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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당신의 의자 / 이정림

부흐고비 2020. 10. 28. 09:23

우리 집에는 의자가 많다. 혼자 앉는 의자, 둘이 앉는 벤치, 셋이 앉는 소파…. 언제부터 우리 집에 그렇게 의자가 많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다. 분명 소용이 있어서 사들였을 텐데, 정작 우리 집에는 한 개만 있으면 족하지 않던가.

사람들이 몰려오는 날이면 그것도 모자라 바닥에 내려앉아야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을 때는 그 비어 있는 의자들이 하품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모습이 안돼 보여, 심심한 촌로 뒷짐 지고 마을 가듯, 이 의자 저 의자에 가서 그냥 등 기대고 앉아 본다.

의자의 사명은 누구를 앉히는 것이다.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는 그냥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비어 있는 의자에 앉힐 사람들을 돌려가며 초대를 해 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그 빈 의자에 앉혀 놓고 밤이 깊도록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누구를 초대할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분이 있다. 남보다 더 낯선 우리 '아버지….'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는 일조차 나로서는 참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내가 세 살 때 돌아가셨으니, 나는 아버지의 얼굴도, 음성도, 체취도 알 리가 없다. 다만 남에게서 전해 듣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실감나지 않는 판타지​ 소설처럼 귓가에 어려 있을 뿐이다.

아버지는 일찍이 개명하시어 외국 친구들이 많았지만, 그보다 더 사고思考가 자유로웠던 분인 것 같다. 그 단적인 예가 자식들의 이름을 항렬에 따라 짓지 않고 당신이 선택한 '바를 정正' 자를 넣어 파격적으로 작명을 하신 것이다. 그래서 막내인 내 이름을 '말자'나 '끝순'이 같은 전형적인 여자아이 이름이 아닌 '수풀 림林'자를 넣어 지어 주셨다. 그러면서 음音이 같다 하여 이 다음에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다른 글자도 아닌 '바를 정'자를 자식들의 이름에 넣어주신 건 무슨 뜻이 있었던 것일까. 복이 있되 바른 복을 취하라, 구하되 바르지 않은 것은 탐하지 말라, 구슬도 반듯하게 생긴 것이 더 아름답다, 쇠도 반듯해야 좋은 연장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시며 자식들에게 '바를 정' 자를 넣어주셨던 것은 아닐까. ​

나는 아버지가 지어 주신 내 이름을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이름처럼 바르게 살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다. 수풀 속에서 바른 길을 찾으라 하셨지만, 아무리 헤매어도 내 앞에 펼쳐진 길은 혼돈의 길이었을 뿐이다. 그 혼돈의 길에서 나는 늘 이름값도 못하는 나 자신을 힐책하곤 했다. 나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그날까지 당신이 지어 주신 이름을 화두로 안고 살아가게 될 것만 같다.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 당신이 앉으실 의자는 우리 집에서 제일 가운데에 있는, 가장 좋은 의자가 될 것이다. 그 의자에 앉아 계시는 아버지를 상상해 본다. 나는 아무래도 요즘 딸들처럼 아버지 앞에서 스스럼없이 응석을 부리지는 못할 것 같다. 아버지가 남겨 주신 유산으로 별 고생 없이 살 수 있었으면서도 당신의 부재는 우리를 늘 허전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영화榮華는 당신의 시대에서 끝났지만 그래도 그 풍요로운 추억이 있어 마음이 춥지 않았음을 감사해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아버지가 낯설고 어렵기만 하다. ​

가끔 언니가 말했다. 아버지의 불같은 성격을 네가 가장 많이 닮았다고, 아버지는 당신의 성격을 많이 닮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당신은 그 불같은 성격으로 사업을 성공시키셨지만, 나는 그 성격으로 사람들을 많이 떠나보내야 했으니​…. 그러나 이젠 그 불같은 성격도 많이 누그러졌다. 세월이 나를 유순하게 만든 것이다. 그 순리順理가 나를 오히려 슬프게 한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리면 당신은 아마 측은히 바라보실 것이다. 자식이 늙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처럼 안쓰러운 것은 없을 테니까.

아버지가 내 집에 오시면 원두를 갈아 커피를 대접하고 싶다. 당신이 원두를 담아두셨던 가지 모양의 나무 그릇을 내가 아직까지 가지고 있음을 아신다면 얼마나 감회가 깊으실까. 또 당신이 출타하셨을 떄 손님이 오시면 어린 딸의 손에 들려 명함을 받아오게 한 달마상이 금박으로 그려진 까만 쟁반을 아직까지 내가 갖고 있음을 아신다면 입가에 미소를 지으실까. 당신이 쓰시던 파란 유리 잉크스탠드와 당신이 활을 쏘실 때 엄지손가락에 끼우셨던 쇠뿔 가락지를 내가 가보처럼 아직도 가지고 있음을 아신다면 그 옛날 당신의 영화와 낭만을 어제인 양 추억하시지 않을까.

함께 있다는 것과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 마음이 있으면 시공을 떠나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것을. 젊은 날에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것 같아 외로워하고 안타까워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야 나는 함께 있는 법을 안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을 가슴속에 품고 사는 한, 이렇게 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빈 의자를 바라보며 당신에게 초대장을 쓴다. 이번엔 당신이 오실 차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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