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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평온한 오후 / 고유진

by 부흐고비 2022. 4. 27.

오전 내내 먹구름만 차오르더니 정오가 지나서야 빗방울이 떨어진다. 한낮인데도 저물듯이 어둑하다. 일찌감치 청소를 끝내고 그윽한 조명 아래 책을 펼쳐본다. 이보다 더 안온할 수 있을까. 북데기 같은 머리를 질끈 묶어놔도 신경 쓸 일 없는 안식처이다. 그 공간이 나만의 섬인 양 포시랍게 안착한다. 최면에 걸린 듯 아지랑이 아른거리고 이윽고 눈이 감긴다.

완벽한 평화에 느닷없이 균열이 생긴다. 아랫집에서 괄괄하게 야단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 여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악다구니를 내뿜는다. 점잖은 이웃을 만난 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매일 들끓는 굉음을 분출해내며 육아의 설움과 자신의 건재함을 꾸준히 알린다. 점잖은 이웃답지 않게 야멸찬 표현을 쓰는 건, 저들이 지난밤 선을 넘는 치열한 싸움과 소음을 발산한 때문이기도 하다.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간에 물건 내던지는 소리와 고라니 울음 같은 내지름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자다 깨서 기도를 했다. 주님, 저들의 분노가 가라앉게 해 주시고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넘어가게 해 주시옵소서. 길 건너편에서 불났을 때만큼이나 간절했던 기도 덕인지 그 공포 사운드는 이내 잦아들었고 환청이었나 싶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아마 도를 넘은 패악질로 이웃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것이며, 당장에 민원이 들어갔을 터이고, 그 바람에 억지로라도 종전이 됐을 걸로 짐작한다. 사내아이 둘을 둔 밑의 층은 부부싸움까지 더해져 저리 사납고 선득하게 주변을 긴장시킨다. 안타까운 건 애들이 아직 고만고만하게 어려 향후 몇 년 간 더 이 소란이 지속될 거란 예상이다. 가슴을 쓸어내리게 과하다 싶다가도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

집안일로 분주할 동안 물장구나 치라고 욕실에 넣어 둔 아이가 조용히 사고를 치고 있었다. 샤워기를 양껏 틀어 문밖을 향해 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신이 났다. 부엌 바닥은 철벅하니 물로 흥건해졌다. 엄마는 기함할 듯이 놀라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환풍기 달린 욕실에서 소리 지르면 이웃에 다 들릴 거란 걸 모르진 않았다. 다만 그걸 신경 쓰기엔 상황이 몹시 나빴던 것뿐이다. 교양과 품위를 벗어던진 엄마는 아이를 요란하게 다그치며 쥐 잡듯 잡았다. 놀라서 소리 지르는 엄마와 더 놀라서 울어대는 꼬맹이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수습하느라 허둥대는 사이 이번엔 인터폰이 경고음처럼 울려댄다. 아래층이다. 평소에도 예민한 아주머니가 이 상황을 이해해줄 리 없었다. 윗집 여자의 미친 난동을 적나라하게 목격이라도 한 듯 에누리 없이 잔소리를 보태었다. 엄마는 정말 미치도록 울고 싶었다.

그 꼬맹이가 이제 훌쩍 자라 대학생이 되었다. 이사 온 지도 오래다. 아이 키워본 부모라면 고충이 얼마나 클지 이해해 줄만도 한데, 당시엔 주변까지 옹졸하게 느껴졌다. 내로남불인가. 입장이 달라지니 나도 어느새 옹졸한 이웃이 되어있다. 물론 인터폰을 눌러 볼멘소리 한 번 한 적 없는 점잖은 이웃이지만, 뒤에선 고개를 내저으며 구시렁대고 있으니 새삼 기분이 묘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아래층 아주머니도 오랫동안 윗집의 법석구니를 참아냈을 것이다. 이전에 살던 가족도 아이들이 올망졸망하여 세상 시끄럽다 마침내 이사 간단 소식에 얼마나 반색했을까. 기쁨도 잠시 또 다음 타자가 어린아이 둘을 둘러업고 꾸역꾸역 이사를 오니 참 환장할 노릇이었을 거다. 뭐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된다. 이리 훌쩍 지나고서라도 깨닫는 걸 보면 나이나 세월은 필연 거저먹는 게 아니다.

삶의 교차점에서 숱한 인연이 스쳐지나간다. 그 기억 속에 어찌 똑같은 분위기, 똑같은 성격, 똑같은 모습으로 남을 수 있겠는가. 예전 이웃에게 그악스런 아이 엄마로 기억된대도 수긍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공존한다. 그림자처럼 과묵할 때가 있는가 하면, 높은 데시벨로 숨넘어가게 웃을 수 있는 유동적 성향을 조금씩은 지니고 있지 않을까. 내게 성마르고 유별났던 이가 어떤 이에겐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일지도 모르는 거다. 기억은 상대적이다. 타인이 보는 내 모습이 거울 속 모습이 아닌 것처럼 나와 타인의 입장은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각다분한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꽉 채워야만 되는 줄 알던 시기엔 닦달도 하고 애간장도 태우고 뭐든 조급증이 났다. 남들 하는 만큼은 해야 될 것 같고,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려니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날에 대하여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평할 수 있는 시근이라도 들게 되면, 후회든 깨달음이든 구메구메 노하우로 쌓이고 나만의 알고리즘을 이루게 된다. 버티고 즐기면서 오르막과 내리막을 잘 타는 것이 삶의 묘미이긴 하나 매번 어렵고 매번 헤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나마 모질고 치열한 순간들도 영원히 머물진 않는 게 세상 이치다. 마음이 푼푼하지 못한데다 손 붙잡고 찾아오는 고난엔 늘 허둥거리기 마련이지만, 댑바람 맞다가도 순리대로 지나가 주니 그리 숨 고르기 할 수 있는 평화가 꿀맛 같은 것이다.

아랫집 아이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장난기 많은 얼굴에 똘똘하고 귀엽기만 한데, 키우고 먹이는 엄마 입장에선 발 동동 구르며 훈계의 몫을 감당해야하리. 힘든 일이 다 지나가듯 저 귀여운 모습도 이때뿐이라면 매순간이 소중할 텐데, 아이 엄마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긴 하나 지금은 말해도 모를 듯싶다. 지갑 속 딸아이 어릴 때 사진을 새삼스레 들여다본다. 참으로 평온한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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