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삶의 조건을 읽다 / 박영숙

부흐고비 2020. 10. 28. 09:15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청도 임당리 마을을 들어서 고샅길을 따라간다. 고택의 흙돌담을 끼고 걸으니 솟을대문이 버티고 섰다. 좌우로 마구간과 방을 거느려 여느 대갓집 대문 못지않다. 이리 오너라 외치면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나올 것 같다.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인적 없고 쓸쓸한 기운만 감돈다. 바깥마당 넓은 터에 사랑채가 휑하니 홀로 서 있다. 사랑채를 한 바퀴 돌아보니 뒤쪽 바람벽에는 오래된 벽에서 흙이 부서져 내리고 있다. 오랜 비바람의 흔적이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빈집은 바람에 흩어지는 구름처럼 허허롭다.

큰 사랑채의 구조가 특이하다. 홑처마 팔작 기와지붕으로 정면 네 칸 좌측 두 칸 규모의‘ㅡ’자형 평면 형태이다. 우측 두 칸은 대청이고, 좌측 두 칸은 온돌방이다. 사랑채 앞 공간은 막힘없이 훤해 중 사랑채와 마주하고 있는데, 가만 보니 중 사랑채나 안채로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감시하는 구조이다.

중 사랑채 앞 나무 판벽과 나란히 ‘ㄱ’자 모양의 쪽담이 앙증스럽게 섰다. 대문채나 큰 사랑채에서는 중 사랑채 마루 앞이 살짝 가려진 상태다. 중문을 드나들며 내외가 정면으로 대면하는 거북함을 피하기에 안성맞춤이겠다.

중 사랑채 우측 마당을 지나면 토담으로 별곽을 구성한 사당이 나온다. 서북향은 자나 깨나 임금을 바라보는 충성의 표시이다. 별묘에서 이 집안 내력이 담긴 가첩이 발견되었다. ‘내시부통정 김일준가세계’로 우리나라 내시 집안의 내력을 엿볼 수 있다.

후원에 작은 연못이 있다. 수초를 비집고 주황색 나리꽃 몇 송이 환하게 피어 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아 잡풀이 무성하지만, 그 시절에는 계절 따라 온갖 예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테지. 벌들이 잉잉거리고 호랑나비 춤추는 꽃밭을 거닐며 내시 아내는 외로움을 달랬을 것이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 앞에 다다랐다. 중 사랑방 처마 앞 나무 판벽에 하트 모양의 구멍이 세 개 나란히 나 있다. 중 사랑채에 기거하던 내시가 안채에 있는 아내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말년에 몸피가 더 줄어든 내시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구멍에 눈을 디밀고 중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훑어보았겠지. 하트 모양의 구멍에 나도 눈을 갖다 댔다. 감시자의 마음으로 밖을 내다보니 기분이 묘하다.

중문을 지나 안채로 들어간다. 중 사랑채 왼쪽 한 칸에 중문이 있고 오직 이 중문을 통해서만 안채로 드나들 수 있다. 안채는 뒤뜰과 튼 ‘ㅁ’자형으로 사방에 건물이 서 있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흙담과 판벽으로 막아 빈틈이 없는 폐쇄 공간이다. 툇마루에 앉아서 하늘을 보면 좁고 네모져서 조금 답답하게 보인다.

안채 뒤를 돌아가니 넓은 뜰이 나온다. 채마밭인가 보다. 내시 아내가 푸성귀를 가꾸며 그나마 답답한 일상을 달랬겠지. 해 질 녘이면 뒤뜰에 나와 먼 산 너머에 있을 고향을 그리며 하염없이 올려다보았을 하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데, 옛사람의 모습은 간곳없다. 뜰에는 싱그러운 푸성귀 채소나 도라지꽃도 하나 없이 나비도 날아들지 않는 황무지인 채 잡풀만 무성하다.

안채의 담은 이중으로 둘러쳐 있다. 안채와 뒤뜰을 싸고도는 나지막한 안쪽 담은 내시 아내의 행동거지가 다 드러난다. 반면, 바깥쪽 담은 넓은 집터 전체를 경계로 길고도 높아 보통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다. 어느 곳도 몸 하나 빠져나갈 틈새가 보이지 않는다. 내시의 부인은 친정 부모님 사망 때만 외출이 허락되었다. 창살 없는 감옥살이가 몸과 마음을 옥죄는 신세, 차라리 한 마리 새가 되어 훨훨 날고 싶었겠다.

누구에게나 타고난 운명이란 것이 있다. 내시의 운명은 기구하다. 평범한 지아비의 삶을 살지 못한다. 내시라는 모멸감도 견디어야 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품어주지는 못할망정 자나 깨나 감시해야 한다. 그 설움과 아픔과 미안함은 다 끌어안고 살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속울음을 울었을까.

인간이라면 자신의 핏줄을 이은 자손을 원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세상 사는 재미 가운데 하나이다. 내시의 대궐 같은 집에는 갓난쟁이 울음소리도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깥사람을 함부로 들이지도 못했다. 적막한 안채에는 내시 아내의 한 서린 깊은 한숨만이 반짇고리에 서리서리 담겨 있는 듯하다.

내시나 내시 아내는 봉건시대의 문화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인간의 기본권인 의, 식, 주, 성 가운데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내어놓아야 했다. 가난한 집 아이를 들였으므로 양자는 밥을 얻기 위해서 성을 포기했다. 내시 아내는 임신과 출산의 기쁨도 누리지 못했다. 지금으로 보면 참으로 비인간적인 문화였다.

인생의 주체는 나다. 나로 살면서 책임과 권리와 의무는 내 삶의 조건이다. 이순을 지나니 삶이란 특별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누리는 희로애락이 삶이었다. 의무는 있고 소소한 일상에서 기쁨을 얻는 권리를 못 누린 저들의 삶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솟을대문을 나와 다시 긴 담장을 따라 걷는다. 같은 여자로서 그 설움이 빙의되어서일까.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내시 아내의 일상이 어른거린다.

 

 

수 상 소 감


올여름에는 유난히 긴 장마와 태풍에 코로나19로 사람들은 많이 지쳐 있습니다. 이제 아침저녁 선선해진 날씨에 다시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아 뭔가를 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설렁설렁 흘려보낸 날들, 게으름에 익숙해진 습관들을 툭툭 털어내고 몸도 마음도 굳건히 일으켜 세워야겠습니다. 새벽잠에서 깨었다가 다시 설핏 잠이 들었나 싶은데, 누군가 나의 이름을 호명하여 번쩍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대구일보’ 발신의 ‘입선’ 축하 문자를 받았습니다. 끄트머리에 겨우 걸린 작품이라서 내놓고 자랑하기에는 부끄럽지만, 첫 수확이라 내심 기쁘기도 했습니다. 늦깎이로 이순이 넘어 시작한 문학 공부이기에, 초석으로 다져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장을 열어주신 대구일보에게 감사드립니다. 창작을 지도해주신 선생님과 문우님들 고맙습니다. 나이 들어서도 공부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응원해주는 우리 가족들과 이 기쁨 함께 하겠습니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롓걸음 / 박윤효  (0) 2020.10.29
당신의 의자 / 이정림  (0) 2020.10.28
종택(宗宅) / 석민자  (0) 2020.10.27
가릉빈가의 노래 / 조이섭  (0) 2020.10.27
침묵의 무덤 / 김태호  (0) 2020.10.26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