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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막내의 아르바이트 / 목성균

by 부흐고비 2021. 5. 16.

막내가 바캉스 비용을 벌기 위해서 삼복염천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공사장 잡부 일이다. 첫날 저녁때, 일을 마치고 돌아온 녀석은 괴멸된 전선에서 생환된 병사 만치 지쳐 있었다. 아내는 녀석에게 선풍기를 틀어 주고 냉 꿀물을 타서 먹이고,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아무리 모성본능이라 해도 너무 호들갑을 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고마웠다. 요즈음 녀석이 제 친구들과 전화 연락이 잦은 것을 엿들었다. ‘동해안이 좋을까? 남해안이 좋을까?’하는 걸로 보아서 바캉스 계획을 음모 중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저 녀석이 바캉스를 간다고 손을 벌렸을 경우, 선뜻 바캉스 비용을 줘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문제였다. 자식이 태양이 작열하고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여름 해변에 가서 젊은 날의 호연지기를 펴 보려는데, 비협조적인 부모가 어디 있으랴 -. 그렇지만 군대까지 다녀온 복학생인 처지에 중학생처럼 맡겨놓은 돈 달라듯 손을 내민다면 녀석은 실수(失手)를 하는 것이다. 줄 돈도 없지만 있어도 줄 수 없다. 그렇다고 모르는 척 하고 있기도 그렇고, 말도 안 하는데 바캉스 비용은 네가 벌어서 가라고 사전경고를 하기도 그렇고, 나는 공연히 신경이 쓰였다.

텔레비전 로컬 뉴스 시간에 바캉스 갈 비용을 벌기 위해서 거리 모퉁이의 새벽 인력시장에 일을 하려고 나와 서 있는 소년들의 모습이 방영된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나운서가 대견한 목소리로 그들을 고등학생들이라고 했다. 그들이 서 있음으로 해서 침울해 보였을 새벽 인력시장이 활기차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바다 풍경을 겹쳐 보면서 흐뭇했었다.

나는 이미 막내도 그 애들처럼 땀 흘려 번 돈으로 바캉스를 가야 한다고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물론 부모의 도리 상 모른 체 할 수야 없겠지만 비용을 전부 부모에게 의지하려고 한다면 나는 절대로 줄 수 없다. 그래서 이 녀석이 바캉스 비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던 차에 장비업을 하는 녀석의 막내 삼촌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형님, 진국이가 바캉스 비용을 번다고 공사장 잡부 일이라도 하겠다는데 어떡할까요?”

나는 뛸 듯이 기뻐서 얼른 대답했다.

“뭘 어떡해 알아 봐주지-.”

“삼복염천인데, 괜찮을까요. 혹시 더위라도 먹으면---.”

“삼복염천에는 공사장에 일하는 사람이 없니-?”

“왜요, 많지요.”

“그 사람들은 더위 안 먹게 무쇠로 만든 사람들이냐.”

“원 형님도, 알았어요. 나중에 애 더위 먹었다고 날 야단이나 치지 말아요.”

그렇게 해서 녀석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바캉스 비용으로 해서 녀석과 사이에 놓여있던 찜찜한 대치 국면이 풀린 게 기뻤다. 공사장 일을 해서 돈을 얼마를 버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녀석이 내게 바캉스 비용을 기꺼이 보태 줄 수 있는 명분을 준 것이다.

그런데 첫날 일을 하고 햇빛에 익어 온 녀석의 모습을 본 제 어미가 바캉스 비용을 줄 테니 아르바이트를 고만두라면서 안달을 했다. 맹목적인 모성애가 교육적 판단을 그르치고 있었다. 삼복염천에 공사장에서 일하는 것이나, 해변 모래밭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것이나 햇볕에 살가죽 태우기는 마찬가지지, 왜 일해서 태운 살가죽은 애처롭고, 놀며 태운 살가죽은 애처롭지 않단 말인가. 공연히 아이의 인생관 정립에 혼란만 일으키게 했다.

그러나 다음날도 진국이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일을 하러 나갔다. 고마운 일이었다.
아내는 애간장이 탄다.

“복날은 쉬게 할 걸, 애 더위 먹겠어요.”

그러고 보니 연중 가장 무더운 중복(中伏)날이었다. 나는 아침을 먹고 아내한테는 말을 하지 않고 녀석이 일을 하고 있는 공사장을 찾아가 보았다. 새로 건설 중인 아파트 단지 내의 중학교 건축 공사장이었다. 멀리서 녀석이 일하는 모습을 찾아보았으나 넓은 공사장 어디쯤에서 일을 하는지 눈에 뜨이지 않았다. 나는 근처를 돌면서 애를 찾아보았다. 겨우 공사장 한 쪽 구석에서 늙수그레한 일군 한 사람과 같이 장마를 대비한 임시 배수로를 파는 녀석을 발견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햇볕이 쨍쨍 내려 쬐는 불볕더위였다. 녀석은 웃통을 벗어버리고 상체를 맨몸인 채로 일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보아도 땀이 물에 빠진 것처럼 번들거렸다. 제법 전의(戰意)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충분히 중복 날 긴 하루를 노동으로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복 지경의 하루가 얼마나 덥고 먼 것인지, 나는 일찍이 서슥밭 이듬 매는 할머니와 나란히 사래 긴 밭골에 엎드려서 경험해 보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저무는 밭둑에 나앉아서 바라보던 산등성이 위로 지는 노을빛이 왜 그렇게 눈물겹던지-. 하루 종일 노동을 했다는 것이 그렇게 큰 자부심일 줄이야-. 늙으신 농부(農婦)의 담담한 일상에 비하면 한낱 철없는 감상일 뿐이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기억이 되었다. 저무는 사래 긴 밭골에 내 호미 끝이 남긴 참을성의 흔적이 조용히 어둠에 묻히는 광경을 돌아보는 기쁨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늙수그레한 일군의 몸에 밴 굳굳한 노동력 곁에서 어린 잡부가 중복 날 긴 하루를 노동으로 넘기고 저-, 아파트의 근골(筋骨) 너머로 지는 노을을 바라볼 때, 녀석은 분명히 평생을 잊지 못할 감동을 하나 불씨처럼 가슴에 묻으리라!

나는 근처의 약방으로 가서 자외선 차단 약제와 드링크제 두 병을 샀다. 그리고 녀석이 일을 하는 곳으로 갔다.

녀석이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아버지 무엇 하러 오셨어요. 창피하게---.”

아비의 감상적인 행동이 다 큰 자식의 자존심에 부담이 된 것일까.

“창피하긴---, 야 이거 마시고 등 돌려대 약 바르게---.”

드링크제를 같이 일하는 늙수그레한 일군에게 먼저 권하고 녀석에게 주면서 말했다. 녀석은 영 땡감 씹은 얼굴로 등을 돌려 댈 생각을 않고 서 있는데 늙수그레한 일군이 말을 거들어 주었다.

“ 그려 -, 아버지신가 본데---, 고맙잖아 -.”

녀석은 할 수 없이 드링크제를 마시고 등을 돌려 댔다. 나는 약을 짜서 진국이 등에 발라 주었다. 넓적한 등판이 벌써 벌겋게 햇볕에 탔다. 이제 약을 발라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다 큰아들의 등판을 쓸어 보는 것 또한 처음이었다. 그게 그렇게 큰 포만감인 줄을 나는 처음 알았다.

녀석에게 가계(家計)에 구애 없이 바캉스 비용을 주고 싶은 이 기쁨 -!

진국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효도를 벌어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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