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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땅은 하늘이 내리는 빗물을 받는다. 그 물이 벼를 키우고 사람의 양식이 되면서 나라를 융성하게 한다. 나라가 수리를 국가사업으로 삼는 이유이다. 비를 뿌리는 시기는 하늘이 정하기에 땅과 사람과 나라는 묵묵히 받아 모으고 건사할 뿐이다.

부슬비가 내리는 날 영천 구암리에 있는 청제(菁堤)를 찾았다. 채약산 주변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거두며 천년 하고도 오백여 년을 견뎌온 물이다. 청제는 축조 연대(536년 신라 법흥왕 23)가 확실하고 기록물과 실물이 함께 보존되고 있는 신라 유일의 저수지로 겉모습은 여느 못과 다름없으나 의미가 깊은 못이다.

둑 아래로 백여 보를 내려가니 잘 정리된 비각 안에 보물 제517호 청제비와 청제중립비가 나란히 서 있다. 두께와 높이가 고르지 않는 넓적한 자연석에 비문이라 하기엔 소박한 삐뚤빼뚤한 글자가 양면에 새겨졌다. 오랜 풍상으로 흐릿해 보여도 증언자로서 손색이 없다. 한쪽은 처음 둑을 축조한 사실을, 다른 쪽은 무너져 내린 둑을 수리한 사실을 적었으며 양면의 기록연대가 다르다. 소상한 기록이 오늘날 중요한 사적자료가 되었으니 선대의 자상함이 찌릿하게 전해지는 각별한 비(碑)이다.

청제중립비는 절단되어 땅속에 묻혀 있던 청제비를 다시 맞추어 세운다는 내용을 담아 1688년에 건립했다. 옛날 흔적을 전하지 못할까 애석해하고, 훗날 사람들이 이 제방을 허물지 말아야 할 까닭을 비문을 통해 전해준다. 많던 저수지가 하나둘 낚시터로 전략해가는 현실에서 청제가 지금껏 제 기능을 잃지 않음은 옛 것을 아끼고 농사를 소중히 여기는 선조들 덕분이라 생각하니 고맙고 느껍다.

밥이 곧 구원이고 신앙이었다. 5~6세기는 신라의 주작물이 맥류에서 쌀로 바뀌는 시기였다. 신라는 쌀 생산을 늘리기 위해 몇몇 곳에 수리시설을 만들었다. 가뭄과 홍수의 피해를 막는 것이 쌀의 생산량을 늘리고 나라 곳간을 채우는 최상의 방법이므로 치수의 대역사를 시작한 것이다.

국력을 쏟아부은 공사는 장상(우두머리) 3명의 지휘 하에 장작인(토목 인부) 7천 명이 동원되었다. 1조가 25명씩 280조로 편성되었다. 마침내 저수면적 약 11만㎡, 유효 저수량 59만 톤, 몽리 300석 소출의 근원을 만들었다. 청제는 새 하늘이 열리는 것과 같은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제방 둑이 무너져 내리고 왕명을 받은 내소사는 주변 인력을 더 많이 동원해 다시 토목작업을 진행했다. 부척(기술자) 136인, 법공부(전시는 전쟁에 동원, 평시는 농사에 동원되는 사람) 1만 4천인이 동원되었다.

청제는 그 아래 펼쳐진 30만 평의 젖줄이었다. 물줄기는 구암과 도남으로 나뉘어 흐르면서 그 일원의 살림살이가 푼푼했다. ‘나는 새는 굶어 죽어도 구암 사람, 도남 사람은 굶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었던 것을 보면 청못의 혜택이 어떠했을지 짐작된다. 못은 오랫동안 물줄기를 다져 잡고 농토를 어루만지며 농민을 섬겨왔다. 청제라는 이름은 청지(菁知)가 살던 동네에 만들어졌다 하여 청못이라 부른 데서 시작됐다. 전설은 접어두고 가뭄이 와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말을 믿고 마을을 위해 솔선수범 못을 만든 청지의 진심을 새긴다.

시대를 막론하고 가뭄은 인력으로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다. 어렸을 적 엄청난 가뭄을 보았다.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 벼 포기가 말라 비틀었고 밭이랑 사이에는 풋것들이 배배 꼬였다. 곡식보다 먼저 타들어 버린 가슴으로 하늘을 우러러 애원을 해도 끝내 천심이 농심을 외면한다. 가뭄이 지나간 그해 마을 어른들은 허리끈을 졸라매었고 아이들의 얼굴에는 부족한 영양상태를 알리는 마른버짐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홍수는 더 무서운 자연재해이다. 사라호 태풍이 온 나라를 강타했을 때다. 추수를 앞둔 계절이라 벼 이삭이 넘실대던 우리 마을 아래들 논은 자갈과 모래를 덮어쓰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해 가을 사람들은 추수 대신 자갈을 걷어내느라 허리가 휘어졌다. 한 해 소출을 잃어버린 마을에는 여기저기 바닥난 쌀독을 긁어대는 소리가 높아가고 나물죽으로 허기를 채운 아이들의 얼굴은 누렇게 물들어 갔다.

홍수로 다 지은 농사를 버린 마을 인심은 흉흉했다. 심경에 변화를 일으킨 아버지는 이태를 준비하여 토지를 팔고 수리시설이 있는 곳으로 농토를 옮겼다. 저수지 아래에 마련한 아버지의 다락논은 제 소출을 내었다. 모내기 계절이 돌아오면 고논의 물꼬를 다지고 무넘기를 만들어 아래 논으로 흘러 보낸다. 물이 찬 논에 써레질이 한창이더니 이내 못줄 넘어가는 소리가 신명 났다. 모포기가 사름을 해 푸른 기운이 차오를 때쯤 아버지 발자국 소리에 기운이 실렸다.

돈가뭄이 심한 농촌에서도 아버지의 주머니는 마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한강물은 말라도 안현 어른(어머니 택호가 안현댁) 주머니는 마르지 않는다고 했다. 풍요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절제와 요량에서 나온 말이다. 아버지 주머니는 저수지 물꼬처럼 열고 닫는 때를 분별했다. 중농에 이르지도 못한 형편에 아끼고 모으고 준비를 잘하시는 아버지는 우리의 저수지였다. 당신 자신을 잊고 가족을 위한 헌신의 주머니에서 흘러내리는 근검을 마시며 우리는 다락논의 나락처럼 자랐다.

다시 청제 둑에 오른다. 시간은 증발되고 못은 남았다. 남쪽 끝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차들이 빠르게 달린다. 속도감을 따지는 현대인들은 청못을 토막 내어 도로를 만들었다. 몸의 상당 부분을 내어준 저수지는 이제 한풀 꺾인 모습이다. 하기야 쌀밥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사뭇 달라지고 있다. 영양가 많은 쌀을 당뇨병의 주범으로 몰아가고 탄수화물이 높다는 이유로 쌀밥을 네뚜리로 대하는 세상이다. 기름진 도남 들판을 공단으로 변모시켜 쌀 대신 공산품으로 경제를 챙기는 것만 봐도 세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지 않는가.

도남 들판의 젖줄이던 청제는 안타까움에 젖어든다. 물줄기는 아직 도남 들판의 곡식을 키우고 싶다고 기세 좋게 못을 빠져나왔지만 공단으로 막혀버린 도남 쪽 물길은 땅 속으로 길머리를 잡을 수밖에 없다. 건물과 도로 아래로 빠져나온 물줄기는 몸의 일부를 공단에 떼 주고 홀쭉해진 들판을 부여잡고 곡식을 키운다. 왠지 그 모습이 먹먹하고 울컥하다. 청제의 물줄기는 그 빛나던 시절처럼 들판을 가로질러 힘차게 흐르고 싶다.

수상소감

대구일보에서 주최하는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입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신 것 만도 감사한데 수상자 명단에 이름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추억과 기억을 살려내어 글을 쓰는 일은 즐거운 작업입니다. 쓰는 과정 속에서 이미 행복을 누렸는데 잘 쓴 글로 뽑아주시니 기쁘고 힘이 됩니다. 기운을 돋우어 다시 쓰라는 격려로 받아들이니 즐거움이 솟구칩니다. 늦게 시작한 글쓰기가 이제 물이 오르는가 싶어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많은 놀이나 일 중에서 글 마당에서 서성거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남의 글 많이 읽고, 생활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고, 내면을 성찰하고, 문장을 갈고 닦는 일 게을리 하지 않으리라 다져봅니다. 해마다 경북문화를 체험해 수필로 접목시킬 수 있도록 전국 수필대전 행사를 열어주시는 대구일보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 뽑아 주신 심사위원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 2018 종합문예지 ‘영남문학’, ‘문학의 봄’ 수필등단 △ 2021 추보문학상 본상(수필)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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