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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생명의 노래 / 김재희

부흐고비 2022. 1. 30. 08:55

눈길을 확 잡아끄는 그림이었다. 그림에 대한 설명 또한 마음을 끌어당기는 글이었다. 그날부터 신문을 기다렸고 그 연재를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오래되어서 그것이 몇 장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번도 빠짐없이 정성스럽게 스크랩했었던 기억이 아슴푸레하다.

직설적이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추상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적당한 숨김과 나타남이 교차하면서 무언가 깊이 있는 울림이 마음을 파고들었고 다시금 그림에 대한 미련을 불러일으켰다. 차곡차곡 쌓인 스크랩을 어릴 때 갖고 놀던 자잘한 소꿉 도구 같은 보물처럼 아꼈다. 그러다 책으로 묶여 나온 ‘화첩기행’ 소식을 듣고 한걸음으로 서점을 찾았다.

책의 무게가 스크랩 무게보다 묵직해 보였다. 새 소꿉 도구가 생기면 예전 것은 미련 없이 버리던 어린 시절이 버릇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가. 애써 모은 것들을 친구를 주었다. 그런데 왜 그런지 그 스크랩에 대한 향수가 묵직한 책 뒤편에서 어른거렸다. 그제야 그것이 나에게는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책과 맞바꾸려 친구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 스크랩은 그 친구의 손에서 이미 떠나버린 물건이었다. 왜 그리 허망하던지……. 그림에 조예도 깊지 않고 안목도 없는 내가 왜 그 스크랩에 그렇게 미련을 두었는지 모를 일이다.

김병종 화가의 회향전이 있단다. 반가움이 스쳤다. 잊고 있었던 그 스크랩이 다시 생각나고 그때의 설렘이 다시 일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림의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한다. 다만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은 듯한 감정이 그곳으로 발길을 끌었다.

김병종의 ‘생명을 그리다’에 전시된 그림은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동양화이면서도 서양화인 듯한 표현이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 화폭에서 내 어릴 적에 보았던 풍경들이 기어 나오고 가슴에 뭔가 진한 액체가 스며드는 듯한 촉촉한 향수가 느껴졌다.

그림 곳곳에 어린 소년이 등장한다. 그 소년은 왜 옆으로 누워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일까. 때로는 나무숲에서 때로는 물가에서, 바닷속에서 온몸으로 그들과 함께 호흡을 하고 있다. 옆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몸짓에서 외로움이 묻어난다. 어쩌면 저 외로움이 작가에게 예술혼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소년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그 무엇인가가 화가에게 생명을 노래하게 만들었을 것이리라.

생명은 먹물 묻은 붓끝에서 꿈틀대며 태어나고 짙푸른 초록잎 속에 잠자듯 누워있다. 새빨간 꽃잎 속에서 사랑을 노래하고 푸른 바닷속에서 꿈을 향해 질주한다. 그러다 거꾸로 처박히는 처참함으로 나락하기도 한다. 삶이란 그렇듯 양과 음이 함께 엉키는 것 아니던가. 음의 어둠을 알게 되어야 양의 빛남을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이니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예수의 빨간 눈물에서 처절한 절망을 본다. 단 한 방울의 눈물이 내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속울음을 건드려 품어 올린다. 세월의 문턱이 닳고 닳아도 아직 가슴 깊숙한 곳에 한 가닥의 회한이 남아 있었던가. 똑 떨어지는 빨간 눈물과 함께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독소 한 줄기가 가슴을 할퀴며 내려간다. 묵은 감정을 쏟아낸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절망을 그린 그림 앞에서 맑아진 마음을 얻어 간다.

수탉의 날카로운 부리에서 세상을 향한 고함을 듣는다. 저 수탉은 무엇을 저리도 애타게 울부짖는가. 부리 속에서 힘을 세우고 있는 혀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리라. 내게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사는 세상을 향한 절규, 그것은 어쩌면 아무리 각박한 세상일지언정 불의에 타협하지 말라는 외침이지 않을까. 잠시나마 바른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어 본다.

깊고 깊은 산줄기. 그저 단색으로 담백하게 그려진 산이지만 겹겹이 싸인 능선 아래에 무엇인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낀다. 예전에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보았던 풍경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들이리라. 골짜기를 흐르는 물과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 지천으로 깔린 야생화가 피고 지는 소리, 하늘을 온통 가릴 만큼 우람한 나무들과 썩은 나무둥치 밑동에 피어나는 이끼들의 숨소리 등등. 그 수많은 것들을 그려내기란 어려울 것이리라. 그래도 그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 싶은 작가는 넓은 화폭 가득히 겹겹이 싸인 산줄기를 그리고 그 속에 다 숨겨 두었다.

산을 사랑해 보지 않고 깊은 산골짜기를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은 그 속에 숨어 있는 풍경들을 상상할 수 없으리라. 땀에 젖은 얼굴에 산바람을 맞아 보지 않은 사람은 그림 속에서 살랑대는 바람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고즈넉한 능선 길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높고 깊은 산 속에서 맛보는 평화로움을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실체를 끌어내는 것이다. 삶에 그 어떤 부분도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으리니 부딪혀 소리 나는 일들을 그리 가벼이 여기지는 말 일이다.

어쩌면 화가의 마음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이든 그림이든 세상에 선을 보인 것은 이미 독자의 것이다. 독자가 느낀 만큼의 무게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보이는 그림에서 다시 만들어 낸 그림을 감상한다. 비록 그 많은 것 중에 어느 것 하나 내 것은 없지만 전시장을 들러보는 순간만큼은 다 내 것일 수도 있으니 이런 부자가 어디 있으랴. 그동안 품고 있었던 그림에 대한 갈망을 조금이나마 채워본 기회다.

마음이 무척 호사한 날이다. 모처럼 입가에 방싯방싯한 웃음이 일고 목소리에 카랑카랑한 생기가 묻어난다. 상기된 마음으로 보는 전시장 밖 세상도 더없이 밝다.



김재희 수필가 전북 정읍 출생.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수필이 당선되었고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행촌수필문학상, 수필과비평문학상, 전북수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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