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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봄바람 / 이숙희

부흐고비 2020. 11. 2. 09:20

인터넷에 올라온 이탈리아 여인의 인터뷰 기사가 눈길을 끈다. 사업에 실패한 아들에게 일 할 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몸의 일부라도 떼어주겠다는 기사다. 더 이상 잃을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서른여덟 살의 아들이 다시 웃음을 찾는다면 자신의 신장이라도 기꺼이 내놓을 생각이라고 했다. 아들의 삶을 위해 스스로를 헌신하겠다는 모성애에 가슴이 아리다. 어머니의 마음은 동서를 막론하고 다 같은 모양이다.

그저께 조카의 졸업식에 참석했다가 낯선 풍경을 경험했다. 온 가족이 출동해 축제의 분위기를 연출했던 예전의 졸업식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분위기였다. 주인공들이 비워둔 자리에는 모진 늦추위만이 맴돌고 졸업식은 그저 형식적인 통과의례로 진행되었다.

대학 졸업은 자식이 부모의 품에서 독립하여 당당히 사회를 향해 내딛는 첫 걸음이다. 지금까지 쌓은 학문과 지적 소양으로 원대한 꿈을 맘껏 펼쳐야 할 졸업생들의 그늘진 모습에 가족들의 심경 또한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띄엄띄엄 사진을 찍는 모습에서 오랜 세월 뒷바라지를 끝낸 안도감 같은 미소가 설핏 지나갈 뿐 손에 든 졸업장과 머리에 쓴 사각모는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자식을 위해 못할 것이 없는 존재가 부모들이다. 태어나자마자 남다른 우유를 먹이고, 좋은 이름이 붙은 유치원에 입학시키려고 갖은 애를 쓴다. 집을 줄이더라도 좋은 학군으로 이사를 하고, 먹을 것을 줄여서 비싼 과외를 시킨다.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이 이 땅의 부모들이다. 입시전쟁으로 한바탕 진통을 겪고 나면 등록금 걱정으로 숨이 막힌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졸업만 하면 내 아이만은 취업이 될 것이라는 희망도 잃지 않는다. 그 한 가닥의 희망을 걸고 학자금 대출까지 하여 졸업을 맞지만 현실은 혹한보다 더 모질다.

이미 취업의 행운을 얻은 일부야 예외겠지만,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는 옛말이 되고, 이십대의 구할이 백수라는 ‘이구백’,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된다는 ‘졸백’, 아예 취업을 포기한 ‘니트족’이라는 점점 더 갑갑한 신조어만 자꾸 생겨난다.

너나없이 답답한 이월이다. 하지만 입춘이 지나고 우수도 지났다. 아직 얼어붙은 땅이지만 봄은 어김없이 올 것이고 세상의 꽃들도 모두 피어날 것이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 혹독한 추위도 봄바람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기에 어떠한 고통과 절망도 인간의 의지보다 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며칠 전, 어느 젊은 여성이 만들었다는 ‘월간잉여’라는 잡지가 작은 미소를 짓게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수없이 취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매번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는 그녀가 책을 만든 이유는 ‘잉여’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웃음을 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것도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만들어 무료로 배포했다는 말에 가슴이 찡하다. 잉여(剩餘)는 나머지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 ‘잉여’는 나머지가 아니라 포기와 패배감 대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발견되지 못한 자원이기도 하다.

이 세상의 자원인 청년은 인생의 꽃이다. 실업의 혹한 속에 있어도 그들에겐 꿈이 있고 사랑이 있고 미래가 있기에 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다. 대지의 긴 침묵을 밀어내고 새움을 틔우는 봄꽃이야말로 봄의 생명이요, 세상의 희망이 아니겠는가.

보다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실업 대책으로 젊은이들의 가슴에도 봄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 젊은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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