.
차고 맑은 자태를 이렇게 하는 이는 가객 안민영이었다.

“암향부동월황혼(暗香浮動月黃昏)”은 임포(林逋)의 시이다. 그는 서호西湖에 숨어서 매화를 아내로, 학을 아들로 삼고, 조용히 살다간 송나라 시인이었다. 매화의 요정이 그에게 저 아름다운 시심을 불어넣어 준 것일까. 매화에 한해서만은 이백에게도 이만한 것이 드물다.

몇 해 전이었다. 도산서원에 갔더니 뜰 안에 매화나무가 가득했다. 매화가 한창일 무렵이 되면 퇴계는 도자기로 된 둥근 의자를 내다 놓고 그 밑에다 숯불을 피우게 했다. 의자가 따뜻해지면 그 위에 앉아 추위도 잊은 채 매화를 완상했다고 한다. 그 의자에도 매화무늬가 투각(透刻)으로 새겨져 있었다.

섣달 초여드레, 한서 암에서 운명하던 날 아침,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한마디였다고 한다. 그는 그날 저녁 늦게야 눈을 감았다. 벽에 꼿꼿이 기댄 채 조용히 잠든 것이다. 그의 나이 칠십. 한 송이 매화처럼 조용히 피었다 진 것이다.

퇴계와 비슷한 시기에 어몽룡(魚夢龍)이란 화가가 있었다. 그의 ‘월매도’는 기이하면서도 고아한 품격으로 유명하다. 비백飛白으로 처리한 늙은 등걸과 줄기는 힘이 넘치고,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어린 가지는 매화의 청결을 드러내고도 남음이 있다.

문기文氣는 어떨지 모르지만 장승업張承業의 매화도에도 볼만한 것이 많다. 그 가운데 열두 폭 ‘홍백매 병풍’은 보는 이의 넋을 빼앗을 만한 하다. 활달한 필력, 분방한 묵법, 그리고 그 대담한 구도, 그 장쾌한 기상에 절로 무릎을 꿇게 된다.

요새도 매화를 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거두어 들일만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도배지로 쓰인다 해도 별로 아까울 것이 없는 그림들이 인사동 골목에 지천으로 쌓여 있다. 기천 원에라도 팔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매화가 무엇인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 봐도 그 운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손끝으로만 매화를 ‘그리기’ 때문이다.

어느 꽃도 그렇지만 매화에도 가짓수가 많다. 홍매, 백매, 납매, 녹엽매, 중엽매, 그리고 원앙매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강매는 들에 씨가 떨어져 절로 나온 것으로 야매野梅라고도 하며, 동지 전에 핀다 하여 조매라고도 이른다. 또 녹엽매를 일러 녹악매라고도 하는데, 다른 매화와는 달리 꽃받침이 녹색이다.

꽃의 모양에는 홑꽃과 겹꽃이 있고, 색깔에는 흰색과 분홍과 빨강이 있다. 그 가운데 겹꽃보다는 홑꽃을 더 치고, 홍매보다는 백매를 한층 더 윗길로 친다. 그리고 그 꽃받침이 파란 청악매는 하얀 눈빛의 냉기와 잘 어울려서 더 한층 맑고 청아해서 좋다.

하지만 성에가 하얗게 낀 유리를 통해 바라보는 홍매도 여간 아름답지 않다. 우리 집 홍매는 동양화 물감 중에서 연지색과 같은데, 그 미묘한 색감이 늘 나를 감동시키곤 한다. 정숙하면서도 속으로 염염히 타오르는 정열과 절제를 함께한 그런 여인이라고나 할까.

여기 매화에 얽긴 슬픈 전설이 하나 있다.

옛날에 한 도공이 있었다. 그런데, 혼례를 사흘 앞둔 어느 날, 그의 약혼녀가 그만 죽고 만 것이다. 도공은 도무지 살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매일 그녀의 무덤을 찾아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덤가에서 매화 한 그루를 발견하게 되었다. 도공은 그 매화를 마당에 옮겨 심었다. 그리고 늘 그녀를 대하듯 사랑했다. 하지만, 도공도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이 가 보았더니, 죽은 도공 옆에 전에 보지 못했던 예쁜 도자기 하나 놓여 있었다. 뚜껑을 열어봤더니 조그만 새 한 마리가 날아 나왔다. 새는 뜰에 핀 매화나무 가지 위에 가서 앉더니 슬프게 울더라는 것이다. 이 새가 바로 휘파람새라고 한다.

이제 윤회설을 믿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꽃이 된다면, 나는 죽어서 새가 되어도 좋으리라.

요새는 난을 가꾸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매화를 가꾸는 사람은 드물다. 가꾸기가 어렵기 때문일까. 아니면 꽃이 지는 것이 슬프기 때문일까? 다른 나무와 달리 매화는 여름에 가지치기를 한다. 그래야 꽃봉오리가 실하게 맺힐 뿐만 아니라 등걸과 줄기가 드러나게 되어 답답하지 않고 성근 맛이 나서 격이 높게 되기 때문이다.

꽃도 촘촘히 붙은 것보다는 드문드문 맺힌 것이 운치를 더해 준다. 말해서 선미禪味의 세계이다. 여름에는 햇빛이 잘 드는 노지露地가 좋고, 겨울에는 오히려 서늘한 곳이 좋다. 매화는 얼어야 비로소 피는 꽃이다. 사람도 시련과 역경을 이겨낸 뒤에라야 인품의 향기가 더한층 높은, 그런 이치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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