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가릉빈가의 노래 / 조이섭

부흐고비 2020. 10. 27. 08:46

은해사 돌담을 낀 자드락길로 접어들었다. 초여름 비는 사붓사붓 내리고 산 벚이 구름처럼 피었던 가지는 연한 초록으로 함초롬히 젖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은 길 오른편 왼편으로 자유로이 갈마들며 알레그로에서 안단테로 박자를 바꾸어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산새들도 여기저기에서 저마다의 목소리로 낯선 손님을 반겼다. 마치 가라앉은 내 마음을 아는 듯, 이쪽으로 잘 왔다고 귓불을 간질여대었다.

아침 밥상머리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아내와 목소리를 높였다. 욱하는 마음에 집을 나서기는 했으나 마땅히 갈 곳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불현듯, ‘길 위에서’라는 TV 리포트에서 본 백흥암 가릉빈가 생각이 나서 비가 내리는데도 길을 나선 참이었다.

가릉빈가(迦陵頻伽)는 극락정토에 깃들어 산다는 극락조의 다른 이름이다. 이 새는 불경에 나타나는 상상의 인두조신상(人頭鳥身像)으로 자태가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소리 또한 묘하다고 한다. 부처님께 공양하는 날에 가릉빈가가 내려와 춤을 추었다고 전해지면서, 불단이나 부도를 장식하는 소재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중에 은해사 백흥암의 극락전 아미타 삼존불을 받치고 있는 불단 좌측에 새겨진 가릉빈가가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허리에는 가는 띠 매듭을 하고 머리 위로 천의를 휘날리고 있다. 가릉빈가는 대부분 악기를 들고 있는데 반해, 이곳에는 공양물을 연잎 위에 받쳐 들고 있어 더욱 이채롭다고 한다.

부처님의 모습은 사찰의 불상이나 탱화를 통하여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었던 부처님의 목소리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 범음(梵音)을 내는 가릉빈가는 부처님의 또 다른 화현이라 일컬어진다. 부처님의 음성은 아침을 깨우는 참새 소리처럼 낭랑할까, 아니면 첼로같이 묵직한 저음일까.

달포 전, 정혜스님이 들려주신 언어도단(言語道斷)이 생각났다. 말의 길이 끊어진, 말이 필요 없는 경지에 있는 가릉빈가 소리를 찾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시도일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옛사람들은 집안에서 나는 듣기 좋은 소리로 갓난아이 우는 소리, 자식들의 책 읽는 소리, 길쌈으로 베 짜는 소리를 삼길성(三吉聲)이라고 했다. 여기에다 아기 젖 먹는 소리, 자식 목구멍에 음식 넘어가는 소리, 마른 논의 물꼬에 물들어가는 소리를 보태기도 했다.

환경부에서 친근하고 울림이 있는 한국의 소리 백 개를 꼽은 적이 있었다. 얼음장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 가시연꽃밭의 폭우 소리, 싸리비로 낙엽 쓰는 소리, 콩 도리깨질 소리, 참매미 우는 소리, 가을바람에 풍경 우는 소리 등이었다.

우리 주위에 아름다운 소리가 이렇게 많이 있었지만, 사는 것이 바빠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듣고도 아름답게 느낄 여유조차 없이 살았던 탓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들었던 아름다운 소리를 가만히 더듬어 보았다.

어느 미술전시회에서 축하연주 순서가 있었다. 전동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지체가 부자유스러운 아이들이 찡그린 얼굴로 온몸을 비틀어 가며 오카리나와 하모니카를 연주했다. 그 어느 이름난 오케스트라가 내는 소리보다 맑았다. 흡사 가릉빈가가 춤출 때 연주했다는 무곡(舞曲)인 듯했다. 얼마나 많은 수고와 땀으로 만든 소리일까. 연주가 끝난 뒤에 활짝 웃는 얼굴은 또 얼마나 깨끗한지, 멀쩡한 내 눈과 귀가 부끄러웠다.

이런저런 상념을 안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수록 기개 좋은 소나무가 많아졌다. 그 위세에 눌려 단풍나무가 길 양옆에 야트막하게 숨어 있는 모퉁이를 돌아드니 곧바로 백흥암이었다. 하지만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보화루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는 건물에도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하릴없이 쪽문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려니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비구니 스님이 보였다. 반가운 김에 극락전 참배를 부탁드렸더니, 이곳은 비구니 수행도량이라 초파일과 백중날에만 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때 와서, 극락전 불단과 함께 진영각 마루에 걸려있는 추사 선생이 쓴 십홀방장(十忽方丈) 현판과 기둥에 걸려있는 주련도 감상하라고 했다.

스님의 말을 듣고도 아쉬움이 남아 가릉빈가가 있는 극락전 추녀라도 보이나 싶어 까치발을 하고 있으려니, 이번에는 주황색 옷을 입은 행자 스님이 나왔다.

“오신 김에 물이나 한 모금하고 가시지요. 여기 물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대문 안으로 따라 들어가 행자 스님이 건네는 바가지에 담긴 샘물을 달게 마셨다. 평일에, 그것도 비 오는 날에 혼자 기웃거리는 사람을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괜히 궁싯대며 헛말이 나왔다.

“작년에 정년퇴직하고 이곳저곳 다닙니다.”

“그러시면, 인제 그만 출가를 하시지요. 참 좋아요.”

길 가다 생면부지인 사람에게서 에멜무지로 교회 나오라는 소리는 들어 봤어도 산 중에서 출가하라는 말을 듣는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아니, 아니요.”

크게 손사래를 치면서 웃었다.

극락전 불단의 가릉빈가는 끝내 보지 못했다. 대신에, 개울물과 바람, 그리고 산새가 연주하는 자연교향악은 백흥암을 오르고 내리는 내내 들었다. 자연과 주위의 소소한 것들이 내는 아름다운 소리, 바로 가릉빈가의 노래였다. 마음의 귀는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내가 속해 있는 세상의 더 낮은 곳에서 자기 노래를 부지런히 찾아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웠다. 아침에 아내와 다투어 언짢았던 마음은 어느새 비에 씻긴 산벚 이파리처럼 푸르고 싱싱해졌다. 돌아오는 백중날에는 가릉빈가를 꼭 친견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날은 가릉빈가도 불단에서 살며시 빠져나와 연잎으로 받들고 있던 공양물을 부처님께 올린 다음, 비파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지 않을까. 극락전 추녀만 봐도 마음과 몸이 이렇게 가벼워지는 걸 보니, 나도 그날은 가릉빈가의 하늘거리는 천의(天衣) 한 자락 잡고 덩실당실 춤추며 이 길을 내려올지도 모르겠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의 조건을 읽다 / 박영숙  (0) 2020.10.28
종택(宗宅) / 석민자  (0) 2020.10.27
침묵의 무덤 / 김태호  (0) 2020.10.26
놋그릇을 닦으며 / 임화수  (0) 2020.10.26
놋수저 / 이부림  (0) 2020.10.26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