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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문과 원문  
고을 수령이 되는 자는 아침에 바뀌고 저녁에 갈려서 자리가 따뜻해질 겨를이 없는데 구실아치들은 젊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변함없이 일을 맡으므로, 마음대로 부려서 늘였다 줄였다 함이 오로지 그들 손에 달려 있으니, 단지 장부를 숨기고 재물을 훔치는데 그치지 않는다. 세속에서 이른바 ‘강물은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爲官者朝更暮遞 席不暇暖 而胥輩從少至老 任事自若 操縱伸縮 專在其手 非止絶簿書盜財物而已 俗謂江流石不轉以此
위관자조경모체 석불가난 이서배종소지로 임사자약 조종신축 전재기수 비지절부서도재물이이 속위강류석부전이차

- 이수광李睟光,1563~1629), 『지봉유설(芝峯類說)』 16권 「잡설(雜說)]」

 

1614년(광해군 6년)에 지봉 이수광(李睟光)이 지은 일종의 백과사전적 저서.

 

  해 설  
강류석부전(江流石不轉), ‘강물은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唐) 나라 두보(杜甫)의 시 「팔진도(八陣圖)」의 셋째 구이다. 제갈량이 군대의 진법을 연습하기 위해 여러 곳에 돌무더기를 쌓아서 팔진도를 만들었는데, 두보가 백제성(白帝城) 아래 강변에 남아있던 팔진도 유적을 보고 제갈량을 회상하며 이 시를 지었다. 이 구절은 조선 시대의 아전들이 자주 애송했다고 하며 신임 사또가 부임할 때 마다 조금 있으면 떠나는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수광은 이 구절을 당시 사회문제가 된 구실아치*들의 문제를 나타내는 말로 『지봉유설』 에 기록하였다. 국왕이 임명하여 보낸 지방관이 지방행정을 장악하지 못하여 아전들 손아귀에 놀아나고, 중앙 부서관원들이 행정을 장악하지 못하여 헤매는 실상을 드러낸 것이다. 군주정이었던 조선왕조에서 주권자인 국왕은 과거로 선발하여 임명한 관료를 통하여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였다. 그러나 세습을 통하여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졌던 아전 세력들은 국왕이 내려 보낸 대리인들에 상관없이 자신들의 영역과 힘을 지킬 수 있었다. 구실아치의 문제도 선발과 세습의 차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생긴 것이다. 반면,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주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실현한다. 민주주의 제도에서는 유권자의 선택이 가능한 영역과 그렇지않은 영역이 긴장 관계를 이루게 되는데 민주주의라면 원칙적으로 유권자의 선택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올해는 대통령을 뽑는 해이다. 대통령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뀔 것 같은데, 지나고 나면 바뀐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IMF 구제금융 이후, 대통령이 누구건 국민소득과 복지 수준은 상승하였고 출생률은 하락하였다. 좋아지는 부분은 계속 좋아지고 나빠지는 부분은 계속 나빠지게 마련이다. 강물은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았던 셈이다. 올해의 선택으로 국민소득은 계속 증가하고, 미래세대에도 희망이 생겨 아이 낳아 기르고 싶은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좋은 돌은 그대로 있고 나쁜 돌은 뽑혀 굴러 나갔으면 좋겠다.

글쓴이 : 남지만(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 구실아치: 조선 시대에, 각 관아의 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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