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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혼魂의 노래 / 최운숙

부흐고비 2021. 11. 17. 08:29

2021년 제8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동상

진분홍 꽃 무리가 금방이라도 산언덕을 태울 듯 붉어지면 축제는 시작되었다. 고기잡이 나갔던 배들이 들어오고 뽕할머니 제사 준비도 부산해졌다. 진달래꽃은 돌가자미라는 춤으로 쑥을 만나러 오고, 4월의 바다는 물을 벗기 시작했다.

서망마을 바당곳, 무당이 물에 빠진 넋을 건져 올리고 있다. 징 소리가 요란하게 울어대다 파도에 쓸려 멀어지고 무가 소리는 끊어졌다 이어지며 바닷속에 누운 넋을 달랜다.

‘어 이를 갈거나 어 이를 갈거나/ 이제 가면 못 오는 길 어서 바삐 가지 말고/ 불쌍하신 망자님 세 왕가고 극락 갈 제/ 천궁 없이 어이가리/ 잘 가시오’. 당골은 건져온 넋의 극락 천도를 기원한다. 낮은 대금 소리는 날카로운 피리 소리에 묻히고 가냘픈 해금 소리는 거친 아쟁 소리에 묻혔지만, 구슬픈 송가는 바다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죽음을 맞이한 초상집에서 행해지는 절제 되면서도 단아한 무녀의 춤사위와 슬프고도 아름다운 소리는 마을 사람들을 슬픔과 축제의 장으로 하나가 되게 했다. 굿은 저녁에 시작하여 새벽 동트기 전에야 끝났다.

상갓집 마당에서 밤을 새워 굿을 하고 출상出喪 할 때는 상여 앞에서 만가를 부르던 그곳에서의 실질적인 사제였던 당골, 지금은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굿이 끝나고 상여가 나가면 사람들은 주막에 앉아 술을 돌리고 소리를 돌리고 춤을 돌렸다. 그것은 그들만의 이별 방식이었다. 다음날이면 훌훌 털고 또 하루를 시작했다.

어릴 때 엄마 치마폭에 숨어서 보던 굿이 생각난다. 당골이 주문을 외자 대나무를 잡은 숙모의 손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점 커져 몸 전체로 옮겨가 넋 나간 사람처럼 굿판을 휘저었다. 쌀을 담은 놋그릇이 팽개쳐지고 숙모는 멍석 위에 흩어진 쌀이 되어 사방을 돌며 고함을 질렀다. 대잡이를 한 숙모의 몸에 객사한 숙부의 넋이 닿았는지 숙모 입에서 숙부의 고함소리가 났다. 악다구니를 퍼부어 대는가 싶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던 모습에 몸서리쳤었다.

굿이 끝난 후 숙모는 한동안 몸살을 앓았는데 숙부의 한이 풀려서인지, 풀리지 않아서인지 알 수 없다. 숙부의 한은 무엇이었을까. 자식을 낳지 못한 가장의 회한이었을까. 숙부가 했던 말과 사랑은 어디로 갔을까, 이승에 남은 사람의 기억을 지나 숙부의 세계로 따라갔을까.

섬사람에게 굿은 곧 생활이었다. 척박한 땅과 바람의 터에서 살아 내려면 조상의 덕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들에게는 탄생의 의식보다는 죽음의 의식이 더 중요하며 화려했다. 그것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향한 첫 출발이라 생각했다. 사람은 형체가 다하면 다른 것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다 비운 마음으로 떠나길 바라며 무당의 기도를 빌린 것이다. 당골은 굿을 통해 죽은 자의 혼을 노래로 위로하고 있었다.

바다도 사람처럼 굴곡이 있는지 물속에 들어온 몸을 꼭꼭 숨겨놓고 내놓지 않을 때 가 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몸을 열어 바닷속 백성을 내놓기도 한다.

회동마을과 모도 사이에는 홍해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밀물과 썰물의 차가 가장 심한 시간, 안의 나와 밖의 내가 가장 치열해질 때 바다는 몸을 연다. 육지가 되어버린 섬과 섬이 되어버린 사람이 같은 길 위에 있다. 사람들은 이 길을 모세의 기적이라 말한다. 모세가 이끌던 수만 명 정도의 히브리인들도 쉽게 지나갈 수 있는 두 시간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저마다 보물 하나씩 담아 나온다. 사람과 바다의 재회가 끝나면 길은 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바다는 깊어지고 등 푸른 물고기를 꿈꾼다. 이곳에서의 굿은 바닷가 사람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한다. 풍악 소리는 당골의 소리를 따라 먼바다를 향해 멀리멀리 퍼져간다.

그 굿판이 그립다. 나는 굿판의 노래인 무가舞歌가 좋다. 세습 무당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내가 굿이 좋은 건 무엇 때문일까. 어쩌면 어머니의 마지막을 씻겨주지 못한 미안함이 마음속 출구 없는 방에 갇혀 있어 정신의 문신으로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휴대전화에 날아든 음악에 기댄다. 바닥에 닿을 듯 낮았다가, 숨이 멎듯 길게 끌어가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징과 한을 끌어올리는 아쟁의 소리는 저승의 문을 여는 주문처럼 들린다. 가슴 저 밑바닥에 도사린 아픔을 훑어내는 소리 같다. 내 몸속 어두운 길의 일부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깊고 매운 소리다. 내가 이 위험한 만가輓歌에 젖는 것은 아직 섬을 담아두고 있음으로 섬은 나의 일부이며 죽음 또한 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수상소감

어제보다 이른 시간, 사무실 문을 활짝 열었다. 밤새 갇혀있던 무거운 공기가 밖을 향해 달려 나가고 떠난 자리는 찬 기운의 공기로 채워졌다. 공기의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사무실 안은 차가워지고 산뜻해졌다. 우려 놓은 녹차 한잔이 뜨거운 채로 소란스럽다. 안의 공기는 다시 뜨거워졌다. 혼을 불러오는 일처럼 내 안도 뜨거워졌다. 첫 공모전의 동상 선정이라는 글자는 무당이 작두를 타듯 뜨거움을 일으켜 나를 칼날에 춤추게 했다. 더 좋은 글을 쓰라는 당부로 알고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겠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수필과비평 등단(2018),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무심수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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