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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올빼미, 다시 날다 / 노정옥

부흐고비 2021. 11. 16. 09:07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들풀 무성한 황룡사 공터에 장대비가 아프게 내리꽂힌다. 터줏대감인 양 둔중한 몸을 펼친 바윗돌이 비를 맞고 누웠다. 부동의 저 돌들도 한때는 우람한 사원의 뼈와 살이었을 텐데…. 일렁이는 풀 바람, 천년의 정기를 들이키며 서둘러 황룡사 역사문화관으로 들어선다.

이층으로 올라가자 어귀 깊숙한 맞은편에 기괴한 물체가 시선을 붙든다. 날개를 펼친 봉황 같기도 하고, 기도하는 등신불 같기도 하다. 하단 안내지에 고딕체로 써진 두 글자, ‘치미(鴟尾)’였다. 새의 꼬리를 뜻하며 궁전이나 사찰의 용마루에 얹는 장식물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전시된 치미는 지난날 몽고군의 습격으로 잿더미가 된 황룡사지에서 1970년대에 출토되었다고 한다. 높이 182㎝, 무게 100㎏에 달하는 동양 최대의 크기다. 치미가 이 정도면 당시 대가람의 규모가 어떠했을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어미 새 앞에 앉은 새끼 새처럼 치미를 뚫어져라 본다. 날갯죽지 옆으로 몸통이 돋고, 다른 쪽 날개가 달리고, 꼬리가 붙고, 머리가 솟더니 마침내 눈을 뜬다. 파편 조각 하나로 완벽한 조형을 복원해 내는 고고학자처럼 치미에서 한 마리 새를 만나는 순간이다. 섬광처럼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이 스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태어나려는 자는… 기존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지금 나의 이 상상력도 참으로 필사적이다.

생명체의 본성은 살아 있는 힘이다. 메뚜기는 톡톡 튀어야 하고 매미는 맴맴 울어야 하며 새는 공중을 훨훨 날아올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긴 세월 전시관 진열대에 꼼짝없이 매인 올빼미의 갑갑함이 오죽할까. 하늘 높이 비상하고픈 제 본성을 거스린 인고의 세월 속에서 망국의 한을 달래느라 몹시도 서러웠으리라.

치미는 기도이다. 상서로운 기운은 집안으로 불러들이고 나쁜 기운은 밖으로 몰아내어 만사형통을 비는 사람들의 꿈이다.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평안하기를 비는 간절함이다.

신라 시대의 치미는 한자어로는 새의 꼬리를 뜻하지만 묘하게도 형상은 봉황의 날개 모양을 하고 있다. 왜일까. 치미의 치(鴟)자가 올빼미를 뜻하니, 봉황은 상서로운 기운을 불러들이고 올빼미는 화를 물리치는 영검한 새라 두 가지 소망을 한꺼번에 충족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으리라.

올빼미는 밤의 왕자로 불린다. 유달리 눈이 크고 매서우며 횃불처럼 밝아서 어둠을 장악한다. 야심한 밤을 틈타 기습해 오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데는 지붕 높은 곳의 보초병인 올빼미만 한 영물도 없을 터. 비 오든 바람 불든 눈발 날리든 어둠 속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밤을 지키는 소명 정신이야말로 속칭 찐 장군감이 아닐 수 없다.

어릴 적, 우리 집에도 새 한 마리가 있었다. 다리를 다쳐 푸득거리는 새끼 올빼미를 산길에서 발견한 삼촌이 안고 왔다. 낮이면 가로지른 막대에 올라앉아 오도카니 졸다가도, 밤만 되면 매끈매끈 윤기 나는 방울눈에 불을 켠다. 한밤중 우르르 쥐들이 천장에서 떼 지어 다니며 소란을 떠는 날이면, 부 부 부 새된 소리로 쥐를 쫓으려 안달이었다. 노천명의 시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중에는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라는 구절이 나온다. 한낱 미물일지라도 함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부엉이로 하여 시인이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던 것처럼, 어린 내게는 올빼미가 있어 생쥐가 쿵쾅거리는 야밤이 무섭지 않았다. 어느 날 야속하게도 짙푸른 하늘 속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지만.

치미에 깃든 염원은 사찰이나 궁궐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먼 바닷길로 떠난 지아비를 위해 날마다 따뜻한 밥을 지어 아랫목에 묻어두던 이불 속에도, 화덕 앞에서 지극정성 첩약을 달이던 옛 아낙의 부채질에도 있었다. 요즘에는 새벽마다 절로, 교회로 달음질쳐 자식 위해 엎드리는 어머니들의 무릎에도 있다. 이 모두가 우리 곁을 소리 없이 지켜준 치미가 아닐까.
더 크게는 나라와 민족을 구하고자 한 목숨 기꺼이 던지고 치미처럼 살다 간 인물도 있다. 78년 만에 대한의 품으로 돌아온 만주 봉오동 전투의 선봉장, 독립투사 홍범도 장군. 그의 유해가 봉안되던 날, 나는 온라인 추모 공간에서 장군을 만났다. 기골이 장대한 생전의 초상화에는 그 눈매가 선하기만 한데, 일본군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만큼은 매서운 올빼미의 눈빛으로 번득였으리라. 나라 빼앗긴 한을 품고 일신의 부귀도, 가족의 안녕도 마다하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한 몸을 불태웠던 장군의 오롯한 나라 사랑의 정신이야말로 치미 중의 치미라 해도 과하지 않으리라.

치미에 담긴 조상들의 염원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그 답을 나는 올빼미의 새까만 방울눈을 닮은 CCTV에서 찾는다. 후미진 뒷골목이나 신호등 위에, 건물의 엘리베이터 안에, 아파트 단지에 높이 달린 CCTV, 이것이 곧 치미의 화신이다. 차량 사고가 일어난 도로에서는 블랙박스 영상 하나면 시비가 해결되고, 흑백을 가려야 하는 운동경기에서도 영상 비디오를 판독하면 의심이 말끔히 걷힌다. 게다가 범죄 예방과 주민 보호는 기본이다. 만능 해결사인 이 안전장치에서 치미의 얼과 마주한다.

심리학자 칼 융은 집단 무의식이 생성되면 유전된다고 했다. 우리 민족도 이것이 꽤나 선명하다. 후손을 향한 마음이, 집안을 지키고자 하는 일념이, 자식을 위한 모정이,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애국심이, 세대와 세대를 잇고 가슴 가슴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이 특유의 정신이 치미를 CCTV로 발전시켰고, 외연의 확장은 마침내 전 세계에서 IT 강국으로 우뚝 서게 했다.

경주는 신라의 성도이다. 곳곳에 천년 유적이 즐비하다. 폐허에서 찾아낸 유물 하나하나는 단순한 기왓장이나 돌덩이가 아니라 신라의 정신이고 얼이다. 경주를 지키는 토함산이 왕산(王山)이라면, 광활한 황룡사 터를 바라보는 치미는 언젠가 천년의 침묵을 깨고 날아오를 왕조(王鳥)라 한들 어떨까.

해 질 녘, 문화관 앞마당에 비가 그쳤다. 감전된 듯 저린 마음을 안고 황룡사 옛터를 걷는다. 멈칫 심초석 앞에 서서 등을 돌려 바라다본다. 문화관 용마루 높이 올빼미 한 마리 의젓이 앉았다. 당장이라도 깃을 치세우고 토함산으로 비상할 기세다.

날으렴. 날으렴. 다시 한번 힘차게 날아오르렴.

수상소감

입선 소식이 날아온 날, 나는 알 수 없는 병 중에 있었다. 주변에서 혼령이 붙었다고 한마디씩 보탰다. 친척 장례식에서 갑자기 혼절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 차라리 그럴 량이면 글 신이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혼자 읊조렸다. 드는 생각도 잠시, 다시 생각이 정제되면서 많이 자랐나 보다 여겼다. 처음에는 한 줄 쓰기 앞에서 얼어붙었고, 첫 수상을 했을 때는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뻐했던 내가 아닌가. 잠시 든 아쉬움은 뒤로 하고 감사함으로 돌아섰다. 나는 안다. 정상에 서기보다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서 한 발 한 발 내딛고 비지땀을 흘리는 수고로움이 더 값지고 행복한 순간들이라는 것을. 끈질기게 추구하다 보니 드디어 내가 수필이 돼가고 수필이 내가 돼가는, 이른 바 수아일체(隨我一體)가 되는 듯도 하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한 구절을 되뇌어 본다. ‘당신에게 글이 없었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제10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상 △흑구문학상 수필부문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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