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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어느 레슬러의 꿈 / 이기식

부흐고비 2021. 9. 29. 08:47

요즈음은 자주 초조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지나온 시간에 비하여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공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이나 다 들 인생을 후회하기는 마찬가지일 거라고 스스로 위로도 해보지만, 그래도 마음속은 그리 편치만은 않다.

틀어놓은 TV에서 '빠떼루'란 말을 언뜻 듣지 않았으면 오늘도 여느 날과 같은 날이 될 뻔했다. 스포츠 해설가들의 일화를 소개하는 중이었다. 1996년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레슬링 중계를 맡았던 ‘빠떼루 아저씨’ 김 모 해설위원의 이야기였다. 우리 모두 잘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 해설위원은 '파테르(par Terre)'라는 레슬링 용어를 ‘빠떼루’라고 말했다. 사투리처럼 들렸으나 이상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분위기에 빨리 빠져들게 했다. 레슬링 중계 시간이면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는다. 해설위원이 ‘네∼, 저런 경우에는 빠떼루를 줘야 해요!’라고 시청자 쪽을 바라보며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면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친다. 빠떼루! 빠떼루!

레슬링에서 경기를 의도적으로 피하기만 하는 선수에게 주는 벌칙이 빠떼루다. 획득한 점수를 경기가 끝날 때까지 지키기만 하면 이길 수 있기 때문에 싸움을 피한다. 심판은 이런 선수를 매트에 엎드리게 하고 다른 선수가 뒤에서 공격하게 한다. 상대방 등을 마치 ‘자라’를 뒤집듯이 바닥에 닿게만 하면 이긴다. 경기가 끝나기 3초 전이면 충분하다. 득점에 뒤지고 있는 레슬러에게는 이 ‘마지막 한판 뒤집기’야 말로 황금 같은 기회다.

지나온 삶을 만회할 수 있는 ‘빠떼루’ 기회를 한번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다가 얼핏 잠이 들었나 보다. 애틀랜타 레슬링 경기장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관중들이 서로 옆 사람을 엎어놓으려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마지막 뒤집기 한 판을 노리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또 한쪽을 보니, 내가 ‘빠떼루’를 받고 있었다. 집사람이 레슬링 선수처럼 손을 약간 앞으로 내밀고,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잔뜩 긴장하고 서 있었다. 그 뒤에는 아들, 형제 그리고 친척이나 동료들이 끝없이 보였다. 밤새도록 뒤집혀도 끝나지 않을 정도로 길이가 길었다. 내가 레슬러였다. 나도 장자처럼 낮잠을 자면서 꿈을 꾼 모양이다. 나비 꿈은 아니었지만.

그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성격 착하고 공부도 잘했던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와서는 자기 물건을 낙찰시켜달라고 했다. 꽤 큰 액수의 입찰로 이미 어느 정도 담합이 되어있었던 건이었다. ‘다음 기회를 보자’는 말로 얼버무렸다. 얼마 후에 그의 부고가 왔다. 억울하게 직장에서 밀려난 후, 몇 가지 사업을 했으나 실패의 연속이었고 병만 얻은 모양이었다. 내가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일이었다.

셋째 동생은 6·25 때 태어난 죄로 제대로 얻어먹지도 못하여 비쩍 마른 개구리 모양이었다. 어느 날인가 빈속에 1ℓ들이 활명수를 몽땅 마시고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밖에서 돌아온 나는 동생의 하는 짓이 이상해서 발로 차고 또 때렸다. 말도 못 할 때라 맞으면서도 나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 눈이 잊히지 않는다. 커서도 여러 면에서 부족한 세상살이를 하는 걸 볼 때마다 속이 상했다.

둘째 아들은 중학교에 입학해서부터 십오여 년이나 우울증에 시달렸다. 항상 정신적으로 괴로워했고 잠은 거의 못 잔다. 아버지하고 이야기라도 해서 위안을 얻고 싶어서 내 방으로 찾아 을 때가 있다. 나는 모르는 척하고 자는 체한다. 몇 번 ‘아빠’ ‘아빠’하고 부르다가는 돌아선다. 내가 자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아들의 뒷모습을 살짝 본다. 지금은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집사람에게 수시로 상처를 줬다. 성격이 날카롭고 짜증을 잘 내는 나를 50여 년 동안이나 참으면서 입속의 혀처럼 구석구석 잘 보살펴줬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긴장을 풀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가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혹시 이제 내 나이도 나이니까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더 좋아지길 포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많은 기억 중에서도 생각하기 싫고 괴로운 기억은 유난히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기억의 속성인 모양이다. 아마도 저질렀던 잘못한 일을 되새기게 하여 후회 없는 미래를 만들라는 신의 섭리일지도 모른다. 인간도 인생과 힘을 겨루는 레슬러다. 오늘부터라도 노력하여 인생으로부터 ‘빠떼루’를 한번 뺏어야겠다고 다짐은 한다. 그러나···

노쇠한 돈키호테가 창을 들고 거대한 풍차를 공격하다가 날개에 맞아 나동그라지는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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