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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어머니와 아버지의 설득의 기술 / 김인현

by 부흐고비 2021. 11. 15.

무거운 마음으로 고향집으로 달려갔다. 태풍 때문에 담장이 무너져 내렸다. 대문을 달고 있었던 좌우 담장 약 20미터가 사라진 상태이다. 건물이 훤히 보이는 것이 무언가 나사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다. 담장을 다시 쳐야 할 터인데, 장남인 형이 있으니 형과 상의해서 결정할 사항이다.

저녁을 친구들과 먹고 9시경에 샤워를 하고 어머니 방에서 자려고 하는데, “야야”하고 부르신다. 어머니는 만면에 아이 같은 순진무구한 웃음을 띠고 계셨다. 웃으시면서 말씀을 이어가신다. “담장 무너진 한 쪽에 조립식 건물 조그마하게 짓지 못하나, 애비야”. 나는 답을 했다. “예, 전에도 어머니 편하시게 모시려고 우리가 조립식 건물 짓는 것을 논의했습니다”.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너가 자주 축산집에 오니, 지금 여기가 너무 불편하잖아. 샤워장도 없어서 불편하고…. 너 축산 집에 오면 편하게 있다 가도록 조립식을 하나 지어라.”고 하신다. 다시 한번 고개를 들고 어머니를 보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다. "그렇게 할까요?“ 하니 어머니는 ”그래“라고 답을 하신다.

내가 지금까지 뵌 어머니의 얼굴 중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다. 만면에 미소가 가득하고 애기 같은 순수한 표정이시다. 구순노인의 얼굴이 아니다. 최근 10여 년 동안 내가 뵌 어머님의 얼굴 중 가장 편하고 무언가 달관한 듯한 만족스러운 표정이시다. 나는 어머니의 저 표정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내가 이 말을 하면 상대방이 반드시 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에 찬, 그러면서도 안 들어 주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그런 표정이시다. 2년전 내가 건축사 하는 친구를 불러서 이런 논의를 진짜 한 적이 있다. 부엌이 낮아서 허리가 불편하신데, 조립식을 만들어 편하게 모시려고 했던 것이지만, 차일피일로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물난리, 바람 난리가 두 번이나 났다. 어머니는 이 일을 성사시키고자 하시는 것이었다. 조립식 건물의 건축 목적을 에둘러서 나를 위한 것이라고 하신다.

“예, 알았습니다. 형하고 상의를 해볼께요”하고 잠을 잤다.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서 어머니의 그 아름답고 순수한 표정이 계속 떠오른다.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시는 표정은 처음 보았다. 마치 작지만 편리한 조립식 건물이 눈앞에 있는 듯한 표정이셨다. 어머니가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나는 이미 내심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이 결정된 상태이다. 이번 추석에 5남매들이 모였을 때 내가 가장 많이 기부를 할 테니까 작은 조립식 건물을 짓자고 할 참이다. 높게 그리고 튼튼하게 지어서 태풍이 와서 비가 많이 와도 걱정이 되지 않도록 할 생각이다. 어머니의 미소는 나를 설득하기 위한 방책인지 모른다. 보통 9시경이면 주무시는데, 나를 기다리고 계셨는지 모른다. 나를 설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낳아서 길러주고 60년을 지켜 보아왔으니 누구보다 나의 성격을 잘 아실 것이다. 차분하게 “야야”하고 어머니가 나를 부르실 때에는 무언가 부탁할 일이 있으실 때이다. 결코 윽박지르지 않으신다. 어머니의 나를 설득하는 고차원의 기술이다.

문득 아버지의 나에 대한 설득의 기술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집안의 대소사에서 나의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꼭 할아버지 산소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내가 배를 타다가 휴가를 오거나 서울에 있다가 고향에 가면 반드시 산소를 가니까, 산소에서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셨다. 조부님의 이야기를 잠시 하시고, 남매들 중, 혹은 집안에 이런이런 일이 있는데,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좀 도와주면 좋겠다”. “문중에서 이런 일로 십시일반 기부를 받는데 너가 내 대신 내어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이다. 나는 흔쾌하게 “그러겠습니다”고 답했다. 아버지의 부탁 모두에 대하여 내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것은 아니다.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조부님을 좋아하고, 조부님이 나에게 남긴 “집안을 일으키라”는 유언을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다. 조부님 산소 앞에서 부탁이나 제안을 하면 내가 더 잘 수용한다는 것을 아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산소를 갈 참에는 꼭 따라나섰다. 무언가 부탁이 있으신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런 부탁을 하시면 나는 못 이기는 체하고 들어드렸다. 이것이 아버지의 나에 대한 설득방법이었다. 낳아서 기른 자식이니 속속들이 잘 아신다. 아버지의 단수도 꽤 높으신 편이셨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바닷가라서 언성이 높다. 잘 흥분하고, 격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부탁에 반대를 할 때에도 너무 강도높게 반대를 하여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나도 그런 편이었다. 집에서 이런 저런 제안이나 부탁을 하면 언성이 높아지기 쉽다. 아버지는 이것을 피하는 방법을 아시는 것이었다. 조부님 산소 앞이라면 둘째가 꼼짝을 못한다는 것을….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오히려 아버지가 나타나셔서 조부님 산소에서 다시 한번 나에게 그런 부탁을 하셨으면 좋겠다. 산소를 가자고 나서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또 무슨 부탁할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더 이상 안됩니다.” 하고 슬쩍 아래로는 100만원 권 몇다발을 넣어드리고 싶다. 자식들이나 집안을 직접 돕고 싶었지만 항상 재정적으로 가난했던 아버지였다. 더 이상 자식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되도록 말이다.

아버지의 조상님 산소이용 방법과 어머니의 미소 작전은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설득의 방법이다. 오늘 아버지와 어머니의 설득의 기술이 정리가 되었다. 이런 가정사에서 체득한 설득의 방법을 나의 가족 간이나 사회생활에도 충분히 활용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자 기차는 이미 서울역에 도착하고 있었다.



김인현 프로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법과대) 교수, 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수필집 《바다와 나》, 《선장 교수의 고향 사랑》, 「동아일보」에 김인현의 바다, 배 그리고 별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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