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제사 / 전숙희

부흐고비 2021. 5. 15. 10:31

나는 어려서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고, 또 기독교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제사라면 무조건하고 미신을 섬기는 것 같은 어리석고 나쁜 일이라는 인상이 꼭 박혔었다. 그러므로 누구의 집에서 제사를 지낸다, 더구나 추석이나 설 때 제사를 지낸다는 말은 많이 들었으나, 그 제사 지내는 모양을 자주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러던 것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대굿집으로 방을 얻어오면서부터 이 제사 지내는 구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있는 집 바깥주인은 교육계에 종사하는 분으로, 3년 전에 자전거를 타고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자동차와 충돌해 즉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부인은 아직도 젊은 몸에 여섯 아이를 기르면서 그날그날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있는 방 옆방이 바로 그 주인의 빈소이며 빈소와 우리 방 사이에는 유리로 된 창문이 있어 우리는 아침마다 이 가족들이 하는 것을 자세히 볼 수가 있었다.

빈소는 주인이 평소에 쓰고 있던 양실 서재로 거기에는 책장에 가득 차 있는 책들과 함께 벽에는 그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었다.

부인은 날만 환하면 일어나 넓은 앞 뒤뜰을 밤새 무슨 이상이나 없는 가 두루 살핀 다음― 이것은 아마 매일 아침 고인이 하던 일이라 생각된다― 부엌으로 들어가 아침 준비를 한다. 칼도마에 도닥도닥 갖은 고명을 다져 정성스럽게 찌개를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상을 놓고 하는 부인의 모습은 남편이 생존해 있을 때도 그 이상 정성을 들일 수는 없었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는 몸단장을 깨끗이 하고 아이들을 단정히 준비시킨 후 언제나 자기가 손수 상을 들어 여섯 아이들과 함께 가만히 빈소로 간다.

커다란 사진 앞에 상을 놓고 수저를 들어 밥그릇 위에 놓은 다음, 그는 아이들과 같이 고요히 머리 숙여 합장하고 묵상한다. 이것으로 그들 일가족의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진지를 다 잡숫고 상을 물리듯 그는 상을 들고 물러나와 제각기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학교로, 직장으로 흩어져 간다. 부인은 남편의 서재를 깨끗이 소제하고 저녁때가 되면 또 내일 아침 빈소에 드릴 찬거리를 사러 장으로 나간다.

나는 비록 고인의 육체가 보이지 않으나 예전이나 다름없이 이 집을 다스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주인임을 보았다.

부인 역시 예전이나 다름없이 남편을 받들기에 여념이 없고 그의 기억이 늘 머릿속에 꽉 차 있는 듯하다. 빈소에 들어선 어머니와 아이들은 공손히 머리 숙여 그날의 할일들을 지시받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아내는 마음속으로 ‘당신의 뜻대로 하오리다.’ 맹세하고, 아이들은 또 아이들대로 ‘아버지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깊이깊이 마음속으로 다지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이 가정의 질서와 생활은 한 오리도 문란함이 있을 수 없다.

나는 이 아름다운 풍속을 아침마다 창 너머 보며 가슴 뿌듯해오는 감격을 느꼈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막내의 아르바이트 / 목성균  (0) 2021.05.16
여덟 살의 배신 / 목성균  (0) 2021.05.16
허물어진 꽃 담장 / 심정임  (0) 2021.05.15
풍장(風葬) / 조현미  (0) 2021.05.14
터널 / 김영곤  (0) 2021.05.14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