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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마지막 선물 / 최달천

부흐고비 2022. 4. 6. 08:27

파크 골프채는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일 년이 넘도록 그냥 상자 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포장지만 겨우 벗기고는 줄곧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체력이 지금보다 더 떨어지면 하겠다는 고집으로 같이 가자는 친구들의 권유에도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재촉하는 아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면서 파크 골프 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다.

자기가 마지막으로 선물해 준 파크 골프채로 운동하러 가는 모습을 얼마나 보고 싶어 하였을까. 소박한 소원 하나도 들어주지 못한 고집쟁이 남편이었다고 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지금은 아무 소용이 없다.

아내의 병은 날이 갈수록 심하여 갔다. 치료와 간병에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정신없이 간병으로 보낸 7개월이 길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 짧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세상으로 떠난 지 두 달이 다 되어도 아내가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밤낮으로 자식 걱정, 남편 걱정으로 밤을 설치다 떠난 아내가 너무나 보고 싶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다. 되돌아보면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난다.

아내가 떠난 지금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먹을 수 없고 예쁜 꽃이 있어도 예쁘지가 않다. 아침이면 일어나고 밤이면 잠자는 의미가 없는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중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아내가 마지막으로 사준 파크 골프채였다.

구석에 덩그렇게 놓여 있는 파크 골프채는 아내가 내게 남기고 간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무엇 하나도 부족함이 없도록 끝까지 챙겨주었는데 나는 아내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었는지 생각해보니 생각나는 것이 없다. 살아 있을 때 더 잘해 주라는 말이 내 가슴을 처절하게 만든다.

아내가 떠나고 나서 처음 맞이하는 어버이날 아침 일찍 두 딸과 함께 아내가 잠들고 있는 산소를 찾았다. 세상을 떠난 삼월 삼일일에서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오월의 차창 밖에는 이팝나무 하얀 꽃이 한창 피어 있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산소와 상을 메우고 있다. 주위에는 송홧가루가 날리고 고사리가 한창이다. 꿩 소리도 간간이 들려온다.

세월은 쉬지 않고 흘러 큰 아픔을 작은 아픔으로 만들고 있다. 끔찍하게 사랑해 주었던 두 딸과 남편이 찾아온 것을 아내는 알고 있을 것이다. 어버이날이지만 엄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줄 수가 없는 딸들은 엄마가 외롭지 말라고 빨간 카네이션 화분을 묘비 옆에 심어 주었다.

코스모스 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아내를 위해 산소 근방에다 코스모스 씨앗을 많이 뿌렸다. 가을이 되면 코스모스 꽃이 핀 곳을 찾아가 보며 행복해하던 아내가 생각나 실컷 볼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가볼 수 있는 곳에 산소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내는 떠나고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생전에는 고집만 부리고 작은 일에도 언성을 높이던 남편을 다 잊고 다시는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아내 몫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마지막 선물이 된 파그 골프채로 인하여 마음을 확 바꿀 수 있게 되어 크게 후회하고 있던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끝까지 가족들 모두를 꼼꼼하게 챙겨 준 아내가 내게는 최고였으며, 자식들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훌륭한 엄마였다.

당신을 떠나보내고 늦게 철이 든 남편이 하고 싶은 말은 "고맙고, 감사하고, 영원히 사랑합니다. 당신과 함께한 세월이 너무나 행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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