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별을 품은 그대 / 류창희

부흐고비 2020. 11. 18. 12:46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입은 닫고 지갑은 열고…. 수업시간에 카톡하다가 핸드폰 빼앗기지 말고, 선생님께 엉뚱한 질문하지 말고.” 말고, 말고는 내가 공항에서 K 선생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그가 군대 입대하는 날도 그랬었다. 부산에 사는 남학생을 서울에 사는 여학생이 대전역에서 만나 논산훈련소로 데려다 주었다. 입대 당일까지 여학생 앞에서 폼 잡느라 더벅머리 장발이었다. 그가 상사에게 밉보일까 봐 나는 애를 태웠다.

아들이 새 운동화와 가방을 사왔다. 자식이 아비에게 마련해주는 입학선물이다. 먼저 가방에 붙은 태극문양 부터 떼어냈다. 위험한 요소를 없애야 한다. 국제적으로 한국의 장년남자가 가장 위험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세계 소매치기나 사기꾼에게 표적이라고 한다. 신용카드보다 현금을 선호하고, 말보다 고함을, 듣기보다 지시를 일삼던 세대다. 이미 기력이 쇠하였으면서도 그는 누가 봐도 객기로 큰소리치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남성이다.

그런 그가 지금 물설고 말 설은 낯선 땅에 간다. 왜, 가는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경제활동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말릴 수가 없다. 그는 30년 넘게 근무했다. 그동안 흰머리와 주름의 훈장뿐만 아니라 두 아이를 낳아 인구증가에 국민의 의무를 다했고, 아이들을 분리 독립 시켰으며, 이 땅의 청소년들을 일선에서 지도했다. 그런데 문뜩, 하던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 직업과 꿈은 다르다. 그는 지금 적성을 찾으러 어학연수 가는 중이다.

남편, K 선생은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엄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다. 사내는 모름지기 강해야 한다. 베이비붐세대이니 어쨌든 생존하여 누구보다 잘사는 것이 목표였을 것이다. 뭔가 잘못하면 부모님은 옥상 위 드럼통에 물을 채워 엄동설한에 벌거벗고 물속에 들어가는 벌을 주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획일적인 엎드려 뼏쳐 각목 세례를 받았고, 유신정권 시대에 전투경찰로 부마사태에 투입되어 군홧발에 밟히는 수모를 당했던 세대다. 아직 ‘응답하라! 1975’가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의 청춘이 그렇게 지나갔다. 기계처럼 일하던 그에게 마땅히 포상휴가를 주어야 한다. 국가에서 마다하면 아내인 내가 지원해줘야 한다.

나는 비교적 자유롭게 자랐다. 사방이 풀꽃 향기로 사람과 동물, 곤충과 꽃이 어우러진 아련한 풍경화다. 산골 마을 집성촌의 손이 귀한 증손녀로 태어나 다정하고 따뜻하게 자랐다. 누구에게 야단맞지 않고 얽매이지 않고 구속당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무슨 짓을 하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내 선택이었지 누가 나를 단속한 적은 없다. 나의 성장 과정은 무엇이든 내가 선택하여 내가 실천하고 내가 책임지며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왔다.

그가 부릅뜨고 쳐다보던 별과 내가 긴 속눈썹 사이로 바라보던 별은 달랐다. 그가 겨울의 삭막한 불빛을 보았다면 나는 한여름 밤의 은하수를 보았다. 정서의 실마리가 실타래의 끝과 끝이다. 어머님의 돌아가신 후, 착한 며느리는 시어머님의 유지를 받들어 아침마다 식탁에서 밥상머리 교육으로 잔소리했다. 그는 나하고 사는 동안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 세월 어느덧 이순(耳順)이 되었으니, 그도 참을 만큼 참았다.

‘질량불변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고고한척해도 개구쟁이 본성은 부릴 만큼 부려야 가라앉는다. 이왕 통과의례라면 사춘기 정도는 부모님 슬하에서 지나갔으면 좋았을까. 그래도 아직 몸과 정신이 성한 때에 ‘자신에 의한,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좇겠다는 발상이 갸륵하기는 하다.

오히려 ‘발광’의 시기가 늦게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엄마 잃은 아들의 어깨가 얼마나 내려앉는지 나는 안다. 날마다 어리광을 부리는 남편에게 열 천 불을 받다가도 ‘너의 엄마가 없어서 내가 봐준다.’며 그의 편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결국, 나의 인자한 모성애가 그의 간을 키웠다. 그로 인해 나는 뒤늦게 남편을 유학 보내는 학부형이 된 것이다.

몇 년 전, 텐트를 차에 싣고 남프랑스 프로방스지역 퐁비에뉴에 간 적이 있다. 퐁비에뉴는 알퐁스 도데의 고향이다. 도데의 작품 『풍차방앗간 편지』의 배경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도 몰랐다. 도데의 문학관에 들러 방명록에 나의 꿈에 대한 감사의 메모를 해놓고 나왔다. 나는 알퐁스 도데의 「별」이 K 선생의 교과서 안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헤아리지 못했다. 하필, 그날따라 풍차 앞에 비바람이 심하여 내가 입은 프로방스 스타일의 복숭아빛 원피스 자락이 휘날렸다. 바람에 치켜 올라가는 내 치맛자락을 끌어 내리느라, 정작 그의 꼭 끼는 바짓가랑이가 흠뻑 젖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그곳, 도데의 문학관에 나의 별을 내려놓고 나왔는데, 내가 내려놓은 별을 어느 틈에 그가 몰래 가슴에 박아왔다.

그는 지금, 가슴에 별을 품고 비행기를 탄다. 아마도 머지않아 빛나는 별을 가슴에 달고 개선장군처럼 돌아올 것이다. 나는 그의 앞에서는 늘 여자이기를 바란다. 별을 바라보는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되고 싶은데, 나의 철없는 목동은 내가 자기 엄마인 줄 안다. 응석받이 칭찬을 꿈꾼다. 어쩌랴! 내가 여태까지 따뜻한 밥 먹여 키운 내 남편인 것을.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