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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과 원문

 

이 춘망만은 시기와 형편에 따라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마음껏 즐기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슬퍼 눈물도 흘리며,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노래도 하고,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울 수도 있다. 각각 느끼는 유에 따라 사람을 감동하게 하니 그 심서(心緖) 천만 가지 그지없네.

唯此春望 隨物因勢 或望而和懌 或望而悲悷 或望而歌 或望而涕 各觸類以感人兮 紛萬端與千緖
유차춘망 수물인세 혹망이화역 혹망이비려 혹망이가 혹망이체 각촉류이감인혜 분만단여천서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권1 <춘망부(春望賦)>

 

동국이상국집 / 춘망부 : 고려 후기에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부(賦).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권1과 『동문선 東文選에』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앞부분에 봄의 여러 경치와 흥겨움을 묘사하였다. 임금이 한가한 가운데 궁중에서 장안의 화려한 경치를 바라보는 것은 춘망의 부귀이고, 왕손·공자들의 봄놀이는 춘망의 화사함이며, 독수공방 아낙네가 탕자 낭군을 기다리는 춘망은 애원(哀怨)이며, 멀리 떠나는 친구를 전송하는 것은 춘망 중에서 이별의 한(恨)이요, 관산(關山) 밖의 출정간 군사나 귀양가는 사람의 춘망은 억지로 집 떠난 이의 한이라 하여 처지에 따른 춘망의 정서를 구분하였다. 그러나 하망(夏望)은 무더위에 얽매이고, 추망(秋望)은 쓸쓸하고, 동망(冬望)은 움츠려야 하니, 이에 비하면 춘망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흥겨운 노래, 시큰한 눈물 등 사물에 부딪쳐 느끼는 심서(心緖)가 천가지 만가지라 하였다. 더욱이 작자 자신은 봄을 취하여 바라보면 즐겁고, 깨어서 바라보면 서러우며, 궁할 때 바라보면 구름 안개가 막혀 있는 듯, 달(達)하여 바라보면 해가 훤히 비쳐서, 기쁠 만하면 기뻐하고 슬플 만하면 슬퍼하니 제법 경우를 쫓고 기회를 따라 사물과 함께 추이(推移)할 수 있다고 읊고 있다. 요컨대. 이 작품은 춘망의 다채로운 정서뿐 아니라 작자의 분방한 천성과 달관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어 훌륭한 수필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춘망부(春望賦))]

 

해 설


또 봄을 빼앗겼다. 몇 년간 꽃구경 좀 할라치면 불어오는 미세먼지에 외출을 삼갔는데, 올해는 ‘집콕’하는 사이에 봄을 떠나보냈다.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돌아오는 길, 피었는 줄도 몰랐는데 이미 낙화를 준비하는 꽃나무를 보고 이렇게 문득 떠나버리는 봄도 있나 싶어 허망했다. 상춘객들이 몰릴까 전국의 꽃축제 명소들이 빗장을 걸어 잠갔고, 매해 몇십만 명이 모이는 여의도 벚꽃 길에는 노란 테이프가 둘러졌다. 애써 피어난 유채꽃들은 트랙터로 갈아엎었는데 그 면적이 축구장 80여 개를 넘었다고 한다. 모두의 안녕을 위해 당연한 조치였지만, 역사상 이런 봄의 수난이 있었던가 싶어 마음이 쓰렸다. 자고로 봄이란 피어나는 아름다움 덕택에,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아름다워지는 계절이 아니었던가. 바라봐 줄 이가 없는 봄은 왠지 봄이 아닌 것만 같았다.

이러한 때에 이규보가 풀어낸 봄의 정경은 우리에게 큰 위안을 준다. 「춘망부(春望賦)」 는 고려의 문인인 이규보가 봄을 바라보며 쓴 글이다. 작가는 높은 곳에 올라 마을에 찾아온 봄을 바라본다. 날이 따뜻해져 동식물은 씻은 듯 맑은 생명력을 뽐내고, 오가는 사람들은 정겹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 민망하고 답답하기만 하다며 바라본 '춘망'의 회포를 다양하게 풀어낸다. 봄은 사치스러운 화려함도 있고, 애원도 있고, 애상과 그리움도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여름은 너무 덥고, 가을은 견딜 수 없이 쓸쓸하고 겨울은 지나치게 춥지만 '춘망'만은 시기와 형편에 따라 어떤 이는 바라보며 마음껏 즐기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슬퍼 눈물도 흘리며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노래하고,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울 수도 있어서 각각 느끼는 감정에 따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니, 그 마음이 뻗어 나가는 것이 천만 가지가 그지 없다고.

돌이켜보면 봄이 언제고 아름다웠기만 했나 싶다. 유명한 시 구절처럼,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드는' '잔인한 달'이기 때문이다. 소생하는 봄 무기력함에 젖어 안주하려는 이들을 흔들어 깨운다. 내 삶의 속도와 무관하게 또 무심히 봄을 피워내는 자연을 보며 조금은 천천히 가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피어나는 꽃과 다르게 자신은 오늘도 하루 늙어만 가는 것 같아 서글픈 마음이 들곤 하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매해 지는 봄을 보며 다시 돌아올 봄을 기대하지 않았나.

우리가 바라는 봄은 어떤 봄인가. 당대의 시인 이백은 <춘야연도리원서>에서 "아름다운 자리를 벌려 꽃밭에 앉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달 아래에서 취하"는 봄밤의 술자리를 노래하였다. 우리가 이백의 시와 같은 걸작은 남기지 못하지만, 친구들과 달 밝은 봄밤에 한강변에 돗자리를 펴고 모여앉아 '치맥'을 하며 나누던 이야기들은 퍽 즐거웠었다. 그러나 내년 봄에도 우리는 또다시 마스크를 끼고 서로를 그리워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조금 외롭고 조금 우울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왜 봄이 아니란 말인가. 무력하게 창가에 앉아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그다음 봄은 더 아름답기를 기대하는 것도, 봄에는 허락된다. 이것이 이규보가 말한 봄의 미덕이다.

글쓴이 : 최주영(성균관대학교 고전번역협동과정)

 

이규보의 춘망부(봄의 단상) / 전문 해석 : 양주동 박사


봄날이 한창 화창할 때라 마음이 즐거워져, 높은데 올라 사방을 바라본다.
부슬부슬 내리던 곡우(穀雨)도 갠 뒤라 나무들은 새로 씻은 듯 깨끗하고, 먼 강물 일렁이는 곳에 연초록 버드나무 하늘거린다. 비둘기 울며 날개를 치고, 꾀꼬리는 아름다운 나무에 모여 앉았다. 온갖 꽃들 피어나고 고운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한데, 푸른 숲 사이로 다문다문 보이니 참으로 알록달록하다. 들판에는 푸른 풀이 무성히 돋아 소들이 흩어져 풀을 뜯는다. 여인들은 광주리 까고 야들야들한 뽕잎을 따는데 부드러운 가지를 끌어당기는 손이 옥처럼 곱다. 그들이 서로 주고받는 민요는 무슨 가락의 무슨 노래일까.
가는 사람과 앉은 사람,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들 모두가 봄을 즐기느라 온화한 표정이니 그 따뜻한 기운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먼 사방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왜 이토록 민망하고 답답하기만 할까.
봄이 되어 붉게 장식한 궁궐에도 해가 길어지니, 온갖 일들로 바쁜 천자(天子)에게도 여유가 생긴다. 화창한 봄빛에 설레어 가끔 높은 대궐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노라면 장구 소리는 높이 울려 퍼지고, 발그레한 살구꽃이 일제히 꽃망울 터뜨린다. 너른 중국 땅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니 기쁘고 흡족하여 옥잔에 술을 가득 부어 마신다. 부귀한 사람이 봄을 볼 때는 이러하리라.
왕족과 귀족의 자제들은 호탕한 벗들과 더불어 꽃을 찾아다니는데, 수레 뒤에는 붉은 옷 입은 기생들을 태웠다. 가는 곳마다 자리를 펼쳐 옥피리와 생황(笙篁)을 연주하게 하며, 곱게 짠 비단 같은 울긋불긋한 꽃을 바라보고, 취한 눈을 치켜뜨고 이리저리 거닌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사람이 봄을 볼 때는 이러하리라.
한 어여쁜 부인이 빈 방을 지키고 있다. 천 리 멀리 떠도는 남편과 이별한 뒤 소식조차 아득해져 한스럽다. 마음은 물처럼 일렁거려, 쌍쌍이 나는 제비를 보다가 나간에 기대어 눈물 흘린다. 슬프고 비탄에 찬 사람이 봄을 볼 때는 이러하리라.
먼길 떠나는 벗을 보내는 날, 가랑비는 가벼운 먼지를 적시고 버드나무는 푸르다. 이별 노래 끝마치자 떠나가는 말도 슬피 운다. 높은 언덕에 올라 떠나는 벗을 바라보는데, 만발한 꽃 사이로 그 모습 점점 사라질 때 마음은 더욱 흔들린다. 애달픈 이별을 하는 사람이 봄을 볼 때는 이러하리라.
군인이 출정(出征)하여 멀리 고향을 떠나와 지내다가 변방에서 또 봄을 맞아 풀이 무성히 돋는 걸 볼 때나, 남쪽 지방으로 귀양 간 나그네가 어두워질 무렵 푸른 단풍나무를 보게 될 때면, 언제나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이윽히 보고 있지만 마음은 조급하고 한스러워진다. 집 떠난 나그네가 봄을 볼 때는 이러하리라.
여름날에는 찌는 듯한 더위가 고생스럽고, 가을은 쓸쓸하기만 하면,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어 괴롭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세 계절은 너무 한 가지에만 치우쳐서 변화의 여지도 없이 꽉 막힌 것 같다. 그러나 봄날만은 보이는 경치와 처한 상황에 따라, 때로는 따스하고 즐거운 마음이 들게도 하고, 때로는 슬프고 서러워지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절로 노래가 나오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흐느껴 울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건드려 움직이니 그 마음의 가닥은 천 갈래 만 갈래 로 모두 다르다.
그런데 나 같은 이는 어떠한가. 취해서 바라보면 즐겁고, 수리 깨어 바라보면 서럽다. 곤궁한 처지에서 바라보면 구름과 안개가 가려진 것 같고, 출세하고 나서 바라보면 햇빛이 환히 비치는 것 같다. 즐거워할 일이면 즐거워하고 슬퍼할 일이면 슬퍼할 일이다. 닥쳐오는 상황을 마주하고 변화하는 조짐을 순순히 따르며 나를 둘러싼 세상과 더불어 움직여 가리니, 한 가지 법칙만으로 헤아릴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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