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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문경 새재를 걸으며 / 윤재열

by 부흐고비 2021. 11. 24.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문경 새재를 걷는다. 이 길은 한양과 영남을 잇는 고갯길이다. 영남 사람들은 지역에 따라 추풍령과 죽령을 넘으면 쉬운데, 문경 새재만 고집했다고 한다. 추풍령과 죽령은 이름에서 풍기는 속설이 안 좋아서 그렇단다. 문경은 이름에 ‘경사를 전해 듣는다’는 의미가 있으니, 은근한 기대감을 품고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 꼭 그런 이유만일까. 멀리 있는 산들의 표정이 다양하다. 강직한 선비처럼 의연하게 앉아 있다. 산맥을 따라 흘러내린 큰 산들은 다시 작은 산을 키우고 이렇게 만들어진 능선 아래 아늑하게 길을 만들었다. 힘든 과거 길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온통 아름다운 산세와 맑은 풍경이다. 이런 풍경에 마음은 넉넉해지고 발길이 가벼워 이 길을 찾았던 것은 아닐까.

제1관문인 주흘관부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산 밑동을 따라 펼쳐진 성곽이 멀리서 온 길손을 기다리듯 서 있다. 성곽의 둘레가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겠지만, 내 눈에는 길에 드는 나그네들을 아늑하게 안으려는 듯 팔을 펼친 것처럼 보인다. 관문을 지나자마자 백두대간의 주흘산과 조령산 정상을 느릿하게 흘러내린 능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놓여 있다.

성벽 관문을 지나 길을 걷는다. 길 옆에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과 암반들이 솟아있다.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바위가 몇 억 년의 나이를 먹었다고 기록돼 있다. 엄청난 나이에 비해 바위가 얌전하다. 풀 한 포기 클 수 없을 듯한 바위 위에 나무들이 삶을 열어가고 있다. 한 줌도 안 되는 흙무더기에 위태롭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의 풍경은 숙연함이 든다. 나무들이 바위 위에서 오히려 온화하고 유순하게 크고 있다. 삶의 풍파에 흔들리던 나그네도 바위 위에 나무를 보면서 애틋한 마음을 다독였을 것이다.

조곡폭포의 맑은 물줄기가 마음을 적신다. 설레는 몸짓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작은 계곡 길을 따라 흐른다. 흐르는 물은 돌을 쓰다듬고 간다. 선비들은 글을 읽는 동안 가족을 돌보지 못했다. 이제 가장이 한양으로 떠났으니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울 때가 오겠지. 선비들은 남은 가족이 애틋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물은 선비의 마음을 헤아려 흐르고 흘러서 마을의 논밭을 기름지게 한다.

길을 걷다 보니 나그네 숙소였다는 원터가 보인다. 신구 경상도 관찰사가 관인을 주고받았다는 교귀정터도 있다. 옛날 흔적은 있지만, 이 길을 걷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선비들은 이 길을 지날 때 어땠을까. 고향을 떠나 천리만리 길을 힘차게 갔다. 급제해서 몰락하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소망을 담고 걸음을 재촉했다. 난세를 평정하고, 국가의 안위를 지키고자 하는 호연지기를 품고 갔다. 입신 출세의 욕망을 담은 세속적인 선비도 발걸음은 당당하게 내디뎠다. 하지만 이 길에는 늘 무거운 마음이 따라가기도 한다. 이번에도 낙방하면 조상을 어떻게 봬야 하나. 처자식을 보살펴야 하는데 밥벌이가 없으니 걱정이 앞선다.

새재 3관문인 조령관에 이르니 땀이 차고 몸이 지친다.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갯길이라고 하지 않았나. 고갯길에 걸터앉으니 고요가 밀려온다. 눈앞에 울창한 숲이 온통 마음을 휘어 잡는다. 정갈한 흙 길을 다정다감하게 걷는 연인이 많다. 고즈넉한 성곽에 돌덩이가 보인다. 모양도 제각각이다. 어느 것은 둥그스름한데 네모난 돌과 어울려 성벽을 이뤘다. 저희끼리 의지하며 수백 년을 버텨온 세월이 보인다. 숲에 똑바로 자란 나무들도 기품이 남다르다. 모두 허리를 올곧게 펴고 의연하게 서 있는 모습에 경외감이 느껴진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도 자연경관이 빼어난 이곳에서 잠시 땀을 닦았으리라. 체력적으로도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도 부담이 많다. 내 한 몸의 문제가 아니라, 가문을 위해 관직에 나아가야 하는 부담도 무거웠다. 더위도 추위도 참으면서, 높은 봉우리를 지나 험한 돌길을 걸었더니 심신이 지친다. 석양을 만나면 처마 밑으로 드는 새를 보며 잠자리를 찾아야 한다.

선비들은 객사에서 짧은 하룻밤을 보낸다. 한 잔 술로 여독을 풀고, 그리운 눈매로 창밖 달을 본다.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욕망일까. 청청한 자연은 길손들의 심신 수련의 도량이다. 길을 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배움에 몰입한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백성들의 삶을 보면서 위정자에 대한 꿈을 키운다. 굶주리고 지쳐 있는 백성들의 촌가를 뒤로하고 한양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과거 급제는 욕망이 아니라, 풀뿌리처럼 사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함이다. 발이 부르트고 숨이 차올라도 이 소망이 힘이 되어 어깨를 펴고 걸을 수 있다.

조령관을 뒤로하고 고개를 내려온다. 걷는 것이 힘들지만, 온몸을 적시는 나무들이 들어와 정신을 맑게 한다. 무수히 흔들었던 일상의 파고와 함께 걷는다. 걸으면 걸을수록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로움이 인다. 내면이 열린다.

요즘 마음속이 복잡하다. 평생 학교에서 근무하고 세상에 나왔다. 세상에 나왔지만 길을 잃은 것처럼 암담했다. 오늘 길을 걸으면서 너무 서둘렀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길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는 출발점이다. 퇴직이라는 낱말의 실체가 끝처럼 느껴진다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선비들이 합격의 마음으로 힘든 길을 걸었던 것처럼, 남은 인생을 위해 묵묵히 걸어가야겠다. 다시 내면에서 성장 씨앗이 발아된다. 바람에 흔들리다 다시 우뚝하게 서 있는 나무가 즐비하다.

수상소감

수필은 일상적 체험에서 시작한다. 일상은 평범해서 새로움이 없다. 그런 탓에 수필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 많다. 문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는 은유적 상상력으로 장식한다. 소설도 허구라는 옷을 입는다. 시나 소설이 진실과 멀리 있다는 느낌이다. 수필은 진실을 걷는 문학이다. 평생 수필의 숲을 거니는 이유다. 문학의 본질은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하는 것인데, 내 경우는 반대다. 낯선 것을 낯익게 한다. 이것이 삶의 영역을 확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글쓰기의 좋은 디딤돌이다. 낯선 풍경 속에서 낯익은 삶을 읽는다. 수필을 쓰는 것은 구체적인 일상을 관념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정신적으로 힘들지만, 육체적으로도 힘든 노동이다. 그런데도 글쓰기를 놓지 않는 이유는 성찰과 의미 있는 삶을 다듬기 때문이다. 스스로 꽃이 되고, 존엄한 순간을 경험한다. 수식이 없는 깔끔한 문장으로 쓰는 것도 재밌다. 문장력으로 읽는 사람을 끌어당기고 싶다. 축제에 초대받고 싶어 손을 내밀었는데, 말석이라도 앉을 수 있어 기쁘다. 글을 쓰면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고마운 마음 때문인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더욱 파랗게 다가온다.
△월간 수필 문학으로 등단(1996년) △수원문학 작품상, 백봉문학상 △수필집 ‘나무는 추위에 떨지 않는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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