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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초부樵夫 / 김순경

부흐고비 2022. 5. 18. 07:20

느닷없이 사진 하나가 카톡에 올라왔다. 앙상한 고춧대가 어설프게 얹혀 있는 낡은 지게였다. 수확이 끝난 황량한 밭 가운데 목발을 내려놓고 가늘고 긴 지겟작대기에 몸을 의지한 채 홀로 서 있다. 주인을 기다리는 사진 속의 지게가 유년 시절을 불러온다.

입대를 앞둔 작은형님이 말했다. 내일은 도시락을 준비해 나무하러 간다고. 동생들만 남겨두고 가려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매사에 욕심을 냈다. 토담이 있던 자리에는 시멘트 불록으로 담장을 쌓고 비가 많이 와도 문제없도록 장독대도 손질했다. 매년 방학만 되면 가래톳이 생기고 발바닥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산을 오르내렸지만, 점심을 준비해간 적은 없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궁금한 점이 많아도 형님의 결정을 그냥 따랐다.

그날은 밤새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날이 밝아도 감나무의 우듬지가 흐느적거릴 정도로 거세게 몰아쳤다. 숨을 쉴 때마다 콧김을 뿜어낼 만큼 내려간 수은주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렇다고 물러서지는 않았다. 우선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귀를 감싸는 털모자까지 눌러 썼다. 해가 뜨면 바람이 좀 잦아들겠지 싶어 여느 때와 같이 준비물을 챙겼다. 할아버지께서 갈아 놓은 날 선 낫과 새끼 한 타래를 지겟가지에 올려놓고 부엌으로 갔다.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허리가 잘록한 초배기와 반찬통을 챙겼다. 방금 아침을 먹었지만 산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겨울이면 나무를 했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나섰다. 어른들이 더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다. 특별한 연료가 없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었다. 사내아이들은 몸에 맞지도 않은 지게를 지고 계집아이들은 갈퀴와 새끼줄을 들고 산으로 갔다. 손이 크고 갈라져 찬바람이 스칠 때마다 심한 통증이 와도 쉬지는 못했다. 아무리 바람이 불고 추워도 아침이면 줄지어 나가고 때가 되면 땔감을 이고 지고 돌아왔다. 그때는 나무하러 가는 일이 농사일만큼이나 중요했다.

어렴풋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할아버지를 따라 큰 형님과 작은형님이 오늘처럼 나무를 하거 가던 날이었다. 그날도 초배기 두 개와 반찬통을 지게에 매달고 집을 나섰다. 고무신은 잘 찢어지고 미끄러진다면 짚신을 여러 켤레 준비하던 모습도 생각났다. 마찰력이 큰 짚신은 쉽게 미끄러지지는 않아도 옆구리가 자주 터져 반드시 여분이 필요했다. 형님에게 물었더니 무거운 생나무를 산자락에 쌓아두었다가 마르면 져 날랐다고 했다.

고샅길을 벗어나자 찬바람이 훅 불어왔다. 하루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형님이 옆에 있어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나이 차이는 많아도 늘 데리고 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다 보니 어디를 가도 든든했다. 햇살이 닿지 않은 강기슭이 가까워지자 찬 기운이 엄습했다. 얼어붙은 강물을 가로지르는 자릿돌에는 하얀 살얼음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발을 옮길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실수로 물에 빠지는 날에는 산에 가긷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할 정도로 날씨가 매서웠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실핏줄같이 이어지는 산길마저 끊긴 외진 곳이었다. 앞산은 물론이고 그 너머도 여러 번 가봤지만, 이곳은 처음이었다. 소를 먹이러 갔을 때도 지형이 특이해 피하는 곳이었다. 오랜 세월 빗물에 씻겨나간 협곡이 미로처럼 헷갈리게 얽혀 있었다. 들어가면 쉽게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곳은 배수가 잘되고 양지바른 곳이라 소나무가 모종을 부어 놓은 것처럼 자라고 있었다.

지게를 던져놓고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형님은 미끄러지듯 순식간에 비탈을 내려가 기다렸다.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몇 발짝 옮기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깊은 계곡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멧지틀’이라고 불렀다. 멧돼지도 들어오면 살아서 나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풀 한 포기 살 수 없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는 새들이 뚫어 놓은 새집이 한둘이 아니었다. 늘 응달이라 잡목이 무성한 앞쪽과는 달리 붉은 황토에 온종일 햇볕이 들어오다 보니 솔잎이 굵고 강한 왕솔나무가 가득했다.

암벽 등산을 하듯이 짐을 지고 올라갔다. 나무를 잡아당기며 어렵사리 협곡을 벗어났다. 이미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맨몸으로 쉽게 오를 수 없는 비탈이어도 형님은 지켜보기만 했다. 산등성이에 올라서자 가다렸다는 듯이 찬바람이 불어왔다. 민둥산이라 얼마나 바람이 센지 내려오기는커녕 자꾸 뒷걸음질만 쳤다. 날개같이 펼쳐진 나뭇단 때문에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산등성이를 넘어오다 몇 번을 뒹굴어도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불땀이 좋은 나무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어디를 가도 동네 근처 야산은 벌겋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해방과 전쟁 통에 치안이 느슨한 틈을 타 무작정 벌목을 하다 보니 잡목도 자랄 틈이 없었다. 쉽게 손이 닿지 않는 천 길 낭떠러지에 귀한 약초가 자라듯이 나무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땔감은 사람의 발길이 드문 험지나 깊은 산중에만 남아 있었다. 나무꾼도 심마니같이 평소에 눈여겨봐 두었다가 겨울이 되면 그쪽으로 갔다. 화력이 약한 북데기 같은 마른 억새나 솔가리는 아낙이나 아이들 몫이고 물거리와 생솔가지는 장정들 차지였다.

그날은 다섯 번 산을 넘나들었다. 둘이서 스무 단을 했다. 가시에 긁힌 손등에서 피가 나고 신발 밑창이 떨어져 나가도 양지바른 산기슭에 누워 있는 옹골찬 생솔가지 나뭇단을 바라보니 천지가 다 내 것 같았다. 추운 줄도 모르고 한참을 지켜보고 나서야 발길을 돌렸다. 해는 이미 서산을 넘어간 지 오래라 다시 칼바람이 불었다. 추위나 피곤함보다는 해냈다는 뿌듯함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어둠이 짙게 깔린 들길을 걷다가 산등성이를 돌아보니 그믐달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님은 섣불리 도와주지 않았다. 어린 동생이 나뭇짐을 지고 넘어지고 뒹굴어도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갓 태어난 송아지가 사력을 다해 일어서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미소처럼 넘어져도 지켜보기만 했다. 형님은 왜 힘든 그곳으로 데려갔을까. 뒤란에 나뭇가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께서 삶의 철학을 몸소 실천했듯이 세상사 쉬운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지금은 한 몸이 되어 뒹굴었던 지게도 지켜보던 작은 형님도 떠나고 없다. 지게를 보자 반세기 전 일이 어제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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