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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불멍 / 이동이

부흐고비 2022. 5. 14. 07:20

치솟는 불길이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자유분방하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불사르듯 푸른빛으로 일렁인다. 오직 타오르기 위한 일념으로 장작을 에워싸는 불길, 그 현란한 불꽃의 몸짓에 홀린다.

‘타다닥, 타닥’ 장작이 타면서 불티가 날아오른다. 밤의 장막에 별처럼 박혔다가 화르르 쏟아져 붉은 수정되어 구른다. 잠시 반짝이다 시나브로 흙과 동화되고 만다. 느리게 반짝이다 사라지는 불꽃은 노인의 인생 꽃인 검버섯을 닮았다. 그 꽃도 저렇게 시들거리다가 가뭇없이 사그라지는 것이 아닌가.

이 시간 이 고요. 불길 따라 흐르고 불길 따라 머문다. 어느 순간 나를 내려놓자 내가 없다. 실존하는 형체는 이미 내가 아니다. 환하게 부서져 내리는 불빛에 산화되어 버렸다.

딸네는 매주 금요일이면 아이 셋을 데리고 멀리 혹은 가까이에 있는 야영장에서 캠핑을 즐긴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 정서에 도움이 된다는 뜻에서다. 또 그간에 쌓인 피로도 풀며 에너지 재충전의 기회로 삼는다. 코로나19가 나타나기 직전인 작년까지 매주 캠핑을 다녀왔고 100회 때는 모 방송사에서 인터뷰도 했다.

첫손녀가 돌 지나면서부터 다녔으니 캠핑에 관한 다방면의 지식은 꿰고 있는 편이다. 점차 동호회도 생기고 형제 같은 우애도 쌓는다. 아이들끼리도 친숙해지니 가족과 같은 공동체이다. 캠핑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모두가 자연을 가까이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코로나가 1단계로 완화된 며칠 전, 나를 위해 미니팬션이 있는 의령벽계야영장을 예약해 두었다는 소식에 서둘러 따라나섰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 바람에 묻어오는 시원한 공기로 가슴이 무한대로 열렸다. 몇 달간 마음대로 외출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속이 탔는데 사위의 초대로 청량수 한 바가지 들이켠 듯했다.

산책길에 노란 소국이 고개를 내밀었다. 몰래 뒤따라온 아이가 냉큼 쪼그리고 앉아 꽃을 쓰다듬는다. 아이도 꽃이 된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순간이다. 자연은 변함이 없건만 우리가 사는 지구촌은 왜 이다지 혼란스럽고 공포감이 드는 걸까. 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미래가 불투명해 마음이 아리다.

화로에 참숯을 피워 저녁준비가 한창이다. 석쇠에서 자글자글 익는 고기가 가을 하늘을 품어 더 맛깔스럽다. 고슬고슬한 냄비밥을 호호 불며 상추쌈 한 입 먹는 즐거움은 캠핑에서만 누릴 수 있는 멋과 낭만이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 무렵 관리실에 들렀다 온 사위 손에 장작 한 망태기가 들려있다. 쓰다 남은 장작만도 한 시간은 족히 태우겠다며 슬쩍 눈치를 주니 나를 위한 특별한 이벤트란다.

불멍! 얼마나 바랐던 일인가. 그동안 바쁘게 허덕인 일도 없건만 혼자만의 느긋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내가 여유를 부리는 시간에 누군가는 꿈을 향한 까치발을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했다. 남보다 앞서려는 생각보다 나름대로의 계획이 순조롭게 되길 바랐다. 틈틈이 책도 읽고 좋은 글줄이라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기회가 오면 들끓는 열정을 표출하고자 애면글면하다 보니 행복은 저만큼 비껴 나 있었다.

잔잔히 흐르는 클레식 음악이 복잡한 생각을 느슨하게 이완시킨다. 사위는 밤 기온에 내가 한기를 느낄세라 히터를 켜주고, 바람에 주춤해진 불길도 토치로 일으킨다. 묵묵히 물기 머금은 장작을 화로에 비스듬히 세우기를 몇 차례다. 바짝 마른 장작은 훨씬 밝고 화려한 불꽃을 피우기 때문이리라.

불멍 두세 시간 지났을까, 불쑥 한마디 던졌다.

“김 서방, 자네는 불멍 할 때 어떤 생각을 하는가?”

“어머님,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멍하게 있습니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다 녹아납니다.”

아뿔사! 우문현답이다. 어려운 시국에 대한 불편함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여러 가지 불만을 풀어내리라 짐작하며 물었는데 역시 그랬다. 불멍은 넋을 놓은 채 뇌를 쉬게 하고 머리를 비우는 일이 아닌가.

정신을 집중하는 효능만큼이나 넋을 놓는 효능도 분명 있을 터이다. 일테면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한 게 사과나무 아래에서 멍 때렸다는 얘기와 기업 회장이 매일 한 시간씩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의 창조성을 최대한 끌어올렸다는 얘기는 믿음이 간다. 결국 멍 때리기는 스트레스 감소와 자신감 향상에 도움을 주는 일이다.

그런 효능을 믿음 삼아 우리나라에서 멍때리는 대회도 있다. 그저 멍하니 있는 것이다. ‘생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나를 그 자체로 생각이라는 물질로 만드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를 내버려 두는 행위를 통해 바쁘게 움직이는 삶을 생각하게 하는 것. 그에 가치를 느끼는 것이다.

내 흥을 돋우려고 음악을 바꾼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이 시국을 대변해 주는 가사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흥얼거렸다. 사위와 화롯가에 마주 앉아 도란거릴 수 있어서 참 좋다. 밤이 깊어갈수록 불꽃은 더욱 붉게 타오른다.

캠핑장 풍경에 불멍의 시간이 한 점 그림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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