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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부처님 오신 날 / 남명모

부흐고비 2021. 11. 22. 09:17

대구 지방의 한 대학에 내려간 지 4개월쯤 지났을 때다. 석가탄신 휴일에 내가 소속된 서무과 직원들과 팔공산으로 등산을 갔다. 산등성 초입의 ‘갓바위 부처님’ 앞에는 온갖 소원을 품고 모여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바위 앞에 실눈을 지그시 뜨고, 넓적한 돌 하나를 이고 계시는 부처님의 공식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갓바위 부처님으로 통했다.

영험하다는 소문이 얼마나 났던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공양미 한 짐씩을 이고 지고 찾아온다고들 했다. 시주하는 쌀의 양이 너무 많아 특별한 시설도 마련해두었다고 들었다. 불전함 옆 홈통에 쌀을 부으면 20m 정도의 관을 타고 산 아래 있는 창고로 바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부처님의 명성을 대변하고도 남았다. 보일 듯 말 듯 미소 짓는 부처님의 모습에서 불자가 아닌 나로서도 편안함을 느꼈다.

길게 늘어선 줄의 앞사람부터 절을 했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아주머니 차례가 되었다. 행장을 봐도 멀리서 온 티가 났다. 나도 관심이 동해 절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두는 움직임에서부터 여간 공을 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뒤에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은 안중에 없는지 아주아주 천천히 두 손을 모아 합장하여 절하고 손바닥을 뒤집었다. 동작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는 모습은 신심이 뚝뚝 흐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삼배까지 하는 것을 다 본 후에야 황급히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 일행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동료들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었다. 토박이 녀석들이 서울에서 내려온 신출내기 과장을 물렁하게 여기는 걸까. 괘씸한 생각도 들었다. 설마 나 혼자 두고 갔을까. 조금 더 기다려 볼까. 그러는 동안 시간만 지체되고 뾰족한 수는 없었다. 부처님의 미소를 떠올리며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그럴 때 가장 요긴한 것은 비상식량이다. 배낭 속을 뒤져보니 배급받은 일회용 도시락과 물 한 병, 그리고 사과 한 개가 나왔다. 이만하면 큰 탈도 아닌듯했다. 혼자 산행 나왔다 치고 여차하면 도시락이나 비우고 내려가면 그뿐 아니겠는가.

산에서 만나면 누구나 벗이 된다고들 했겠다. 같은 방향의 무리에 섞여 점심도 같이 먹고, 사과 쪽도 나누어 먹으며 등산로를 따라갔다. 셀 수 없도록 갈림길이 나왔지만, 고민할 것 없이 사람들이 많이 가는 데로 방향을 잡아갔다. 그럭저럭 가다 보니 제법 큰 사찰에 당도했다. 초파일답게 연등이 하늘을 덮고 있었고, 웅성대는 인파 사이로 불경 소리, 목탁 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정문 누각 위에는‘팔공산 은해사(八公山 銀海寺)’라는 현판이 보였다.

그때 절마당 한쪽에 낯익은 한 무리가 보였다. 우리 일행이었다. 여러 갈래의 산길에서 이리저리 엇갈렸을 텐데, 다시 만난 것만도 요행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지만, 한편으론 서운하기도 했다. 여직원 하나가 “우리가 과장님을 얼마나 찾았는지 몰라요” 했다. 좀 멋쩍긴 하지만 이런 일로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았다. 그냥 허허 웃어버리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는데, 촐랑대기 좋아하는 미쓰 윤이 기어코 사고를 쳤다.

“김 주임님이 과장님 욕 엄청 했어예.”

서무주임이 작심하고 내 흉을 본 모양이다. 미쓰윤의 돌직구에 김 주임도 민망한 듯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내가 더 당혹스러웠다. 외부에서 낙하산 타고 온 사람이라고 나를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속은 좋을 리 없었지만,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걸 어쩌겠는가. 나랏님도 없는 곳에선 욕할 수 있고, 상사 흉보는 재미도 알고 있던 터라 그냥 넘어가고 싶었다.

미쓰 윤은 참 묘한 아가씨다. 학장님이 지난해 고향 갔을 때, 농사짓는 옛 친구가 딸년 하나 취직시켜 달라면서 떠넘기듯 맡겼단다. 마침 비서실이 비어있어서 당분간 심부름이나 시키려고 데려왔다고 한다. 들판에서 새참이나 나르던 처녀라 은근히 걱정되었는데 막상 일을 시켜보니, 문서도 제법 만들고, 말도 고분고분 잘 들어, 임시직으로 발령을 냈다고 했다. 하지만 가끔 철딱서니 없는 짓을 해서 학장님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는 말을 들어온 터였다.

그녀가 또 한 방을 날려 분위기를 흔들어 놓고 말았으니. 스트레스 풀러 왔다가 안고 가는 꼴이 되게 생겼다. 과장 체면에 분위기를 수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쓰 윤! 그새를 못 참고 또 고자질…”

하는 순간에 그녀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말재주 없는 내가 수습은커녕 더 꼬이게 만든다 싶어 무슨 말로 빠져나가야 할지 난감해서 한마디 더 물었다.

“그 자리에 내 편은 하나도 없었나?”

“어데예, 주임님 빼고 우리 모두 과장님 편이었어예.”

그제야 미쓰 윤이 배시시 웃으며 신나게 조잘댔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 한 마디가 내겐 구세주와 같은 돌파구가 되었다.

“그럼 됐다! 내 편이 이렇게 많은 날은 내 흉 좀 봐도 괜찮아.”

나약한 중생들은 그렇게 해서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났고, 시끌벅적하게 등산은 계속되었다. 이럴 땐 갓바위 부처님도 허허 웃으시겠지.

부처님 오신 날이면, 김 주임도 미쓰 윤도 그리워진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며 늙어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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