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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휴식 / 조익

부흐고비 2022. 4. 20. 08:47
번역문


내가 젊을 때부터 말로 다른 사람 이기기를 좋아해서 매양 다른 사람과 시시비비를 논쟁하거나 농담과 해학을 하면 바람이 몰아치고 벌떼가 일어나듯 하였는데 기발한 생각을 재빨리 꺼내 항상 좌중에 있는 사람들을 압도하곤 하였소. 내가 젊을 때부터 술 마시기를 좋아해서 마을의 술꾼들과 무리를 이루어 거나하게 마시며 주정을 부려 더러는 한 달 동안 멈추지 않고 마셨고 쇠해가는 나이인 지금까지도 쉬지 않고 마셨다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젊을 때부터 사람들과의 교유를 즐겼고, 약관의 나이에 사마시에 입격하여 태학에 선발되어 들어갔더니 사방에서 태학으로 온 사람들이 해마다 수백 명이었는데 교유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 심지어 뼈와 살을 나눈 형제 같은 자 또한 적지 않았었소. 이것이 젊었을 때의 기쁨이자 내가 잘하는 일이었지만 나를 병들게 하는 것 또한 꼭 여기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오. 지금 나이 마흔한 살이 되어 세상일을 많이 겪고 나서야 이것들이 나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서 더욱 싫증이 나게 되었소.

 

원문


余少好以言勝人, 每與人爭論是非及詼調謔浪, 風發蜂起, 務捷出奇中, 常屈其座人. 余少喜飮, 與里之善飮者爲群, 沈酣縱酒, 或至彌月不止, 至今年已向衰, 而飮酒未已. 余生長於洛, 自少喜結交, 及弱冠, 中司馬, 選入太學, 四方之士來太學者, 歲數百人, 無不與之交, 至與之如骨肉兄弟者亦不少. 此少時之所喜, 亦余之所能, 而所以病余者, 亦未必不在於此. 今年四十有一矣, 經涉世故旣多, 乃知此之爲吾害也, 益厭之.

-조익(趙翼, 1579~1655), 『포저집(浦渚集)』 권27 「삼휴암기(三休庵記)」

 

35권 18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와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해설


위는 조익이 벗 임광(任絖, 1579~1644)에게 지어준 글의 일부이다. 임광은 자신의 거처를 삼휴암이라고 명명하고 저자에게 글을 지어달라고 한다. ‘삼휴’란, 말[言], 술[酒], 교유[交] 세 가지를 쉰다는 의미이다. 쉬려는 이유를 묻는 저자에게 그는 위와 같이 답하고, 앞으로는 옛 습관을 끊어, 말을 버리고 술맛을 잊고 왕래하는 사람들을 사절하고서, 새로 지은 자신의 거처에서 한가로이 쉼으로써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보전하려 한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저자는, 세상 사람들은 그 세 가지를 잘하는 사람을 선망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데 그 전부를 가지고도 자신에게 해가 된다 여겨 씻어버리고 담담하게 홀로 즐기는 삶을 살고자 한다며, 세상 사람들보다 훨씬 훌륭하다 다독인다. 더 나아가, 이는 결국 옛적 은자들을 앙모하는 셈인데, 말과 교유를 꺼리는 은자는 있었어도 술을 싫어한다는 은자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며, 술까지 쉰다는 그의 은거 수준이 옛사람보다 한 층 더 깊다고 추어올린다.

하지만 저자는 그가 한 단계 더 나아가기를 바란다. 세 가지를 쉬려 한다면 마음을 쉬는 편이 가장 좋은데, 쉬는 것은 바로 비우는 것이고 비우면 외물이 해를 끼칠 수 없으니, 이와 같다면 천하의 어떤 것도 해를 끼칠 수 없다 한다. 어떤 사람이 아무 생각도 없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물새와 어울려 놀았는데 그 아버지의 부탁으로 물새를 잡으려 하자 물새가 한 마리도 바닷가에 내려앉지 않았다거나,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와서 부딪치면 마음이 좁은 사람이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비움의 효과이다. 마음을 쉬라는 저자의 말은 결국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헤쳐 나가라는 뜻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그가 세 가지를 쉬려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마음을 비웠을 때의 효과에 대해, “하루 종일 말해도 사람들이 시끄럽다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술을 마셔도 사람들이 과도하다 여기지 않고 하루 종일 교유해도 사람들이 번거롭다 생각하지 않을 것이오.[將終日言而人不以爲諠也, 終日飮而人不以爲荒也, 終日酬應而人不以爲煩也.]”라는 저자의 말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겠다. 말로 사람을 이기려다 보면 시끄럽지 않기 힘들고 술을 좋아하다 보면 과도해지기 쉽고 교유를 좋아하다 보면 사람들을 번거롭게 만들기 일쑤이다. 아마도 그는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말을 듣고 세 가지를 쉬겠다고 다짐한 듯하다.

한편으로는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굳어져버린 삶의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웠으리라. 다른 사람의 말도 원인이 되었겠지만 스스로에 대한 비판적 인식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반평생 즐거워하고 잘한다고 생각해왔던 일을 쉰다고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스스로를 반성하고 부정하고 미워하고 괴로워했을까. 단번에 끊겠다고 하지 않고 우선 쉬겠다고 한 면에서도 그의 의도는 드러난다. 그는 우선 세 가지와 분리된 삶을 살아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고 싶은 것이다.

어떤 문제를 인식했을 때 사람마다 해결책이 다를 수 있다. 마음을 비우라는 저자의 포괄적인 의견도 의미가 있겠으나, 이 세 가지가 문제의 원인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쉰다는 임광의 해결책이 필자는 더 적확해 보인다. 문제가 되는 행위에 대해 그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정확한 해답이 될 수 있고,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 시도했을 때 뜻밖의 다른 문제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병인 줄 알았다면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곧 약이다.[知得如此是病, 卽便不如此是藥.]”라는 주희(朱熹)의 말이 유의미하다 하겠다.

글쓴이 : 강만문(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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