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詩 느낌

황려시 시인

by 부흐고비 2022. 4. 19.


황려시 시인

2015년 《시와 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사랑 참 몹쓸 짓이야』, 『머랭』, 디카시 『여백의 시』가 있다.

제12회 시와세계작품상 수상. 약사.

 



먹구름 / 황려시
너무 무거우면/ 울어버리지 뭐//

​개불알꽃 / 황려시
황구黃狗는 좋겠네/ 꽃 달고 다녀서//

수작, 짐작, 참작 / 황려시
케잌을 샀다/ 생크림이 유익하지 ‘점도야, 잘 울어보자’/ 양초만 울었다 울적하면 달달한 것과/ 수작酬酌한다// 식탁엔 금국이 피고 샛강이 흐르고/ 걸터앉는 습관으로 나는 풍경이 된다/ 손톱을 깎으며 붉은 낙타에게 가고 싶어. 모래의/ 약도를 짐작斟酌 하고 밤은 날마다 범이 된다// 케잌을 수저로 떠먹는 사람들이 모인다 승우형도 왔다/ 그 형을 볼 때마다 잘 박힌 못이 생각난다 형은 울기 전에/ 살짝 웃는데 사막 같았다// 인심쓰는 척 "참작參酌할께" 승우형이 말했다/ 케잌을 담고 크림 뭍은 수저를 긁으면 사락/ 사락 귀 없는 접시가 웃다가 다시 멍/ 때리고 있다 할 말께나 많은 것들은 웃고//

오래된 물감 / 황려시
냄비가 죽었다/ 벌떡 뛰던 뿔돔의 꼬리가 수상했어/ 지느러미도 화가 나 있었거든/ 널브러진 냄비는 뚜껑이 열린 채 목격자가 누군가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울진 앞바다는 죽은 냄비로 가득하다/ 비릿한 육즙이 흘러내리지/ 나는 남친을 바꾸기 위해 세 개의 냄비를 더 주문한다/ 뿔 달린 돔을 부른다/ "추가요" 너무 흔하게 만났던 불꽃은 아직 젊고/ 보란 듯이 안에 있는 것은 붉고/ 냄비가 죽어간다 내장을 비운 채 납작하게 안녕,/ 세 개의 냄비쯤 죽이기 좋은 날이지/ 입단속을 한다 우리는 헐렁하게 울진을 걷는다/ 아직 오늘이 되지 못한 걸음들, 다음에 보자/ 그냥 편하지/ 다음이란 말은 딱 부러지지 않아서 너는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지느러미를 질질 끌고 걷는다// 냄비가 또 불을 뭉치고 있었다//

음유시인 / 황려시
라면을 먹기로 했다 강변 편의점에서/ 파라솔에 앉아 국물을 마시는데 네 얼굴의 반은 모자였다/ 엉성한 수염과 광대뼈는 매끼 먹는 라면 탓이었니?/ 시를 죽이고 살아왔니?/ 공평하게 밥을 먹어보자 탁자 너머로 시가 따라간다/ 북한강 녹조가 아름답다는 생각은 위태롭게 화려해서/ 너를 만나면 비가 온다/ 네게서 괜찮은 숱 많은 눈썹이/ 접속사 없이 앉아있고, 머리는 없고/ 몰두沒頭라고 읽는다// 게르를 짊어지고 겨울 워커를 신고 있었다 너는,//

감염 / 황려시
질감이 다른 것끼리는 고쳐 써야한다/ 타일을 붙인다 하얗게 굳어지는 벽/ 타일러의 어깨와 근육의 비율은// 입이 생기는 아침 저들끼리 연결 된다/ 하얀 마스크가 전철 안 다른 마스크와/ 벽이 되고 벽은 환해지고 벽을 따라// 발빠짐 주의, 잘 빠짐 주의// 방에서 울고 있는 꾸덕한 벽에 혼자의/ 마스크를 붙이고/ 경계 없는 경계를 기다린다// '도대체 언제까지야'// 벽에 기댄 하양은 흘러내리고 유배되고/ 땀을 닦는 타일공에게//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울부짖음도 있다//

탐험하다 / 황려시
벽에 등을 맡긴다 벽을 믿는다 두터울수록 각주가 누설되지 않는 어둠과 내통하는 빛을 단애라고 읽는다 모서리는 시작일 뿐 (수작으로 긋는 점이다) 나이 스물은 넘었겠지? 변성기가 온 내게 벽화 속 염소가 물었다 보이니? 점이 멈추다 숨이 시작되는 곳 벽의 낱장을 들춘 내가 웃긴다고 했다 손가락으로 두께를 가늠하는 한숨, 두 숨, 세 숨 결마다 단층은 무너지기 좋았다// 짚이는 게 있어 무게에 눌린 단단한 책갈피, 열세 살 나비의 화석이 살고 있었다 서재의 벽에도 서재에도//

어쩌다 모자 / 황려시
썼어요? 가면이 필요해요/ 눈을 감으면/ 눈을 감고 기도하던 엄마가 생각나요 어두움은// 말이 잘 통했어요// 수선화가 피었네요 모자를 써요// 아버지의 아버지는 지팡이가 어울렸죠 벗겨진/ 모자는 외발로 걷다가/ 호수를 덮어요 위태로운 문장이 고이지 못하게// 우리를 호명해요// “나르키소스, 안돼”라고요// 공원에 갔어요 비둘기들이 덤벼요 우리는/ 모자가 없거든요 그럴 땐 눈을 감고 생각해요/ 이제부터 이야기가 많아지겠구나!/ 얼굴의 반이 모자라서// 누가 내 얘기만 해요 모아 놓은 듯 스며들어요//

철원 / 황려시
철원이라고 했다 도로명이 뭐였더라?// 철공소가 망하자 커피숍을 차렸다/ 커피철공소가 어디냐 물으니/ 이차선 도로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지// 소리끼리 다투던 곳, 쇠톱 소리가 사람의/ 말을 밀어내고 아메리카노는 좋았다/ 녹물 닮은 커피는 녹슬지 않았다// 공기 청정기를 선물로 샀는데/ (크기가 작아)/ 계산대에 무게도 달지 않고 커피만 달았다// “철원에 오길 잘했니?”// 차돌 같은 그가 신발 앞부리로 툭툭 의자/ 를 찼다 그래, 돌도 가끔은 감기를 앓지// 쇳가루가 떨어졌다 나는/ 티슈 대신 그에게 마스크를 씌워 주었다/ 작은 도시일수록 입을 조심하라고 일러두었다//

나의 수베로사 / 황려시
블라인드를 내렸다 네가 잠들까 봐/ 나 잠든 사이 네가 깰까 봐 갸웃 까치발이다/ 발 있는 꽃, 없어도 되는 꽃이 “언니 포트 좀 내려줘”/ 세상에서 제일 작은 시계초다// 손이 작아 조금밖에 줄 수 없는 널/ 엄지공주라 불렀다/ 운다. 운다. 운다 하면 울어버리는 뜨개질 선수// 굽 높이를 싫어했지 손이 닿지 않아도/ 바닥을 견디는 힘이었구나// 언니, 나 왔어/ 창틀까지도 네 머리띠는 보이지 않아 고개를 내밀면/ 실눈이 웃는, 울리지 않으면 늘 웃는/ 거기 시계초가 피었다//

다이어리 / 황려시
메뉴가 쉬는 날// 나는 고기를 먹고 할머니는 괴기를 드신다 브랜디가 붉어진다고 적는다 문득 태어난 귀는 쪽잠을 자고있어 이렇게 말해도 될까 입들이 들을 수 없게, 행을 가르던 페이지에 새벽은 오지 않고/ 토요일은 일요일의 낮을 생각한다// 밤이 붓는 시간, 어느 날의 실패일까 검은 비는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벌에게서 모시떡 냄새가 나고 아카시아/ 꿀이 되고 요일은 날씨를 믿는 재미로 살았지// 그날의 운수를 의심하는 8월 맑음// 카톡을, 침대를, 립스틱을, 신문을...// 화끈하고 환장하게 일기는 일기를 써//

모월, 모시 / 황려시
다급해진 수수밭엔 앉을 치마가 없어/ 스르륵 오줌 맛을 본 뱀, 수숫대가 달다고 소문을 낸다네/ 제 살을 다 먹어치운 안개는 헛웃음만 드러내지 빨간 다리를 든 뱀파이어는 바닥을 보이며 짠 하고 웃어라/ 트윈인지 싱글인지 내 침대를 건드려봐 급소를 알아내면 안 잡아먹지/ 안개를 밀어내고 놀러 와, 초라한 우리 말로 빵을 만들자/ 지문이 비늘 같은 뱀의 허리로 고백할게, 수수밭엔/ 아직도 덧니 같은 체위가 있어, 총천연색이야//

헛꽃 / 황려시
술을 좋아하던 그가 결국 사달이 났다 굳어진 간을 바꿔야 겨우 살겠다는, 의사 말을 듣지 않았다 믿지 않았다// 안 낳아야 될 것을 낳았다고 술만 먹으면 구박하던 막내, 겨우가 있는 곳으로 제 간肝 한 구석을 가지고 산다 반이 아버지고 반이 아들인 반반의 부자가 반 몸을 낳기 위해 배앓이를 했다// 아내는 나무를 가지고 싶었다 잎맥이 선연하고 홁이 묻지 않은 새햐얀 뿌리, 뫼비우스 띠 같았다 나무라서 나무인 남편이었다가 아들이었다가 반으로 나뉜 몸,// 남편이 아들의 걸음으로 식탁에 앉아 저어새처럼 죽을 먹는다 겨우가 된 나무 이름을 부르면 둘이 대답했다 바람을 다 만지고 돌아온 참꽃과//

찐빵 / 황려시
그게 말이지 주무르기는 좀 그래/ 꾹 눌러본다/ 안으로 싸고도는 집중이 앙큼해, 앙금이 헤벌래 웃지/ 티벳 여우의 볼때기처럼/ 잔뜩 바람을 물고 불러야 빵이 되는/ 일그러지면 더 어울리는,// 미투에선 빵 냄새가 나지/ 둥근 공식 옆에 김빠진 농담이 있다/ 속을 보이지 않는 손이 흐물거리고 흔들리고/ 한입에 먹으면 더 뜨겁다/ 더 라고 말하면 앙금이 녹아내린다// 'me too with you'/ 불의 정 중앙을 모색하여/ 반으로 자르지 않고 같이 먹는다는 것은/ 통째로 먹는 거 보다 더 빵 같다//

아직 / 황려시
홍시가 되지 못해 떫은 아직이 있다/ 미처 다듬지 않은 조각을 보는 듯/ 길게 늘어진 속치마 같다 자르지 못한/ 여태가 손을 대지 못하고/ 게으른 말이 혀끝을 달릴 때/ 안장을 올려보는 것/ 질주해 보는 것이다/ 기도 상자를 열지 못한 것이다/ 레디고를 외치는 조각가는 비대칭의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그 아직의 미,미완성이 있고 망자를/ 따라가지 못한 미망인이 있다/ 벗은 발로 달아난 겨울,아직 겨울//

계단을 한 장씩 뜯어 먹었다 / 황려시
계단을 오르면 비린내가 난다/ 비늘을 따라 끝에 이르면/ 하루가 절반을 씻고 있어// 우리는 계단을 하나씩 날랐다 순서를 기다리지 못해// 퉁퉁 불은 화석의/ 비밀번호 오류 횟수가,/ 화살표가// '꿈'이라는 촌스런 말로 들렸다// 한도를 초과한 조감도를/ 너는 계단, 나는 단계라고 했지// 사소한 걸음이 닿는 곳마다/ 저녁이었고 배가 고팠고/ 사람들은 계단을 한 입씩 뜯어 먹었다// 비릿한 식욕이 한칸 한칸 오르고 있었다//

거룩한 의자 / 황려시
먼 곳에 나를 버려두고 한눈팔던 의자는 며칠을 살핀다 시시한 블라우스는 왜 길을 만들었을까 뻔뻔한 U턴을 어쩌나 굽 낮은 신발은 팔걸이 없이 혼자 돌아온다/ 의자에 기대었다가/ 의자만큼 기울었다가/ 아예 눕는 것이 요긴하다// 새벽이 잠들면 간격이 어울리는, 갸웃하게 버티는, 균형이 거룩해지는 이유를 나는 알까 그림자는 팔월에 어울리지 않아서//

머랭 치기 / 황려시
날씨가 미안하다고 했다/ 섭씨 삼십 도를 훌쩍 넘어 혹시 상하진 않았을까/ 계란을 사러 갔어/ 신용부동산 건너 생협에는/ 궁리가 벽돌처럼 쌓여있고/ 계란 흰자만 걸러내 머랭을 친다/ 시계방향으로 일어난 거품,/ 죽이지 마시길요/ 설탕을 넣고 찰지게 섞어요/ 조합은 밖에 있고/ 비린내는 달달하게 전위적이지// 재미없어, 아니 재미있어/ 행갈이가 도치되고/ 손가락이 벗어놓은 벙어리장갑처럼/ 다다다다 빵이 익으면 차돌도 익을까// 오랜 시간을 굽기도 하는/ 시간아, 미안하다/ 나는 쿠키를 먹는다//

'시詩 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금숙 시인  (0) 2022.04.21
김은옥 시인  (0) 2022.04.20
강순 시인  (0) 2022.04.18
정운자 시인  (0) 2022.04.15
김왕노 시인  (0) 2022.04.14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