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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도대불에게 길을 묻다 / 양태순

by 부흐고비 2021. 5. 11.

제6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동상

바다로 향한 귀는 늘 젖어 있다. 날마다 촉수를 세운 채 물결의 변화를 재빨리 감지하고자 자꾸만 바다 쪽으로 귀를 늘어뜨린 탓이다. 고기잡이가 주업인 사람들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자연이 부리는 요술이다. 아무리 철저히 단속하고 준비해도 일 년에 한두 번은 혼쭐이 나곤 한다. 그래서 흐리면 흐려서 걱정, 안개가 끼면 사위를 분별할 수 없어 걱정, 물빛이 지나치게 맑아도 걱정이다. 그런 걱정이 모여서 도대불이 생겼다.

도대불은 제주 어부의 길잡이 불빛이었다. 제주지역에서 칠십 년대 초반까지 솔칵이나 생선 기름, 석유 등을 이용하여 불을 밝히는 민간 등대다. 지형이 높은 곳에 주변의 돌로 해안의 특성에 맞게 원뿔형, 원통형, 상자형, 표주박형 모양으로 담을 쌓아 등명대를 만들었다. 해가 지면 높은 대에 불을 밝혀 야간에 배들이 무사히 귀항할 수 있도록 멀리서도 잘 보이라는 소망을 담았다,

불의 모태는 사랑이다. 그리스신화에서 인간을 사랑한 프로메테우스가 간을 독수리에게 내어주는 희생을 치르면서 인간에게 전해 주었다. 그의 넓은 마음이 불씨가 되었는지 꺼지지 않는 지순한 온기가 전해진다. 불은 자신을 태워 다른 것을 빛나게 해준다. 그 모습을 닮은 것은 어머니다.

가출 아닌 가출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의 문턱에서 낙방하기를 여러 차례 한 뒤였다. 엄마 몰래 단출한 가방을 꾸려 집을 떠났다. 나의 부재를 안다 해도 하루만 지나면 행선지를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기에 고민이 짧았다. 동네 친구가 일하는 공장에서 일했다. 초짜인 나는 실수투성이였고 윗사람에게 꾸지람을 듣는 것은 당연했다. 새 직장을 구해 두 달 만에 귀향했다.

그 동안 엄마의 방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돌아왔을 때 깜깜한 집이면 선뜻 들어오지 못하고 망설일까 싶어서다. 작은 바람 소리에 방문을 열어젖혀 사방을 둘러본 뒤 천천히 문을 닫았고, 나뭇잎 부딪혀 서걱대는 소리를 딸의 발소리라 착각하기도 했다. ‘누가 왔나?’ 하면서 신발을 꿴 날은 눈길이 사립문 위에 오래 머물렀다. 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마다 엄마는 등대가 되어주고 나는 그 불빛을 따라 다시 돌아오곤 했다.

도대에는 불을 밝히는 불칙이 있었다. 수십 년을 바다에서 그물을 걷어 올리며 싱싱하게 펄떡였건만 세월 앞에 장사가 없는지 심장은 얕은 숨으로 그르렁 거렸다. 그는 이제 마을에서 연장자가 되어 어둠이 해의 뒤편에서 어정댈 때 불을 밝히고, 어둠 뒤편에서 해가 물장구를 칠 때 불을 껐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바다가 훤하고, 물때를 기억하고, 수온에 따라 어떤 어종이 잡힐지 가늠할 수 있다. 그의 고기잡이 노하우는 물려줬지만 성난 바다의 분풀이를 감당하는 현역의 어부에게 조금의 보탬이 되고자 밤마다 불을 밝혔다. 그 고마운 마음을 물고기 몇 마리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대불이 뱃길만 안내한 것은 아니었다. 철새들이 이동 시 날개쉼을 할 수 있도록 바위를 찾아주고, 길 잃은 새끼들이 둥지를 찾도록 밝혀주고, 가끔은 인어가 뭍을 기웃거리지 않게 도왔다. 또 먼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우는 이들에게 든든한 지원자로, 친구로 남아주기도 했다.

불은 순정하다. 아궁이 속에서 활활 타는 장작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동굴 속에서 참선하는 스님이 겪는 물아일체를 경험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내가 오롯이 불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타면서 뿜어져 나오는 불의 에너지가 관심을 한 곳으로 모아 몰입을 돕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가마를 데우는 천이백 도가 넘는 열을 만들어내기 위해 나무는 자신을 태워 흩어지는 빛의 기운을 고요히 가라앉혀 순도를 높인다. 그것은 순수성에 숭고함을 더한 것이다.

제주의 도대불은 숭고함을 품었다.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해달라는 욕심이 아니다. 바다에 맞서 이기려는 건방진 마음도 아니다. 그저 바다로 나간 배가 무탈하게 돌아오기만을 기원하는 빛이다. 제자리에서 누군가에게 길을 알려주는 역할, 등대 역할만 수행할 뿐이다.

나의 등대는 무엇일까? 철없는 지난 날, 내 길을 밝혀준 어머니란 등대는 내 곁에 없다.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할 때면 더듬이를 더듬거리며 과거의 길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가끔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스스로 길을 내며 걸어가야 한다. 믿는 구석이 있다면 절로 힘이 날 테지만 없는 것에 미련을 두기보다 잘 헤쳐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먼저다.

이제는 내 등대를 찾기보다 내가 등대가 되어주어야 한다. 자식들이 자라 사회에 나가는 나이가 되었다. 자칫 잘못하면 길을 벗어나 방황하는 날이 많을 텐데 내가 쏘아주는 불빛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게 해야 한다. 인생수업에서 배운 경륜을 최대한 발휘할 기회다. 나의 무대를 내어주고 지켜보는 자리로 옮겨 앉을 때가 다가왔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앞줄에 놓인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뒤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젊거나 기능이 좋다는 것 외에 갖가지 이유를 대면서 앞줄을 차지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중심에서 밀려난 도대불은 쓸쓸하다. 불칙이도 쓸쓸했다. 그래도 한 시대를 처절하게 견뎌냈고 최선을 다한 결과가 변두리로 내몰려 고물로 전락한다는 것은 참기 어렵다. 푸른 바다를 끼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모두에게 내가 건재했었다고 알려주고, 바다와 바다를 넘나드는 바람에게도 제주에는 삶을 함께 지켜낸 도대불이 있었다, 소리쳐주고 싶다. 내가 주체가 되어 격랑을 헤쳐 온 나를 박수쳐주지 않으면 누가 의미를 부여할까. 생활 전선에서 밀려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는 도대불에게 길을 묻는다.

바다에 보름달이 환한 밤이면 도대는 추억줍기에 나선다. 걱정이 문드러지던 오십 년 전은 안온한 불빛이 바다를 향한 채 까만 밤을 밀어내고 있었다. 바다와 바위, 집, 사람이 어우러진 풍경은 사람의 정이 흠뻑 녹아있었다. 갈매기를 따라다니며 날갯짓을 배워보는 여유도 있었다. 삿대에 의지해 그물을 내리는 부부의 소곤대는 소리가 멜로디를 이루어 잠든 고래를 깨우곤 했다. 밤이 새도록 읽어보는 추억의 페이지에는 아련함만 남실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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