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차롓걸음 / 박윤효

부흐고비 2020. 10. 29. 09:12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문득 고향이 그리울 때가 있다. 화사한 봄기운에 떠밀려 가볍게 길을 나선다. 고향 마을에서 멀지 않은 성밖숲이 나를 부른다.

성밖숲, 왕버들에 가만히 손을 대어 전설을 듣는다. 투박하고 거친 세월이 손끝에 전해온다. 자세히 바라보노라면, 밑둥치가 마치 얼굴이 동그란 전설 속의 아이가 왕버들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 형상으로 보인다. 나무의 정령이 쉬고 있을 것만 같다. 숲길을 걸으면서 오랜 시간을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이윽고 자연의 소리에 이끌려 선석사로 방향을 잡았다. 선석사 전경을 살피다 특이한 법당이 눈에 띄었다. 태실법당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전각이다.

다소곳이 합장을 하며 태실법당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를 봉안한 곳이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산실의 비릿한 냄새 같은 것이 후각을 자극한다. 불가사의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갈하게 진열된 항아리에서 냄새가 날 리 만무하다. 평소 느껴보지 못한 기가 온몸을 움츠리게 한다. 마치 책장과도 같은 진열대가 엄숙하게 무게감을 더해준다. 그 안에 여덟 개의 층을 이루며 태항아리가 질서정연하게 봉안되어 침묵을 지킨다.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선석사 태실은 생명 탄생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이 세상에 한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은 가장 고귀한 일이 아닌가. 후손에 대한 지극정성이 마침내는 이러한 법당을 짓기에 이르렀다.

태실법당 전면의 주련은 대웅전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한글로 쓰여 있으며 마음자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깨우쳐 주는 내용이다. 두 손을 모으고 법당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본다. 벽면에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의 내용과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잉태하고서 지켜주신 은혜로부터 시작하여 최후까지 자식을 연민히 여기시는 은혜까지 열 폭의 그림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옛날 우리 할머니는 태항아리를 봉안하기까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귀한 손자를 얻었다고 동생의 탯줄을 벽에 걸어두고 무탈하게 자라기를 빌고 또 비는 것을 보았다. 후손을 귀히 여기는 것은 유한한 생명에 대한 애착의 발로이리라. 생자필멸이라 했던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때가 되면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살아가면서 보고 듣게 된다. 한 집안에는 탄생의 기쁨과 떠나보내는 슬픔이 공존하고 있다. 손자의 재롱에 세상시름 다 잊고 지내는 즐거움도 한때인 듯하다. 인생에 있어서 숙살의 시기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사람들은 차롓걸음이라 한다.

우리 할머니, 맛있는 것을 아껴 두었다가 “학교 다녀왔습니다” 하고 뛰어드는 손자들을 온몸으로 안으며 입에 넣어 주셨다. 그러던 할머니가 영면하셨다. 난생처음, ‘꺼이꺼이’ 애통해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무너졌었다. 우리에게 태산 같은 아버지도 할머니에게는 그저 아픈 손가락의 애틋한 아들이었으니 그 정을 어찌하랴. 한 분이 떠나시고 온 집안이 눈물바다였을 때 얼마 지난 후 막내가 태어났다. 탄생의 기쁨으로 선친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꼬물거리는 동생을 보며 형제들의 가슴 밑바닥에서는 기쁨이 솟아올랐다. 저절로 우러나오는 즐거움은 온 집안을 환하게 만들었다.

탄생의 기쁨을 안겨준 태항아리의 주인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부모님의 염원이 이루어졌을까. 불현듯 궁금증이 일었다. 살아생전 선친께서 밥상머리 가르침으로 사자소학 가운데 효 구절을 암기하라 하셨다. 아마도 선친의 염원이었으리라.

신체발부(身體髮膚)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수지부모(受之父母)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불감훼상(不敢毁傷)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지시야(孝之始也) 효의 시작이요.
입신행도(立身行道)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서
양명후세(揚名後世) 후세에 이름을 드날려
이현부모(以顯父母) 부모님을 드러내는 것이
효지종야(孝之終也) 효의 마침이다.

이날까지 입으로만 암송했을 뿐이었다. 부족한 나에게는 불감훼상 한 가지 지키기도 힘에 벅차다. 세상사에 무탈하고, 가정사에 무고하며, 신체에 무병하기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던가. 지난했던 나의 인생길은 어디쯤 왔을까. 부모님이 걸었던 그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걷고 있는 자신을 돌아본다.

태실법당을 나오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태항아리를 마련한 부모들은 어떤 분들일까. 태항아리를 마련하지 않은 부모로서 약간의 흔들림이 일어난다. 그러나 후손을 위하는 마음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형식이 다를 뿐,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는 마음은 한가지일 것이니. 세상의 모든 부모는 일심으로 염원하리라. 대대손손 차롓걸음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선석사에서의 특이한 경험을 뒤로하고, 한개마을로 다시 출발이다.

 

 

수  상  소  감


드디어 빗장이 열렸다. 똑~똑 노크를 한 지 수차례, 이제야 경북문화체험에 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 옛날, 서술형답안지에 몇 줄을 쓰고 나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끝맺곤 하였다. 졸업을 할 무렵이 되니 빼곡히 쓰고도 할 말이 남았었다. 경북문화체험은 나의 수필을 성장하게 하는 디딤돌이었다. 문화체험을 위해 이 곳 저 곳 기웃거려 보았지만 무딘 감성으로 좋은 글을 기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을 수필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심히 지나치던 것을 오감으로 느껴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아직도 미숙하여 부끄러운 마음으로 참여 하게 되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서 직접 작품을 읽어 주셨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설레는 일이다. 거기에 더하여 선에 들게 해주셨으니, 이제 글을 써도 되겠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일어난다.
심사위원 선생님, 저의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시고, 선에 들게 해주셔서 고맙고 또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글쓰기에 매진하라는 격려로 알고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필집 ‘종이 한 장’ 발간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책 / 맹난자  (0) 2020.10.29
빈 배에 가득한 달빛 / 맹난자  (0) 2020.10.29
당신의 의자 / 이정림  (0) 2020.10.28
삶의 조건을 읽다 / 박영숙  (0) 2020.10.28
종택(宗宅) / 석민자  (0) 2020.10.27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