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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10여 년 만에 울진 천축산 불영사를 찾았다. 일주문을 지나 길은 108개 연꽃이 새겨진 불영교를 건너 원시림이 울창한 숲으로 접어든다. 길게 이어지는 흙길 따라 있는 오밀조밀한 경관이 눈맛을 선사한다. 옥상상제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삼지구엽초가 자랐다는 신묘한 벼랑이 눈앞에 펼쳐진다. 기암괴석과 우거진 소나무 숲, 뫼비우스 띠처럼 펼쳐지는 맑은 불영천 물길이 우렁우렁 흐르며 감정회로를 자극한다.

이곳의 원시자연에는 불심이 들어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의 절경에 불심이 느껴지지 않으면 이상하다. 억겁의 시간에 걸쳐 빚어낸 대자연의 빼어난 솜씨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지 싶다.

불영사에 다와 가자 숲이 우거진 명상의 길이 구부정하게 이어진다. 바람소리에 심취해 걷는 길가의 공들여 쌓은 돌탑에서 불심이 인다. 끝을 볼 수가 없는 나무들이 줄지어 반긴다. 줄잡아 높이가 20~30m 되는 아름드리 금강송이 참선에 들어 있다. 의상대사가 심은 굴참나무가 천 년을 살다가 한 줌 흙으로 변해 터만 남겼다.

산사에 도착하니 은은한 목탁 소리가 들린다. 상큼한 산 공기가 코끝에 오열하고 고요하다 못해 엄숙한 불영사에 염불소리가 들린다. 가슴을 울리는 불경 독송 소리 근원이 어딘가 싶어 발걸음을 옮긴다. 곁을 지나가는 민둥머리 비구니 승복에 따가운 햇살이 재잘거린다. 수도로 단련된 해맑은 비구니 얼굴에 부처의 모습이 투영된다.

산 능선에 우뚝 솟은 부처바위가 보이고 그림자가 연못에 비친다. 두 손을 모아 엄숙히 합장하는 부처바위가 신령해 불심을 일으킨다. 살을 에는 따가운 태양의 은총을 한 몸에 받아 눈이 부시게 영롱하다.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1330년 전 이곳에서 본 그 부처님 환영을 내가 보고 있다. 의상은 부처님의 영감을 받아 절을 창건한 뒤, 산세가 서역의 천축산을 닮아 ‘천축산 불영사’라 했다. 불심이 약한 나는 그 신령한 부처님 환영에 그저 두 손을 모아 비손만 하고 있을 뿐이다.

부처도 폭염에 물이 그리운 것일까. 연못 위에 그림자를 거꾸로 내려 더위를 쫓고 있다. 그래서 부처는 연못에 있고 산 능선에도 있다. 아리연이 경계를 지워 진짜 부처가 어느 쪽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바람결이 연못에 가녀린 물이랑을 일렁이면 부처의 환영도 움직인다. 살아 있는 부처가 되어 역동적이고 더 신령하다. 일렁이는 물이랑을 타고 마법 같은 불심이 살아나 내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산 능선에는 부처바위와 함께 비구니의 수행도량 불영사를 에워싼 기묘한 바위들이 성이 되고 군사가 되어 호위하고 있다. 바위와 나무 사이로 비치는 눈부신 역광은 부처가 보내준 은총이지 싶다.

연못 옆에는 고즈넉한 법영루가 고색창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팔각지붕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이 영검한 절을 풍미한다. 부처님 그림자를 담은 연못을 품고 있어 법영루는 영검이 풍만하다. 만물의 생명에게 부처의 뜻을 전하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눈에 뜨인다. 범종의 소리로 뭇 생명체에게 깨달음을 얻게 하며, 법고는 울림의 소리로 뭇 짐승들에게 불심을 전해 준다. 목어는 연못에 사는 생명체들에게, 운판은 새들에게 업보를 벗어나게 부처의 뜻을 전한다. 연못 위에 그림자를 내린 법영루도 물이랑과 겹쳐 풍경이 걸출하다. 연못에 몸을 낮춰 납작 엎드려 있는 어리연의 옹알이에 불심이 인다. 오니에도 물들지 않고 고결함을 잊지 않는 어리연이 부처를 감싼다. 아리연이 연못의 물을 청결하게 했고, 연꽃의 향기로 가득 채웠다.

법영루와 연못은 더는 마음 둘 곳이 없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삶의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부처의 깨달음을 전하는 성지처럼 보인다. 이곳을 찾는 불자들의 갈증을 풀어 주는 곳이다. 가슴이 답답할 때 찾아와 부처님 그림자를 바라보면 마법처럼 안정을 찾는 성지가 된다. 그들의 축 늘어진 양어깨를 부처님의 자애한 손길로 감싸 안아 준다.

불영지에 인접해 있는 응진전의 고색창연한 건축미가 운치를 준다. 불영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담한 절집인 응진전은 보물 제730호다.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로 순전히 금강송으로 지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자연석으로 허튼층쌓기를 해 경이하다.

전해오는 숙종의 왕비인 인현왕후의 자결을 막은 설화를 듣는다. 숙종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장희빈이 아들을 생산하자 권력 다툼에서 이긴 남인의 농간으로 폐위되고 궁궐에서 쫓겨난다. 200년 전에 불영사에 머물렀던 양성 법사가 꿈에 나타나 굴욕을 못 이겨 극약으로 자결하려는 왕비에게 3일을 더 기다리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 회유한다. 자결을 미룬 3일 후 왕비로 복귀했고 그 은혜로 숙종은 절 주변 10리 땅을 시주했다는 설화다. 지금도 사찰 소유 땅이 많은 사연이 풀렸다.

대웅보전까지 마당이 이어진다. 세 번이나 불이 난 절. 불기운을 눌러 주는 거북 두 쌍이 머리만 내밀고 절을 지고 연못으로 기어갈 법하다. 내부 귀공포 단청은 퇴색되었지만 여전히 수려하다. 칠보로 장식한 불의를 입힌 세 불상은 경내에 서 있던 600년 된 은행나무 둥치를 4년간 물에 담그고 말려 만들었다. 법당 벽에 석가의 설법을 묘사한 4m 불화는 채색이 정교하다. 그 옆에 지극 기도로 남편을 살려낸 여인이 법화경 7권을 금 글씨로 베껴 은혜에 봉납한 환생전이 경이하다.

다시 연못으로 돌아가니 부처의 그림자가 따라온다. 산 능선에는 저녁노을이 물들어 장관이다. 부처바위에도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그 부처의 환영이 연못에 비춰져 아리연꽃의 호위를 받고 있다.



수상소감

안태고향 울진 불영계곡에 있는 ‘불영사’를 널리 알리고 싶었다. 중학교가 인근에 있어 정신적 안식처요, 추억의 소풍지였던 그곳을 수필로 묘사하고 싶기도 했다. 그 추억이 강렬해 10년 만에 불영사를 찾아 감회에 젖었다. 천 년 전 동해안을 경유해 이곳에 당도해 부처의 환영을 발견했던 의상대사가 돼 날선 소회를 수필로 피력했다. 천년 비구니 참선수행도량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사찰이 묵직한 사유를 자극했다. 그래서 코로나19로 상실된 정서를 치유해준 범접할 수 없는 승경을 수필로 표현을 했다. 그런 다음 영험한 불심이 글쓰기 본능을 자극해 전국수필대전 응모로까지 이어졌다. 시대와 더불어 새로운 수행문화를 만드는 천년고찰 불영사가 앞장서서 퇴고를 종용했다. 깨달음을 주는 부처님 그림자처럼 감동과 지성 있는 필력을 펼칠 각오다. 날선 인식과 형상화 훈련으로 그윽한 문향을 낼 때까지 오체투지(五體投地)로 글을 쓸 참이다. 정진의 기회로 수상을 안겨주신 대구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힘찬 폭포가 되게 도반이 돼주신 문학단체와 문우들에게 수상소식을 전해 기쁘다.
△제9회 목포문학상 수필 본상수상(2017년) △제12회 백교문학상 수필당선(2020년) △에세이문예, 울산사랑문학, 곰솔문학, 울산문인협회, 울산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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