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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까치집 / 박선숙

부흐고비 2022. 5. 14. 07:10

새처럼 날개를 펴고 자유로이 날 수 있다면. 가끔 허공에 무시로 집 한 채 지어본다. 가벼운 날개를 지녀야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몸이 솜처럼 가벼워진다면 마음도 그와 같지 않을까.

요즘 까치 한 쌍이 분주하다. 긴 겨울 보내고 봄 오는 길목에 만난 까치 두 마리. 어느 사이 사랑을 하고 미래를 약속했나 보다. 연못가 뽕나무 꼭대기를 집터로 택했다. 이른 아침부터 부부는 부지런히 집을 짓기 시작한다. 설계도와 조감도는 이미 가슴속에 그려져 있는 걸까. 가장 안전한 각도에 기반을 잡았다.

주춧돌 쌓듯 주어온 나뭇가지들을 얼기설기 받쳐놓는다. 날개엔 힘찬 음표가 달려있다. 눈짓, 발짓, 날갯짓은 그들만의 비밀 언어. 층높이는 이만큼이면 될까. 평수는 얼만큼이어야 할까. 행여 복 한 움큼이라도 새어 나갈까.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할 수 없다는 듯 나뭇가지 사이를 분주히 오간다. 어쩌면 그들은 완벽한 건축공학도일지도 모른다. 파란 하늘 아래 저 높은 가지 사이가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벌써 간파하지 않았는가. 그래서일까. 다양한 과학 원리를 이용하여 집을 짓는다고 학자들은 알려준다.

건축 자재는 여러 가지다. 입으로 나르기 버거울 커다란 나뭇가지를 어디선가 잘도 물어온다. 진흙도 마다 않는다. 아마도 지상 최대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려나 보다. 따스한 햇살 한 가닥 싱그러운 바람 한 줌도 엮어 넣는다. 노래 한 소절도 함께. 귀여운 새끼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려니.

까치 까치 까까치 신호를 보내는 사이 주택은 한 층 또 한 층 둥그렇게 올라가고 있다. 바람만큼이나 견고하게 높아진다. 새들도 자신들이 기거할 곳은 저리도 정성을 기울이는구나. 나무 아래 지날 때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한 번 더 올려다본다. 덩달아 즐겁고 기쁘고 흐뭇하다.

긴 시간 동안 온 힘 다해 완성한 아름다운 성. 빛이 난다. 참으로 대단하다. 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켜켜이 쌓아놓은 시간이었다. 바람이 전해준 지혜가 들어있고 구름이 그려준 희망도 담겨있으리라. 한 마음으로 따스한 공간을 창조하는 동안 둘 사이는 더욱 견고해졌을 것 같다. 비바람 불어도 부서지지 않으리. 눈보라 쳐도 끄떡없으리. 겨울 나뭇잎이 다 떨어져도 까치집은 빈 나뭇가지 사이 처음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얼마나 촘촘하고 튼튼하게 지었는지. 안전성은 최고일터. 가끔 산비둘기와 까마귀가 찾아와 시샘하듯 갸우뚱 기우뚱거리며 얼쩡거린다. 그들도 새 집이 궁금한 게지.

귀여운 아기 새는 언제쯤 태어날까. 벌써부터 둥지 밖으로 새어나올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성 밖에 서성이며 그날을 기다리다 기린처럼 목이 길어지지는 않을까. 까치는 상서로움을 주는 길조로 전해져 온다. 까치가 지저귀면 좋은 소식 반가운 사람이 온다고 했다. 아침마다 전해주는 기쁜 소식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할 것 같다. 벌써부터 설레는 이 가슴. 가끔 일상에 선물 같은 시간이 흘러온다.

저 높은 곳에 까치집 같은 집 한 채 있었으면 좋겠다. 구름 아니면 들여다 볼 수 없는 나만의 공간. 마천루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아니한가. 집을 만드는 까치처럼 글을 짓는 시간을 마련해야겠다. 허공 저만치에 놓아도 흔들림 없고 날아가지 않는 견고한 문장을 꿈꾸며. 하늘 언저리에 구름 흘러가듯 새들 지저귐 바람의 말이 그려지기를. 봄볕 닮은 따스한 사랑도 담긴다면 더 바람 없으리.

어느새 찾아왔나. 벤치에 살포시 자리한 햇살이 정답다. 그 곁으로 살며시 다가가는 걸음. 봄 마당에 푸근히 펼쳐져 있다. 행복향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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