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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벌컥 남(男)과 꼴깍 여(女) / 송연희

by 부흐고비 2021. 2. 11.

사람의 모습은 겉만 봐서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은 사람의 겉모습을 보며 사람됨을 점치기도 한다. 어떤 점잖고 교양 있고 직장도 반듯한 남편이 있었다. 유머도 있고 부인과 외출할 땐 꼭 손을 잡고 다녔다. 이웃 사람들이 그 부인을 보고 말했다. “그런 남편과 사는 당신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라고. 그랬더니 그 부인이 하는 말이 “한번 살아봐라. 그런 말이 나오는지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였다고 한다.

한 남자랑 삼십 년 하고도 사 년째 함께 살고 있다. 집에 들어오는 남편의 눈썹만 봐도 어떤 기분인지 짐작할 수가 있다. 눈썹이 부드럽게 갈매기를 하고 있으면 양호한 상태. 거기에 입매까지 부드러우면 최상이다. 눈썹이 꼿꼿하면 기분 별로. 입까지 꾹 다물고 화장실로 들어가면 성질이 난 것. 이제는 나도 그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 상태를 봐가며 응대한다. 기분이 좋아 보이면 말을 붙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부엌으로 들어가서 하던 일을 한다.

그가 술을 마시고 왔을 때 벗어놓은 구두를 보면 대충 그 상태를 알 수 있다. 구두 뒤축이 꺾여 있으면 많이 마신 것, 그럴 땐 누구랑 어디서 마셨는지 같은 말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돌아오는 말이 까꼬롱하다. 그저 예 예 하며 비위를 맞춘다. 인내심을 가지고 달래가며 잠을 자게 하는 게 상책이다. 많이 취하지 않았을 땐 밥상을 꼭 대령해야 한다. 아이나 어른이나 먹고 배부르면 잔다. 배가 고프면 잠은 안 자고 말이 많아진다.

남녀가 같이 사는 데는 기술이 필요하다. 사랑과 애정의 세월로, 자식을 낳은 정으로, 책임과 의무로, 나중엔 더러운 정 때문이란 핑계로 긴 인생 여정의 고비 구비를 넘어간다.

남편은 벌컥거리길 잘 한다. 처음엔 멋모르고 나도 벌컥 하고 맞불 작전으로 나갔다. 그런데 칠전 팔 패 백전 백 패였다. 둘 다 벌컥 하니 집안이 시끄럽고 이웃이 시끄러웠다. 지금은 남편이 벌컥 하면 나는 꼴깍한다. 꼴깍 하고 침을 삼키며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란 걸 터득하는데 시간을 꽤나 낭비했다. 뭐든지 진즉에 눈치 채고 알았더라면 사는 것도 훨씬 수월하고 매끄러웠을 텐데, 수많은 착오 끝에 얻게 된 것을 나는 생활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이번 여름에 아이들이 휴가를 받아서 집으로 왔다. 아들이 해운대에 콘도를 빌렸다고 했다. 결혼한 딸까지 합세하니 대가족이다. 이럴 때는 그냥 조용히 움직이면 얼마나 좋을까. 느긋하니 구경하고 밥은 사서 먹고 파도 소리나 들으면서 쉬고 오면 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 집 가장은 그렇지 않다. 몸이 움직이면 뒤를 따라 움직이는 것들이 많다. 맘먹고 시장에 가더니 닭고기 쇠고기 맥주에 소주에 과일까지 잔뜩 사 가지고 왔다. 그 바람에 삶고 굽고 하느라 좁은 콘도 안에 냄새가 진동하고 더운 공기 때문에 아이들 난리가 났다. 그 와중에 이제 십육 개월 된 손자 놈은 천지도 모르고 나부대니 혼이 빠지고도 남을 일이다.

이구동성으로 아이들은 그냥 사 먹으면 될 걸 하는 눈치다. 돈 쓰고 애먹고 인사 못 듣고 이번엔 내가 아이들을 향해 벌컥했다. 누구는 사 먹을 줄 몰라서 이러는 거니. 아버지는 너희들과 이런 데 와서 이러는 게 좋아서 그런 건데 그 기분을 못 맞춰. 너희도 부모 돼 봐라. 너들 생각하고 똑같은가. 아버지는 더운데 땀 흘리며 고생하고 너들은 먹어 주는 것도 유세냐.

휴가 끝나고 아이들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고 없는 적막한 저녁. 삼겹살에 막걸리로 상을 차렸다. 그는 큰 사발에 벌컥벌컥 막걸리를 마시고 나는 꼴깍거리며 술을 따랐다. 밖에는 낮부터 내린 비가 그치지 않는다. 한 달 내내 비만 오는 것 같다. 남편은 휴가 이후 내내 저기압이다. 나이 들어가며 남자들은 더 속이 좁아지고 잘 삐치고 꽁하는 게 오래 가는 것 같다.

그의 옆에서 나는 억지 수다를 떨어대고 그는 시큰둥하다. 이이들 하자는 대로 해요. 요즘 아이들 뭐 들고 다니는 거 좋아하지 않잖아요. 무거운 지갑이나 가볍게 들고 가지 뭐하려고 이것저것 싸서 들고 가요. 그래봐야 당신 마누라만 힘들구만.

차라리 벌컥 할 때가 낫지. 아이들 생각이 우리하고 다르다고 해서 그걸 고깝게 생각할 건 없다고 말하려다 그만둔다. 세대 차이가 별건가. 사는 방법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면 그게 세대차이지. 자식에게 밀리는 기분일 때가 늙었다는 걸 실감할 때라고 누군가 그러더니만 그 말에 공감이 간다.

이제는 슬그머니 뒷전으로 나앉는 게 편하다. 아이들이 부모를 대신해서 하겠다는데 굳이 그게 미덥지 못해서 칼자루를 넘겨주지 않는 건 부모생각일 뿐이다. 요즘 캥거루족들이 부모 간을 다 빼먹는다는데 그렇지 않은 건만도 어딘가. 그의 벌컥은 건재함의 표시다. 아직은 기죽지 않는다는 자신감이다. 그 벌컥거림이 때로 미덥게 여겨지기도 한다. 나도 참말 한심한 웃기는 꼴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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