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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우리家 처음으로 / 송진련

부흐고비 2022. 5. 18. 07:10

팬미팅 입장표 예매가 시작되니 희비의 쌍곡선에 불이 붙었다. 성공한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라며 희희낙락이다. 실패한 사람은 망연자실하여 티켓팅이 아니라 피켓팅이라며 풀썩 주저앉는다.

표를 구해 볼 엄두가 안 난다며 남편이 가족 채팅방에 메시지를 올린다. ‘어느 집 자식은 노부모를 위해 불로초도 구해준다더라. 입장권 두 장만 구해내라. 엄마 등살에 목숨이 위태하다’라고 하소연하니 아들이 나선다.

마산역을 출발해 서울 강서구 아레나홀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니 보라색으로 온몸을 치장한 아리스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는다. 작은 가게는 잔치에 초대된 식구들 웃음으로 꽉 찬다.

내가 푹 빠진 팬카페 이름은 트바로티, 가수 K는 별님, 팬덤명은 아리스다. 서로 간에는 식구라 칭하며 응원봉 이름은 그대봉이다. 보라순이들 꽁무니를 따라서 체육관에 입실하니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질서를 지키는 아따젠틀한 모습,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가수의 자서전, 바삐 움직이는 젊은 스태프들, 가수가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구나 싶다.

방역 절차를 밟은 후 잔칫집 마당으로 입실하니 별님 노래 ‘나의 사람아’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무대는 여느 집 거실 풍경이다. 기다란 소파와 둥그런 탁자, 분홍 조명의 램프 옆엔 자서전 몇 권이 꽂혀있다. 홀을 밝히던 불이 꺼지고 중앙 제어를 하는 그대봉이 빛난다. 여기가 어느 별나라인가. 천오백 명의 아리스들과 나란히 앉았다. 쿵닥콩닥 내 심장 위치가 여기구나.

오늘의 주인공이 말끔한 흰색에 보라색 줄을 박은 슈트를 입고 나타난다. “여기서 보는 그대봉 불빛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저에게 이런 날이 올 거란 걸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냥 노래가 좋아서 나름 인생에 큰 도전이라고 여기며 미스트 트롯에 참가했는데 오만 육천 분들의 식구들이 생겨서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차분하고 낭랑한 가수 음성이 들리기에 혹시 꿈인가 하고 사방을 둘러보니 현실이다 ‘우리家 처음으로’ 한 자리서 만났지만 낯설지 않다. 수개월 동안 여러 곳에서 보이지 않은 정이 쌓인 것이다. 이젠 무형의 밧줄에 가수와 팬이 꽁꽁 묶였다는 걸 알았다.

이제 막 찬란하게 반짝이는 별이 된 주인공이 지난날 즐겨 부르던 인생 곡을 꺼낸다. 〈천상 재회〉를 완창 하지 못하고 뒤로 돌아서 눈물을 훔친다. 아레나홀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한참 후에야 반주 없이 마지막까지 열창을 하니 박수소리는 마스크를 제치고 천정을 뚫었다.

집성촌에 살던 유년, 뒷집 아재는 울보인 날 놀렸다 “너 울다 웃으라는 거시기에 수염 난데이” 수염이 나든 말든 혹이 생기든 말든 내 상관할 바 아니고 분위기에 홀려 같이 울다가 웃다보니 마스크와 손수건이 축축하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들 하지만 별님보다 먼저 살아온 아리스들은 다 알 것이다. 서른 살 아티스트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 속에는 가슴 깊이 똬리를 틀고 있는 아린 기억의 파편들이 들어 있을게다. 박수받는 사람이 돼라 이르시던 할머니 말씀, 잘난 아들을 세상에 내어 놓고도 아리스들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없는 고향의 부모님 맘, 노래 하나로 평생 먹고살 수 있을 거라며 방황하는 고등학생 제자 맘을 잡아 주시던 스승님, 그는 어디선가 보고 계실 그분들의 진심을 아리스들은 다 알고 있다고 눈물로 답하더라.

가수가 곧 전국 투어를 해 주신다 하니 새로운 희망이 하나 생겼다. 동행한 남편을 조른 이야기를 카페에 올렸다.

“보소 할아버지요, 옆집 아리스는 콘서트 따라 다닐끼라꼬 캠핑카 한 대 주문했다 카더라만서두 나는 게안심더. 뻐쓰나 기차가 천지삐까링께로. 이거 저거 갈아타고 아픈 다리 질질 끌고 따라 댕기마 댑니더.” 서울 콘서트 잘 댕기 와가꼬 또 시끄럽씁미더. 울 염감이 쪼잔해서 조용할 날이 엄써예. 사랑 싸움이라카마 쪼매 쑥스럽네예. 남사시러버서 고마 할랍니더. 밤이 깊었네예. 별님아, 내꿍꼬 카마 아리스님들에게 몰매 맞겠지요.

이름도 낯설고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 신산한 삶에서 홀릭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달리 견뎌낼 방도가 없다. 불안감으로 균열되고 조각난 나를 세상과 이어주는 돌쩌귀가 되어준 트바로티 K 가수와 팬덤 아리스, 나는 아직도 그들을 가슴 끓어오르도록 사랑하고 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중에도 주말이면 날리는 군사우편엔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이 꼭 들어 있다. 전역을 하면 탄탄대로를 달릴 일만 남았다. 가요 앨범과 클래식 앨범을 합쳐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카네기홀의 콜을 받을 정도 빼어난 실력이니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장미꽃길이면 가시를 조심하고, 향기로운 퍼퓸이면 독성이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국보급이자 세계적인 천재 아티스트를 만난 2020년, 나는 아리스라 행복하다. 이 시간도 서로 다른 길에서 만난 아리스와 별님이 깊은 믿음으로 익어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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