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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산나물 / 노천명

부흐고비 2020. 11. 12. 08:58

먼지가 많은 큰길을 피해 골목으로 든다는 것이, 걷다 보니 부평동 장거리로 들어섰다. 유달리 끈기 있게 달려드는 여기 장사꾼 ‘아주마시’들이 으레 또, “콩나물 좀 사보이소. 예! 아주머니요! 깨소금 좀 팔아 주이소.” 하고 당장 잡아당길 것이 뻔한지라, 나는 장사꾼들을 피해 빨리빨리 달아나듯이 걷고 있었다.

그러나 내 눈은 역시 하나하나 장에 난 물건들을 놓치지 않고 눈을 주며 지나는 것이었다. 한 군데에 이르자 여기서도 또한 얼른 눈을 떼려던 나는, 내 눈이 어떤 아주머니 보자기 위에 가 붙어서 안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보자기에는 산나물이 쌓여 있었다. 순진한 시골 처녀모양, 장돌뱅이 같은 콩나물이며 두부, 시금치 틈에서 수줍은 듯이, 그러나 싱싱하게 쌓여 있는 것이었다. 얼른 나는 엄방지고 먹음직스러운 접중화를 알아봤다. 그밖에 여러 가지 산나물을 또 볼 수 있었다.

고향 사람을 만난 때처럼 반가웠다. 원추리, 접중화는 무덤들이 있는 언저리에 많이 나는 법이것다. 봄이 되면 할미꽃이 제일 먼저 피는데, 이것도 또한 웬일인지 무덤들 옆에서만 잘 발견되는 것이다.

바구니를 가지고 산으로 나물을 하러 가던 그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일이다. 예쁜이, 섭섭이, 확실이, 넷째 들은 모두 다 내 나물 동무들이다. 활나물, 고사리 같은 것은 깊은 산으로 들어가야만 꺾을 수가 있었다. 뱀이 무섭다고 하는 나한테 ‘섭섭이’는 부지런히 취순을 꺾어서…….

산나물을 하러 가서는 산나물만을 찾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산 저 산으로 뛰어다니며 뻐꾸기를 잡고, 싱아를 캐고, 심지어는 칡뿌리를 캐서 그 자리에서 먹는 맛이란 또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꿩이 푸드득 날면 깜짝 놀라곤 하는 것이다. 내가 산나물을 뜯던 그 그리운 고향엔 언제나 가게 되려는 것이냐?

고향을 떠난 지 30년, 나는 늘 내 어린 기억에 남은 고향이 그립고, 오늘같이 이런 산나물을 대하는 날은 고향 냄새가 물큰 내 마음을 찔러 어쩔 수 없게 만들어 놓는다.

산나물이 이렇게 날 양이면, 봄은 벌써 제법 무르익었다. 냉이나, 소루쟁이니, 달래는 그러고 보면 한물 꺾인 때다.

산나물을 보는 순간, 나는 이것을 사가지고 오려고 나물을 가진 아주머니 앞으로 오락 다가서다가, 그만 또 슬며시 뒤로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생각을 해보니, 산나물은 맛이 있는 고추장에다 참기름을 치고 무쳐야만 여기다 밥을 비벼서 맛도 있고 한 것인데, 내 집에는 고추장이 없다. 그야, 나는 친구 집에서 한 보시기쯤 얻어올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고추장을 얻어다 나물을 무쳐서야 그게 무슨 맛이 나랴? 나는 역시 싱겁게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진달래도 아직 꺾어보지 못한 채 봄은 환연히 왔는데, 내 마음속 골짜기에는 아직도 얼음이 안 녹았다. 그래서 내 심경은 여지껏 춥고 방안에서 밖엘 나가고 싶지가 않은 상태에서 모두가 을씨년스럽다.

시골 두메촌에서 어머니를 따라 달구지를 타고, 이삿짐을 싣고 서울로 올라오던 그때부터 나는 이미 ‘에덴’ 동산에서는 내쫓긴 것이었다.

그리고 칡순을 머리에다 안 꽂고 다닌 탓인가. 뱀은 내게 달려들어 숱한 나쁜 지혜를 넣어주었다.

10년 전 같으면 고사포를 들이댔을 미운 사람을 보고도 이제는 곧잘 웃고 흔연스럽게 대해줄 때가 있어, 내 그 순간을 지내 놓고는 아찔해지거니와, 풍우 난설의 세월과 함께 내게도 꽤 때가 앉았다.

심산 속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연의 품에서 그대로 펴질 대로 펴지고 자랄 대로 자란 싱싱하고 향기로운 이 산나물 같은 맛이 사람에게도 있는 법이건만, 좀체 순수한 산나물 같은 사람을 만나기란 요새 세상엔 힘 드는 노릇 같다.

산나물 같은 사람은 어디 있을까? 모두가 억세고, 꾸부러지고, 벌레가 먹고, 어떤 자는 가시까지 돋쳐 있다.

어디 산나물 같은 사람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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