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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나의 막차시대 / 한영탁

부흐고비 2021. 10. 29. 13:44

젊은 시절 나는 막차의 단골손님이었다. 야간 통금을 앞둔 밤 열한 시 무렵이면 도심의 버스 정류장은 늘 막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밤늦게까지 영업을 하다가 서둘러 가게 문을 닫고 나온 장사꾼, 찻집 아가씨와 학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재수생들로 장터를 이뤘다. 피로에 지친 이런 군상 속에는 거듭된 야근에 녹초가 되어 귀갓길에 나선 사무직 직장인과 공무원도 섞여 있었다.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라는 주인의 재촉에 떠밀려 나온 거나하게 취한 술꾼들도 섞여 있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일 때가 잦았다.

나는 일터가 자리한 광화문 인근 무교동이나 다동, 관철동의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나누다가 허겁지겁 종로로 뛰쳐나와 막차 버스를 기다리곤 했다. 막차를 잡으려는 사람들은 목적지 행 버스가 들어서면 우르르 몰려가 서로 비집고 버스에 매달린다. “오라잇!” 차장 아가씨가 외치며 차문을 쾅쾅 치면, 막차 버스는 다음 정류장을 향해 발차한다.

발 딛기도 어려운 차 안은 언제나 후텁지근한 땀내, 지분내, 시큼 텁텁한 술 냄새가 코를 찔러 숨쉬기도 어렵다. 용케 좌석을 차지하여 앉아 온 손님들은 곤한 잠에 떨어져 꿈속을 달린다. 하지만 간신히 발 디디고 선 사람들은 차가 흔들리는 대로 전후좌우로 밀리며 거의 레슬링 하듯이 서로 몸을 안고 비틀댄다. 소매치기꾼들의 활동 무대가 열리는 절호의 찬스는 바로 이때. 승객 속에서 "도둑이야, 내 핸드백!“ 여인의 찢어지는 외마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나의 통금 시대 막차 풍경이다.

한 번은 추운 늦가을 밤 만취하여 막차에서 잠이 들었다가 낯선 종점에 내린 적도 있다. 곧 통금 시간이 되면서 인적이 끊겼다. 아직도 취한 상태로 마을이 있을 만한 방향을 어림잡고 터벅터벅 걸었다. 얼마쯤 지나 술이 깨면서 정신이 들어 둘러보니 가을걷이가 거의 끝난 들판을 무턱대고 배회하고 있는 게 아닌가. 되돌아서서 비틀거리며 한참을 걷다 보니 헌병대의 거리 초소가 나왔다. 그 안에는 장작 난롯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마음씨 좋은 초병 옆에 앉아 언 몸을 녹이며 졸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날이 차츰 밝아오면서 김장거리 채소를 걷으러 나온 농사꾼들이 화톳불을 피우고 무, 배추를 뽑기 시작했다. 어슬렁거리며 다가가 생 무를 하나 얻어서 우걱우걱 베어 먹으며 갈증을 달랬다. 나중에 알아보았더니 예비사단이 주둔한 수색 화전리 부근의 들판이었다. 접적(接敵)지대. 자칫했으면 간첩으로 오인되어 큰 변을 당할 뻔했다. 아찔한 경험이었다.

늦은 밤 서울 변두리에 있는 집을 찾아가는 이런 막차 풍경을 잘 알면서도 며칠마다 막차에 비집고 오른 까닭은 무엇이었던가. 한 마디로 술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술보다는 벗을 좋아한 탓이었다.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퇴근 후 벗들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술에 취하고 대화에 취했다. 수습기자 딱지를 뗀 직후 새로 사귄 동료들과 나누고 싶은 화제가 너무 많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술이 들어가면 새로운 생각이 번쩍번쩍 떠오르고 말이 술술 쏟아져 나왔다. 국제 뉴스를 다루는 나와 동료들은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암살, 흑인폭동, 할렘가 아파트에서 쥐에 물려 죽은 갓난아기 이야기,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중동전쟁을 화제로 입씨름을 하곤 했다. 에드가 스노 기자가 쓴『중국의 붉은 별(Red Star China)』, 마오쩌둥(毛澤東)이 불붙인 붉은 대륙의 문화대혁명을 화두로 올려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나중 이른바 386세대를 비롯한 좌파 세력의 대부가 된 데스크 L 선생*은 열변을 토했다. 문화혁명은 중국혁명을 성취한 후, 사회주의 정신을 잃어가는 신흥 권력자들을 질책하고, 혁명을 모르고 자라는 신세대 젊은이들에게 혁명을 체험시키기 위한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그건 레닌을 넘어서, 인류의 운명을 바꿀, 한 차원 높은 새 혁명의 시작이라고 역설했다. 비슷한 논지를 펴는 일본의 중견 언론인들도 많았다. 나는 반신반의 했다. 중학생 홍위병들이 불상(佛像)과 공자의 사당을 허물고, 고전과 외국책을 불태우고, 스승의 머리에 붉은 고깔을 씌워 끌고 다니며 훼욕하는 폭거. 그것은 문명의 파괴, 야만에로의 회귀로 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문화혁명은 권력의 재탈환을 위한 마오의 투쟁이란 서방 언론의 진단이 옳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나의 열혈 시대였다.

그 무렵의 막차는 자정이면 떨어지는 야간 통행금지 조치의 산물이었다. 통금이 술꾼들의 막차 귀가도 가져왔다. 나는 몇 년 뒤 통금이 없는 홍콩에 출장 갔을 때, 통금이 의식, 무의식중에 우리의 정신을 얼마나 부자연스럽게 옥죄어 왔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어느 늦은 밤 나는 숙소가 있는 홍콩 섬과 주룽반도(九龍半島) 사이를 밤새껏 운행하는 스타페리를 타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위로 거듭거듭 오가면서 통금도 막차도 없는 자유에 푹 젖어 보았다. 이제 통금은 사라졌다. 막차가 끊어져도 심야버스가 온다. 하지만 나는 내 육신이 영원히 잠들 세계로 데려다 줄 막차를 기다리는 나이가 되었다.

* 『전환시대의 논리』를 쓴 고(故) 리영희 교수


한영탁: 『에세이21』 등단. 남강문학회, 산영수필문학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페가수스의 꿈》

         譯書 《周恩來》, 《鄧小平》, 《삶과 문학의 길목에서》, 《티베트에서의 7년》, 《바다 한가운데서

         (In The Heart of The Sea)》, 《모스카트家(The Family Moskat)》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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