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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노래 / 송숙

부흐고비 2022. 5. 19. 07:10

비가 내린다. 컴퓨터 음악 사이트에 들어가 슬픈 가요를 켜놓고 벌렁 눕는다. 마치 세상의 슬픈 연인이 나이고 세상의 모든 이별이 나의 것인 양 슬프다. 왜 노래 가사 속의 사랑은 꿈을 꾸듯 허무하다고 하고 잔인하다고 할까. 미련 남은 사랑도 미운 사람도 그다지 없는데 노래를 들으면 미운 사람도, 보내야 할 사람도 어찌나 많은지. 그래도 이런 가사가 싫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울렁거릴 나이가 아니라 다듬어야 할 나이이다.

내 노래 창고에는 언제나 파란 기억이 살아있다. 천상에 계시는 부모님도 있고 나를 아껴준 지인도 있고 내 마음 같은 철학도 있다. 사람의 노래를 들으면 그 사람에게 노래가사처럼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빗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으니 비와 어울리는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생각이 난다. 비와 당신,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 등.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행복에 대하여 방황을 하고 있는 듯했다.

어떤 지인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나면 별스럽게 “내 노래 잘 하제?”하고 확인 받고 싶어 했다. 무슨 심리인지는 몰라도 무조건 잘한다 해줘야 내 마음도 편했다.

나는 “내 노래 잘 하제?” 묻지 않아도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쬐끔 듣는다. 슬픈 노래를 부르면 인생도 슬프게 된다고 부르지 마라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난 슬픈 노래가 좋다. 노래 가사는 아파야 노래답고 부르는 사람도 멋있어 보인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생각이다. 노래는 함께 부르면 관계라는 고리를 물고 간다.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일 테니 설령 못마땅한 부분이 상대에게 있더라도 노래를 부르는 순간은 불협화음도 하나 된 마음이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동네 사람들 앞에서 가수 이미자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나면 오십 원을 용돈으로 받았다. 그 재미로 심부름도 잘했고 동요보다 가요를 더 잘 불렀다. 꽤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몇 해 전 KBS 전국 노래자랑 예심을 북구 빙상센터 강당에서 한 적이 있다. 지인이 아무 말 없이 동사무소에 접수를 해놓고 통보를 해왔다. 예선 날짜가 다가오는 동안 삶의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반주없이 하는 1차 예선이었지만 참가자 사백 명 정도 되는 사람 앞에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을 겨우 참아냈었다. 노래를 사랑하고 꿈을 가진 사람이 생각보다 넘쳐났다. 열다섯 명 뽑는 노래자랑에 나의 노래 실력은 터무니없었다.

한때는 생뚱맞게 부르는 노래보다 소주 한 잔쯤 목구멍으로 넘어가야 노래가 풀린 적이 있다. 슬픈 노래는 슬프게 신나는 노래는 신나게 부를 수 있었다. 이제는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노래를 듣는 게 더 편안해졌다.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전문가의 몫이고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에 고맙다.

가만히 삶을 들여다보니 노래가 삶이다. 삶에 노래가 없다면 군더더기가 있는 길을 어떻게 잠시라도 걷어 낼 수 있을까. 국민가수 나훈아는 그의 신곡에서 테스형에게 묻는다. 세상이 왜 이리 힘드냐고,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 가본 저 세상 가보니까 천국은 있더냐고, 소크라테스형에게 물었다. 이 가수의 가창력과 작사 작곡의 능력에 안 빠져 들 수가 없다. 가수라는 무게로 사는 것도 힘든데 나라에서 주는 훈장 받으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지 못한다고 말하는 가수 나훈아. 그에게서 막걸리 냄새가 났다.

트바로티 김호중 가수의 목소리에는 기쁨과 슬픔이 있다. 성악을 몰랐던 내게 귀를 열게 해주었고 가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트로트를 하지 않고 계속 성악을 했더라면 우리는 그를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김호중 가수는 목으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가슴으로도 부르지 않는다. 뼛속까지 파고들게 부른다고 어느 전문가가 말한다. 음절 하나하나도 허투루 부르지 않는다. 진정성을 전달하는 그의 표정에서도 느껴졌다.

노래 때문에 상처를 위로 받았다는 사람이 많다. 운명은 어쩔 수 없고 8자는 뒤집어도 8자라고 하니 잠시 왔다 가는 세상 인생 노래에 빠져도 좋을 것 같다. 타국에서 듣는 아리랑은 조국애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를 교감한다. 마음이 약해질 때 노래를 들으면 나의 독백처럼 다가온다. 마음이 흔들릴 때에도 나를 붙잡아 주는 게 노래 한 소절이다.

갓 태어났을 때에도 울음이라는 노래로 존재감을 알렸다. 인생의 시작과 끝에 노래가 있다. 인생의 종말에 불경이나 성가를 부르기도 하고 고인을 떠나보내는 울음이 노래이기도 하다. 죽음이 해학적이라면 생명이라는 것도 해학적이므로 노래로 도란거린다. 생과 사, 이 모든 일에 노래가 흐른다.

우리의 삶이 녹록지 않다. 지금 힘들다. 그래서 트로트에 열광하고 노랫말에 울렁거리고 인생이 애틋하다. 훌쩍 가버리는 세월, 잠시 스쳐가는 청춘도 살다보면 알게 된다고 하니 청춘을 응원하며 인생을 몰라 오늘도 노래를 파트너 삼아 듣는다.

엄마가 좋아했던 ‘청춘을 돌려다오’ 십팔번 노래 한 소절 흥얼거려 보니 엄마가 그리워진다. 엄마가 좋아했던 홍시를 싱크대 앞에서 먹으며 노래 홍시를 듣는다.

내 남은 삶에 어떤 노래를 알고 들으며 세상과 이별할지 생각해 본다. 나는 제 멋대로 내지르는 소리로 노래 부를 테다. 내 모든 틈새를 메꾸어 주겠지. 노래 그 행복 얼른 주워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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