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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환하면 끝이라더니 / 황미연

by 부흐고비 2021. 5. 17.

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은상

적막한 빈 집에 석류꽃이 피었다. 주인이 없으니 햇볕을 받아 안을 힘조차 없어졌는지 지붕 한 귀퉁이가 내려앉았다. 도시로 떠나버린 자식들을 기다리며 혼자 살던 할머니를 기억이나 하듯 마루에 방치된 자그마한 냉장고를 본다. 잡초만 무성한 마당을 지나 한 열댓 걸음 걸어가면 별채에 달린 작은 방이 나온다. 그 방안에는 주인이 보다만 책들이 널브러졌다.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언젠가 한번은 꼭 온다던 노모의 마음이 담긴 방이다. 낮게 쌓아놓은 담장 곁에 오래된 석류나무가 유난히 붉은 꽃등을 내걸었다.

고요하던 몸이 뜨겁게 들끓는다. 아무리 뜨거운 음식을 먹어도 땀을 흘리지 않던 몸인데 갑자기 더워지면서 목덜미가 흥건해진다. 남들은 추운데 나는 덥고, 남들이 더울 땐 또 춥다. 아주 사소한 것에도 예민해져서 살짝만 건드려도 미모사가 되고 만다. 나는 몸과 마음이 아프다는 병을 앓고 있다. 이 병의 증세는 구름 한 점 없는 상태가 계속되다가도 금세 기단과 기단이 부딪쳐서 장마전선을 이루며 장맛비가 오기도 하는 게 특징이다. 감기나 몸살처럼 약 한 봉지에 주사 한 대만 맞으면 깔끔하게 낫지도 않고 뚜렷한 처방도 따로 없다.

누구를 만나는 곳이든 혼자 있는 곳이든 불쑥불쑥 진땀이 난다. 무시하고 관심을 두지 않으니 보란 듯이 마음을 휘저어 충동질을 시키고 몸을 후벼 팠다. 덕분에 이상한 사람으로 오인 받고 분별없다는 말까지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매몰차게 떼어낼 수도 없다. 누군가는 때가 되면 저절로 없어진다고 했지만 사람마다 때가 다르니 언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살살 달래가면서 살자고 하지만 어떤 자신을 만날지 두렵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는 단골손님의 영향도 없지는 않다. 나의 특별한 손님은 어느 날 불쑥 예고도 없이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찾아왔다. 그 꽃은 비릿하면서도 우아했다. 달마다 한번 씩 찾아와 꽃을 주겠다고 했다. 겁도 났지만 그 누구도 흉내 낼 수도 없는 특별한 집에서 그를 만나는 것은 설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곳은 금전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아주 신비스러운 집이었다.

그 집으로 달마다 그는 꽃을 들고 찾아왔다. 잠에서 깨어나 부스스한 얼굴로 맞이하기도 하고 한껏 멋을 내고 여행을 떠나려면 먼저 찾아와 허리를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데리고 가기도 했다. 귀찮고 번거로워 싫은 내색을 드러내놓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소녀에서 여인으로 거듭났기에 홀대하지 않으며 특별히 맞이했다. 그는 예의도 발라서 방문하기 전에 미리 신호를 보냈다. 넌지시 몸 주위를 에워싸고 동심원을 그리며 주위를 서성거릴 때면 몸이 녹진해지면서 촉수도 예민해졌다. 손님이 온 날은 가능한 집에서 함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바깥 볼일이 있을 때는 집에 두고 나갈 수 없어서 무슨 비밀연애라도 하는 듯 그의 존재를 감추곤 했다.

어떤 날은 과감하게 이부자리에 그림을 그린 적도 있다. 어릴 때 덮고 자던 모란꽃 이불보다 더 붉은 꽃이었다. 하루는 언니의 손님도 꽃그림을 좋아했는지 둘이서 합세하여 밤새 이부자리를 꽃밭으로 만들어놓았다. 커다란 함지박에 꽃그림이 그려진 이불을 담가놓으면 한 잎 두 잎 꽃은 금세 지고 말았다.

내 몸의 일부 같은 존재가 되었다지만 손님은 손님이었다. 며칠을 머물다가 돌아가고 나면 홀가분하고 시원했다. 그가 머물던 방을 청소하고 덮었던 이부자리도 빨아서 새물내가 날 때까지 햇볕에 널어 말렸다. 개운해진 몸은 자유를 얻은 듯 접었던 날개를 펼치고선 가볍게 날아올랐다.

예부터 손님이 드나들어야 그 집안이 융성해진다고 했다. 나의 특별한 손님도 생이 다하면 걸음을 하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쓸쓸해진다. 그 쓸쓸함은 그가 오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그 전에 쌓아둔 커다란 공력 덕분에 아름다운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가 오지 않을 시간과 내가 아쉽게 보내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기쁨과 슬픔을 한꺼번에 안고 있는 몸체의 긴장 풀린 뒷면이 내게 주어졌을 뿐인데 여기저기 아프다. 누구든 왔으면 돌아가는 것은 순리인 줄 알지만 막상 그 순간이 찾아온다면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여 당황할 지도 모른다. 완벽한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무대에 오르기 전에 리허설을 해야 한다. 어쩌면 나는 지금 그 마지막 찬란한 만남을 위해 이별 연습 중인지도 모른다.

몸속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르거나 시도 때도 없이 감정이 변하는 자신을 보고 이러다가 쓸모없는 몸이 되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누군가 내게 분별없어 문제가 있다는 말에 입을 다물고 침묵하고 말았는데 이제야 파악할 것 같다. 돌아보면 당연시 하게 여긴 날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붉은 피가 돌았기에 푸른 가지에 잘 여문 열매를 맺고 뜨거운 노래도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몸의 농도가 옅어지면 어떠랴. 진하면 진한대로 연하면 연한대로 살아가면 그만인 것을, 몸과 마음에 생기를 주며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게 정답이 아닐까 싶다.

오종종 달아놓은 저 꽃등이 온 집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시골집 환하면 끝이라던, 마지막이라던 어느 시인의 말이 불현 듯 떠오른다. 아무도 들지 않는 쓸쓸한 집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석류나무는 내년에도 꽃을 피울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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