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읽기

협상 / 최장순

by 부흐고비 2021. 5. 12.

협상에 있어서 양보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선의의 양보가 상대방을 부드럽게 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관대하게 나가면 상대방도 스스로 자비로워질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협상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즉, 선의의 양보는 상대방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경하게 만든다. 그것이 나쁜 상대와의 협상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게빈 케네디가 쓴 책 『협상』에서는 양보의 허구에 대한 의미 있는 예화를 싣고 있다.

북구 툰드라 지방에 ‘비오른 맥캔지’라는 세일즈맨이 있었다. 이 친구는 맥주를 팔러 다녔는데 꽤 인기도 있었고 신망도 컸다. 어느 날 오후 변경의 한마을에 캔 맥주를 팔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늑대 한 마리가 자신의 뒤를 따라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조금 전 큰 사슴 한 마리를 총으로 잡아 간신히 썰매 위로 끌어올려 놓았는데 늑대는 사슴고기 냄새를 맡은 것이다.

비오른은 채찍을 휘둘러 개들을 몰아쳤으나 썰매는 비오른의 육중한 체구와 맥주박스, 큰 사슴 한 마리의 무게 때문에 심히 삐그덕거렸다. 늑대가 점점 거리를 좁혀오자 바로 등 뒤에서 늑대의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달리면서 위기를 탈출할 방법을 생각했다. 순간 번쩍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렇지! 이 늑대는 지금 굶주린 상태다. 늑대는 나의 사슴고기를 원한다. 고기를 조금 잘라서 던져주자, 늑대의 추격도 막고 썰매의 무게도 덜고 …….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거야’

비오른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 대견해서 견딜 수 없었다.

‘어머니, 당신의 아들은 이처럼 똑똑합니다.’

비오른은 또 생각했다. ‘굶주린 늑대는 더 이상 나를 쫓지 않을 것이다. 늑대가 사슴고기를 먹는 동안 나는 마을의 안전지대까지 도착 할 수 있을 거야.’

비오른은 마침내 사슴고기를 조금 잘라 뒤로 던졌다. 처음 2마일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돼 갔다. 그러나 늑대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한 마리가 아니고 세 마리쯤 되는 것 같았다. 비오른의 가슴은 다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공포로 까무라칠 지경이었다. 그는 재빨리 생각했다.

‘맞아! 고기를 충분히 던져주지 않았어.’

이번에는 좀 더 많은 고기를 잘라 뒤로 던졌다. 그것도 각각 세 방향으로 나누어 던져 늑대 한 마리가 고기 한 덩어리씩 차지하게 하였다. 그러나 늑대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수는 갈수록 불어 곧 수십 마리가 되었고 썰매 전후좌우에서 덤벼들 듯 쫓아왔다. 고기를 던져주면 주는 대로 받아먹고 마치 비오른을 조롱하듯 더 달라고 으르렁거렸다. 사슴고기는 다 떨어져가고 있었지만 늑대들의 추격은 그치지 않았다. 수는 어느새 수십 마리로 불어나 있었다.

그가 마지막 고깃덩어리를 던졌을 때 겨우 안전지대인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고 가까스로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오른은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느꼈다. 그는 동료 세일즈맨과 원주민들에게 늑대 떼를 물리친 이 멋진 모험 이야기를 했다.

원주민들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툰드라에서 수 십 년간 살아오고 있지만 비오른과 같은 그런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늑대들은 결코 썰매 가까이 오지도 않았고 더욱이 떼로 몰려 썰매를 쫓아오는 일 따위는 없었다. 주민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비오른의 모험담은 도회지 사냥꾼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꾸며낸 것으로 밖에는 보지 않았다. 그러나 비오른의 동료 세일즈맨에게는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들은 늑대에 대한 경험도 없었고 또 늑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도 못했지만 곧 자신들의 썰매에다 늑대 추격 방지용 사슴 고기를 싣기 시작했다.

이제 늑대에 대한 이런 방비책 없이 툰드라로 여행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바로 이것이 재앙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약 6개월이 지나서 마침내 문제가 터졌다. 어느 날 갑자기 원주민들이 떼로 몰려와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이 지역을 떠나라.’고 소리쳤다. 영문도 모르는 세일즈맨들은

“우리는 당신들에게 문명의 선물을 가져다주지 않았느냐, 그런데 갑자기 떠나라니 무슨 소리야?”

“좋아, 설명해 주지. 늑대를 어떻게 했어?”

“늑대라니? 늑대가 어떻게 됐길래? 우리는 굶주린 늑대를 지금까지 잘 다루어 왔지…….”

“뭐가 어쩌고 어째? 굶주린 늑대를 제대로 다루었다고? 이 멍청한 자식들아 너희들 때문에 이제 큰일 났어. 요즈음 늑대들은 배가 고프면 무조건 썰매만 쫓아와! 너희들이 다 버릇을 잘못들인 거야. 옛날엔 그렇지 않았어!”

툰드라의 원주민들에게 일어났던 이 사건은 우리에게 통렬한 교훈을 준다. 사실 원주민들은 세일즈맨들을 모조리 추방해 버림으로써 겨우 그 재앙을 없앨 수 있었다. 이제 늑대들은 아무리 썰매를 뒤쫓아도 빈 맥주 깡통 밖에는 날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옛날로 돌아갔다.

북구 툰드라 지방에 사는 원주민들은 선의의 양보 자들 보다 훨씬 영리했다. 그들은 양보하는 협상 스타일의 허구를 잘 안다. 그들은 값진 교훈을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체득했던 것이다.

난세亂世를 극복하는 가장 훌륭한 지혜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고 현인들은 말했다. 어려운 묘안을 찾으려 애쓸 것이 아니라 상식과 원칙을 가지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굳이 정치적 성향이나 색깔, 자신의 추종자들 때문에 이를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무엇이 우리 힘의 원천이며 지렛대인가를 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정신 차릴 교훈을 얻을 것인가?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널밥 / 조이섭  (0) 2021.05.12
그랭이질 / 김제숙  (0) 2021.05.12
당목 / 조미정  (0) 2021.05.11
누름돌 / 송종숙  (0) 2021.05.11
도대불에게 길을 묻다 / 양태순  (0) 2021.05.11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