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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비움을 품은 석탑 / 신홍락

부흐고비 2021. 10. 31. 23:41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상


걸음을 디딜 때마다 딸그락거린다. 매끈하게 다듬지도 않고 넓적하게 생긴 돌들을 쌓아 올려 탑을 만들었다. 탑이라기보다 돌무더기에 가깝다. 남쪽 감실 속 불상 앞에 다소곳이 앉아 비손하는 어머니 옆을 하릴없이 왔다 갔다 한다. 꼰들대며 내는 소리는 틈새를 메우고 있던 염원들이 내지르는 외침인 듯하여 조심스럽게 발을 옮긴다.

중앙고속도로 의성 나들목에서 20여 분 거리인 의성군 안평면 석탑리에는 시간의 더께가 켜켜이 쌓인 고려시대 장방형적석탑이 있다. 어린 시절 석탑 뒷산 8, 9대 조부 산소에 묘제를 지낼 때마다 따라다녔다. 나에게는 놀이터였고 어머니는 기도처로 삼았다. 정숙하게 앉아 들릴락 말락 주문을 외는 엄숙함에 주눅이 들었다. 지금의 깔끔한 모습과는 달리 당시에는 잡초가 듬성듬성한 2층 감실에 아무나 올라갈 수 있었다. 묘사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어머니의 기도는 멈출 줄 몰랐다. 지루함에 고집을 부리면 마지못해 “너거는 잘되라고…” 하며 일어섰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 칠 남매 말고 또 누가 더 있어 ‘너거는’이라고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탑은 붓다의 유골을 분배하여 안치하는 무덤으로 출발하여 경전이나 불상 등을 보관하는 역할로 발전했으며 진리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돌은 영원불멸의 신앙일까. 내용물의 훼손이나 유실을 방지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꼼꼼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아사달 같은 전문가의 도움으로 차단과 폐쇄기능을 우선하는 석탑을 쌓았을 터이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탑들을 보면 일반 백성들은 만들 수 없는 타율의 냄새가 배어있다.

장방형적석탑은 같은 크기나 동일한 형태로 다듬은 돌이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다. 자연석을 눈대중으로 크기와 길이를 어림잡아 허술하게 쌓아 올린 모습에서 멋이나 기교는 찾아볼 수 없다.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잡석으로 형식도 없이 포개어 얹었다. 생김새가 제각각이라 틈새도 많다. 자연스러운 비움의 공간이다. 빈틈없이 짜 맞춘 다른 석탑에 비해 헐거운 솜씨로 내버려 둔 사이에서 느긋한 여유와 자율이 느껴진다.

불교국가인 고려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 산골까지 나라의 힘이 미치지 못하니 숱한 장삼이사는 스스로 신앙의 탑을 쌓고, 돌 속에 마음을 담아 감실을 만들고 부처를 모셨다. 돋을새김한 불상의 투박하고 무던한 모습이 외려 마음을 한없이 편안하게 한다. 눈·코·입을 생략한 여백은 잘나고 못난 사람 누구라도 받아들이겠다는 포용이 느껴진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큰형과 작은형이 터울이 많은 까닭을 알았다. 채 피워 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간 둘째 형이 있었다는 누나의 말이 가슴에 박힌다. 비로소 어머니의 ‘너거는’이라는 말이 생생하게 파고든다. 자식을 잃은 단장의 비애를 석탑에 풀고 나머지 자식들의 안녕을 빌고 또 빌었다.

속수무책인 벽에 기댄 채 비어가는 쌀뒤주를 바라보는 고단한 삶이었다. 옹색한 살림살이는 모두가 같은 시절이라 인이 박였지만, 원인도 모르게 꺼져가는 어린 피붙이를 보는 막막한 심정을 기댈 곳은 석탑이었다. 가지 말라는 울음을 삼키며 속절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뼈를 깎는 고뇌는 사리가 되어 석탑에 묻히고, 감실 부처의 빈 얼굴에는 둘째 형의 눈·코·입을 그리며 뺨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아픔을 달랬다.

어머니와 같은 고통을 가진 모든 민초들이 시름으로 다진 돌로 탑을 쌓고 염원이 담긴 기도는 경전이 되어 공간을 메웠다. 위에서 권하는 타율의 불교가 신성한 물건을 안치하여 숭배를 유도하는 닫힌 탑을 세웠다면 마땅히 채울 것 없는 백성들은 비운 마음으로 열린 탑을 만들었다. 비록 배우고 가진 게 없어도 불교를 이해하고 붓다의 뜻을 헤아려 석탑을 완성했음을 보여주는 역설의 증거가 아닐까.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가 아니던가. 이는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인 공(空)과 이타행(利他行)을 천착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꼬리를 문다. 솜씨 없이 대충 다듬은 바위로 기단을 만들고 속에는 갖가지 모양의 깨진 돌을 채워 넣었다. 언제든 누구나 쌓을 수 있는 돌멩이에도 사이를 두었다. 그 빈틈에 지역민의 한과 소원이 빼곡히 들어차 천년 세월이 이어졌으리라.

무엇이든 가득 채우려고만 하고 갖다 놓고 저장하려는 본성을 하나도 버리지 못한 걸 깨우친다. “물은 다 차야 비로소 넘쳐서 비워지고 그전에는 억지로 비우지 않으면 비울 수가 없으며, 비움은 다 차야 비워진다는 전제가 있는, 마주 보는 거울 같은 소욕지족(小欲知足)의 이치”라는 노스님의 일갈이 뒤통수를 친다. 빼고 내려놓고 비워두어야만 얻을 수 있는 기쁨이 있다는 걸 모르고 어찌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듬성듬성 쌓아 올린 석탑에서 채움과 비움의 오묘한 이법을 알아차린다. 물과 같은 성질을 지닌 전기를 공부한 40년의 세월이 허망하다.

집안 족보에 9대 조부의 산소가 석탑사 계곡이라 적혀있는 것을 보면 탑이 절집보다 먼저 세워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터를 잡으며 후손을 위한 발복의 염원도 담았겠지만, 맺힌 곳은 아니라고 배웠다. 뒤가 허술하여 멸손(滅孫)은 아니라도 귀손(貴孫)쯤은 되는 곳으로 판단되어 이장을 마음먹었다. 6대를 넘긴 시간은 후손에 미칠 화복이 끝났을 세월이지만, 어머니의 잊지 못하는 상실 기억을 치유한다는 핑계가 당대에 대한 효도라는 짧은 생각이었다. 이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이장을 위한 추석 가족회의를 서너 달 앞두고 어머니는 둘째 형 곁으로 떠나가셨다. 윗대를 소홀히 한 업보가 또 다른 자식에게 화를 미칠까 서둘러 비보를 한 것인가.

어머니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가슴에 남아 장방형적석탑 앞에 섰다. 마음만 세운 불효가 한이 되어 성긴 돌 틈에 박힌다. 석탑 뒤쪽 백성들의 소원과 눈물이 넘쳤을 조그만 연못 배수로에 갈대가 무성하다. 어머니의 만가처럼 갈대숲에 바람이 운다. 햇빛이 윤슬을 타고 사리처럼 떠다닌다. 목젖이 뜨거워진다.


 

수 상 소 감
유년 시절의 기억은 힘이 셌습니다. 슬픔이 묻어있으면 질기기도 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둘째 형의 죽음이 어머니의 가슴에 큰 한으로 자리 잡은 사실을 안 이후로 그 상실의 허기를 메꾸는 방법을 빨리 터득하지 못한 우매함에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한발 늦은 처방을 옮기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어머니는 내 가슴에 또 다른 구멍을 만들었지요.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찾은 석탑의 빈 곳에서 다른 이의 후회도 가득할 거라는 동질의 안도감이 불편한 마음을 쓰다듬었습니다. 뒤늦게나마 어머니의 영혼에 위로가 됐으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평생 느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글쓰기에 뛰어들었지만 물 마시듯 쉽지 않음을 체험하는 중입니다. 이리 구르고 저리 튕기다 보면 피 흘린 상처도 아물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버티고 있습니다.

빈틈이 많은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고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는 곽흥렬 선생님과 언제나 조언을 아끼지 않는 월요반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대구수필문예대학 수료(31기) △수필문예회원 △제4회 대구노동자 문화예술대전 문학부문(수필) 동상 △제9회 수필문예 (2021년 제20집) 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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