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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구멍에 대한 고찰 / 고옥란

부흐고비 2021. 5. 18. 09:15

제6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은상

할머니 가슴에 뚫린 구멍은 오직 당신만이 볼 수 있다고 했다. 아마도 심장을 관통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쟁 중 행방불명된 아들 덕주 때문에 생겨난 구멍은 해마다 깊어지고 넓어졌다. 가끔 그 구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구멍이 점점 더 넓어져 할머니를 삼켜버리는 건 아닐까, 할머니가 그 구멍 안으로 빠져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할머니가 입을 벌리고 잠들어 있었다. 벌린 입 사이로 할머니의 생이 드나들었다. 들숨으로 할머니에게 덕주가 들어갔고 날숨 속에 할머니 안의 덕주가 나왔다. 뼈만 앙상한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할머니가 무언가를 먹는 행위는 연명을 위한 단순한 반복처럼 보였다. 말이 드나드는 구멍인 입으로 한탄, 체념, 절규의 언어가 쏟아져 나왔다.

할머니 몸의 가장 원초적인 구멍은 이미 말라버렸다. 오래전 할머니는 구멍 안에 여러 차례 생명을 품었고 잉태했다. 때론 생명체의 존재를 알아채기도 전에 흘러버린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탄생과 고통, 환희와 공포가 뒤섞인 구멍이었다. 성소이자 생명의 집이었다. 그 구멍으로 덕주 또한 세상에 나왔을 터인데 말라버린 그곳은 이제 매미의 허물처럼 보였다. 덕주는 없고 허물만 남았다.

몸 안의 것들을 비워내기 위해서 구멍은 여전히 필요했다. 자리에 드러누운 할머니에게 배설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가장 본능적인 일을 어린 손녀에게 의탁해야 하는 할머니 마음은 불편했을 것이다. 허리 굽은 할머니가 힘겹게 엉덩이를 들어 올리면 변기 구멍을 재빠르게 맞추어야 했다.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민망한 일이 벌어졌고 할머니는 그런 민망함을 견디기 힘들어하셨다. 할머니에게 배설은 고통이었다.

떡시루에는 구멍이 많았다. 면 보자기를 깔고 쌀가루를 안치셨다. 구멍으로 몽실몽실 김이 솟아오르는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셨다. 김이 오른 떡시루 앞에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인 할머니가 있었다. ㄱ자로 굽어버린 허리. 불편한 몸을 평생 지팡이에 의지해야 했던 할머니는 화장실 문턱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치신 후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셨다. 떡시루에 떡을 안치는 일과도 영영 이별이었다. 떡시루 앞에 두 손 모으고 서 있던 풍경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만석꾼집 고명딸이었던 할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왔다는 커다란 항아리,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그 항아리는 무엇이든 두 배가 되어 나오는 항아리처럼 보였다.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 그 안에 가득 채워왔다는 엽전은 사라진 지 오래라서 엽전 항아리로써의 용도는 상실했다. 의자를 딛고 올라가 항아리 구멍을 들여다보고 입을 벌려 무어라 소릴 내면 항아리 안에서 공명되는 것들이 듣기 좋았다. 항아리 구멍 속엔 할머니의 자부심, 향수, 친정에 대한 그리움 등이 담겨있었다. 빗물이 고이면 하늘과 구름이 담겼고 내다보는 이의 얼굴이 그곳에 담겼다.

이른 새벽이면 할머니는 긴 머리를 참빗으로 빗어 내렸다. 가르마를 타고 양손에 동백기름을 듬뿍 머리에 발랐다. 똬리를 틀 듯 감아올리고 비녀를 꽂았다. 비녀는 할머니의 머리카락 사이에 작은 구멍을 만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혼자 머리 손질하기가 어려워지자 자존심과도 같은 비녀를 버려야 했다. 뭉툭한 가위 날이 어깨 위로 치렁하게 내려온 것들을 단절시켰다. 새하얀 것들과 새로 난 검은 것들이 뒤섞인 채 아래로 추락했다. 깡동하게 잘린 머리카락이 바닥에 뭉툭뭉툭 떨어지고 있었다. 오랜 것들. 더불어 살아온 것들, 세월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낯설었다.

구멍을 통해 몸 안의 것들을 남김없이 밖으로 쏟아내는 것으로, 들숨과 날숨이 드나들지 않는 것으로, 생명 탄생이 중단되는 것으로 삶에서 구멍의 용도는 대개 끝이 난다. 커트머리 할머니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덕주를 부르고 있었다. 마치 덕주가 눈앞에 와있기라도 한 듯 두 팔이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벗어던진 허물을 잊지 못하는 매미처럼. 메마른 입술 사이로 평생을 그리워한 이름을 불렀다. 어느 순간 허공을 가르던 손이 맥없이 떨어졌고 마지막 숨이 새어 나왔다. 열린 틈새로 햇살이 비춰 들고 있었다. 문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 사이로 먼지 입자들이 산만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염을 하는 이들은 겉으로 드러난 모든 구멍들을 막았다. 할머니 가슴에 뚫린 구멍도 막아주기를 바랐다. 혼란도 증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운명을 지닌 우주 만물들은 살아있을 당시의 질서 정연함이 무너지면 곧바로 분해의 과정을 거친다. 구멍을 통한 물질 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이 오면 생명에 대한 기록 또한 멈춘다. 어쩌면 임종 시 구멍을 막는 행위는 생에 마침표를 찍는 행위와 같은 게 아닐까.

언제든 돌아가고 싶어 하셨던 장천동 고향 땅이 할머니의 유터가 되었다. 할머니를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이 땅을 깊게 파고 있었다. 새하얀 꽃가마에서 내려진 할머니가 더 이상 열려있지 않는 구멍,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구멍 안으로 들어가셨다. 평생 허리 굽은 채로 사셨던 할머니가 허리를 쭉 펴고 삼베옷 입고 고깔모자 쓰고 뾰족 버선을 신고 고향 땅 양지바른 구멍으로 들어가셨다. 할머니 삶에는 숱한 구멍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그리고 분단. 어찌할 수 없이 빠져야만 했던 구멍들이었다. 그 구멍들 안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아흔 해의 긴 생을 살았다. 마침내 깊고 깊은 구멍 속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으셨다. 고향 땅, 연초록 잔디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구멍을 만든다. 생성의 구멍이 되기도 하고 파괴의 구멍이 되기도 한다. 구멍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커져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여 버린다. 욕망의 구멍이다. 세상은 구멍투성이고 구멍의 폭과 깊이는 제각각이다. 구멍에 빠지기도 하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도 치고, 받아들이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는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삶일 것이다. 상당히 깊고 치명적인 구멍도 있어서 발버둥 치는 소리가 포집된 곤충의 공허한 날갯짓처럼 들리기도 한다. 구멍에 빠져서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이리저리 교묘하게 도망쳐버린 흔적들 속에서 지난한 삶들의 허점을 본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구멍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종국에는 누구든 세상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구멍 안으로 사라져 버릴게 분명한데도 자신은 예외일 거라 생각하고 덧없는 것들을 품는다. 구멍에 빠져서 구멍 위로 보이는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아무 것도 가질 수 없을 때에야 비로소 구멍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온전한 ‘나’를 찾게 될 것이다. 어디선가 날개를 부딪는 곤충 소리가 들린다. 여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소리다. 바스락 거리는 날갯짓이 계속된다. 세상의 어떤 구멍에 빠지더라도 나의 날갯짓이 멈추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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