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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무름 / 박노욱

부흐고비 2021. 11. 30. 08:56

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나는 잠이 많은 편이다. 집안 내력이고 어머니가 으뜸이었다. 손자를 등에 업고 재우다 방바닥에 엎드려 손자보다 먼저 잠든 어머니 모습은 자주 보는 광경이었다. 팔순에 접어든 누님도 잠이 많아졌다고 하소연한다. 가히 잠보집안이다.

닮은꼴이 있다. 농장 구석에 두 평쯤 연못을 만들고 미꾸라지를 넣었는데 온데간데없다. 미꾸라지가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타고 다닌다는 옛말이 사실이었던가. 대신 개구리천국이 되어있다. 비단개구리인데 이 녀석들이 잠이 많다.

연못바닥에 까맣게 깔려있던 알집이 도롱뇽인 줄 알았는데 비단개구리였다. 덩치가 큰 참개구리는 다 자라면 인근 풀숲이나 제법 먼 거리로 행동반경을 넓히지만 비단개구리는 그렇지 않다. 밤낮으로 연못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참개구리처럼 밤새울지 않는 건 다행이다.

비단개구리는 떠들고 노는 것보다 잠자는 시간이 더 많다. 이른 아침 연못 가장자리에 턱을 걸치고 있는 무리는 대부분 수면 상태다. 아침잠이 적은 참개구리가 텀벙대며 이들을 깨운다. 작고 날렵한 몸매를 하고도 참개구리보다 굼뜨다. 해가 중천에 걸린 대낮에도 수면 위에 큰대자로 널브러져 있는데 자세가 좀 이상하다. 콧구멍이 달린 머리는 물 밖으로 나와 있다. 앞다리 두 개는 수면과 수평으로 떠 있고 뒷다리는 물풀처럼 가라앉아있다. 헤엄치는 모습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눈까풀주름이 눈을 덮고 있다.

중고등학교 때 기차통학을 했다. 새벽밥을 먹고 십여 리나 되는 역으로 달린다. 어머니는 더 이른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 그날도 화들짝 밥을 먹고 숨이 차도록 달리는 중이다. 아까 무름을 먹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촉과 맛이 떠오른다. 고추나 가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밀가루에 반죽하여 밥솥에 쪄서 간장에 찍거나 살짝 버무려 먹는 반찬이 무름이다. 몇 차례 경험으로 어슴푸레 느낌이 오지만 달음박질하는 터라 대부분 금방 까먹는다. 오늘따라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답이 나왔다. 고기 맛이 돌았고 씹힌 것은 분명 뼈였다. 고기가 왜 거기서 나왔을까.

전기가 없을 때였다. 어머니는 깜깜한 새벽에 뒤뜰 우물물로 아침을 지었다. 면서기를 하던 이웃 집안아저씨 우물은 깊었는데 우리 집은 그렇지 못했다. 비라도 내리면 우물가에 앉아 바가지로 물을 뜰 정도로 턱이 낮다보니 개구리가 많이 찾아들었다. 뭍보다 물을 좋아하는 비단개구리들이다.

어머니는 잠자기 전에 반찬거리를 준비했다. 풋고추는 통으로, 가지는 보드라운 것으로 골라 새끼손가락 크기로 자른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소쿠리에 담아 우물가에 둔다. 새벽에 물을 길어 한 번 헹구고 부뚜막으로 옮겨 밀가루에 버무리는데 이때 비단개구리가 함께 들어간다. 간밤에 녀석이 제 발로 소쿠리에 찾아들었거나, 잠이 덜 깬 상태로 두레박에 실려올라온 것이다.

잘 때는 업고가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바가지에 담겨 엎치락뒤치락 밀가루 범벅을 당하는 와중에도 눈만 껌벅거린다. 진득한 밀가루를 온통 뒤집어쓰니 눈까풀이 더 무거워진다. 삼베에 얹혀 밥솥으로 들어가면 포근한 게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아궁이에 불이 지펴진다.

한 입에 딱 맞다. 고추나 가지토막과 덩치뿐 아니라 생김새도 비슷하다. 연못에서 큰대자로 늘어지게 놀다가도 무름이 될 때는 몸통을 사이에 두고 앞 뒷다리를 일자로 뻗는다. 거기다 희미한 호롱불 아래 허겁지겁 먹다보니 개구리를 골라내기는 불가능하다.

아직도 개구리 무름이 궁금하다. 어머니 생전에 한 번 물어볼까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의 단백질 보충을 위해 개구리 반찬을 사용할 수도 있었겠다. 어쨌든 나는 몸에 좋다는 개구리반찬을 가끔 먹었다.

상수도가 들어오면서 고향집 우물이 사라졌다. 그래도 샘터인지라 지금도 실핏줄마냥 흐르는 물로 조그마한 둠벙 모습을 하고 있다. 채소밭에 물을 주거나 허드렛물로 쓴다. 샘은 용도가 없어져도 완전히 메꾸지 않는 풍습이 있다.

지난번 벌초 때 비단개구리를 만났다. 그 둠벙에서다. 반세기가 넘도록 우물터에서 대를 이어온 비단개구리를 보니 어머니를 만난 듯 반가웠다. 동생과 조카들을 물리치고 어머니 산소는 내가 예초기를 잡았다. '어머니, 그때 개구리 무름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예초기 소음에 어머니가 듣지 못한 것 같다.

 

 

 

 

 

 

 

[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논픽션 부문 '실버 취준생 분투기' - 이순자

이순자이글은 내가 62세에서 65세까지 겪은 취업 분투기다.퇴근 시간이 가까운 취업창구는 한산했다. 담당자에게 이력서를 내밀자 이력서를 훑던 담당자 입꼬리에 묘한 비틀림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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