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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반가운 철새들. 무얼 먹고 허기를 달래는지, 추위는 또 어찌 견뎌내는지 늘 걱정이 되면서도 겉보리 한 줌, 식빵 한 조각 나누어준 적이 없다.

아파트 단지와 단지 사이로 흐르는 개울을 따라 나는 매일 아침 한가롭게 산책하고, 냄새 나는 2급수에서 새들은 분주히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잡히는 것 하나 없이. 쓸개를 핥듯 갯바닥을 훑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열 받았는지 수면을 박차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분노만큼의 높이었을까?

쇠오리는 쇠오리끼리,

꼬방오리는 꼬방오리끼리,

흰뺨검둥오리는 또 흰뺨검둥오리끼리

뭐라 듣기 좀 거북한 소리를 지르며 하루에도 몇 차례씩 편대비행을 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몇 군데 요절을 내고 말 요량이었을까? 아니면 바닥부터 차곡차곡 적의를 다지기 위한 극기훈련이었을까?

드디어 소한 대한을 넘기고, 입춘 곡우도 그렇게 넘기고, 봄비도 내리고, 갯버들 가지마다 막 연두색 봄이 움트기 시작할 무렵, 이제 좀 살 만하다 싶을 무렵, 새들은 겨우내 수척해진 몸을 추스르며 솔가해서 떠났다. 모래톱에 희미한 발자국만 남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버리고 말았다.

고층아파트들 사이에 드리운 현수막만한 넓이의 하늘. 창백한 하늘 한 자락을 찢으며 날아가던 한 무리의 철새들 울음소리.

“끼륵, 끼이륵 끼륵”

저희들끼리 주고받던 쇠된 울음소리. 그런데 내 귀에는 그 금속성이 왜 자꾸 결기에 찬 무슨 다짐처럼 들렸을까?

“다시 오나 봐라!”

“다시 오나 봐라!”

“다시 오나 봐라!”

멀리 북녘 하늘을 향해 소실점으로 사라지던 철새들의 아득한 뒷모습. 미안했다. 귀한 손님을 찬방에서 재워 보낸 날 아침처럼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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