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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개입 / 권오훈

부흐고비 2022. 5. 20. 07:20

봄기운 완연한 수밭 고개로의 아침 산책길은 언제나 싱그럽다. 인적이 드물어 해찰하며 걷노라면 온전히 내 세상이다. 문득 길가 나뭇잎에 잔뜩 붙은 송충이 떼가 눈에 들어온다. 몸통의 송송한 가시털을 보니 스멀스멀 소름이 돋는다. 보드라운 잎사귀가 태반이나 뜯겨 잎맥만 앙상하다. 푸르른 녹음의 절정을 누리기도 전에 비명횡사 지경이다.

징그러운 송충이에 대한 불쾌감과 새잎에 대한 연민이 나를 충동질한다. 송충이가 붙은 가지를 통째 꺾어 길바닥에 내동댕이친다. 그것들을 밟아 문지르려는데 한 마리가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든다. 네가 뭔데 우리를 이리 핍박하느냐고 항의하는 듯하다. 문득 한 생각에 발을 거둔다. 먹이사슬의 상위 계보인 조류의 식량을 수탈하는 행위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개입은 여기까지, 힘이 닿는 녀석은 기어서 나뭇가지로 다시 올라가기를.

따지자면 그것들이 내게 피해를 준 건 없다. 단지 흉측해 보이거나 징그럽다는 이유와 어린잎이 안타깝고 나무가 고사할지도 모른다는 기우에서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벌레의 삶도 우리네 삶과 하등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저들도 지구별이라는 삶의 공간에 엄연히 한 생을 점지받아 태어났다. 주어진 형체를 바탕으로 생존본능과 유전자가 일러주는 삶의 방식대로 먹이인 잎을 갉아먹으며 살아간다.

농민들은 농약과 화학비료의 유혹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농약의 보호 아래 자란 채소는 부잣집 귀공자 같다. 큼직하고 말쑥하고 먹음직스럽다. 내 텃밭의 작물은 비렁뱅이 같다. 벌레에 뜯겨 지시가 들대로 든 야채는 자기 보호 물질을 분비해 벌레에 저항하느라 제대로 자랄 틈이 없다. 찌질하게 볼품없고 구멍이 숭숭 뚫렸다. “할아버지 맞나요?” 손녀 이유식 재료로 보낸 배추 속에 벌레와 똥이 가득한 사진과 함께 딸이 톡을 보내왔다. 몸에는 훨씬 이롭다며 궁색하게 변명했다.

손바닥만 한 텃밭을 가꾸는 나는 농약이나 화학비료 사용을 자제한다. 가을에 모은 낙엽, 음식물이나 한약 찌꺼기를 퇴비로 사용한다. 밭은 지렁이, 달팽이, 굼벵이와 곤충들의 놀이터다. 보는 족족 잡아내지만 중과부적이다. 어레미가 된 얼갈이배추를 보며 한숨짓자니 옆의 선배가 그냥 두면 자기 밭으로 번진다며 농약을 뿌려주었다. 텃밭 체험하러 따라온 손녀가 개미에게 물리자 뒷밭 아저씨가 구멍에 약을 쳐주었다. 내 것에 위해를 가하는 벌레에게는 우주적 관점도 명분을 잃고 이율배반적으로 된다. 극구 말리지도 않고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

사람들은 해충을 박멸한다며 맹독성 살충제로 많은 벌레와 곤충을 죽였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것들을 잡아먹으며 사는 조류가 먹이 부족과 독성으로 사라져갔다. 조사에 의하면 지난 50년간 북미지역에서만 30억 마리의 조류가 사라졌다고 한다. 어린 시절 가장 흔하게 보았던 참새와 제비도 어느덧 쉽게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생태계는 파괴되어간다.

유발 하라리가 그랬나.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게 가장 큰 사기 사건이자 자연생태계 교란의 주범이라고. 수렵 채취 시대에는 필요한 만큼만 구해서 먹었지만, 농경을 시작하면서 정착하여 안정적으로 먹을 것을 취하는 대신 인류는 노동에 시달리게 되었다. 필요 이상 생산한 곡식을 사고팔며 빈부격차와 지배계층도 생겼다. 노동을 덜어 줄 가축을 기르게 되면서 동물의 질병이 인류에게 전염되었다. 항체가 없는 괴질에 앓다가 속절없이 죽어갔다. 코로나 19의 바이러스도 동물로부터 전염된 응보가 아닌가.

인간은 자기 이익과 관련된 일에는 가차 없이 자연에 위해를 가한다.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 돼지 열병의 확산을 막는다며 멀쩡한 놈까지 포함한 수천, 수만의 닭, 소, 돼지를 살처분해 매장하였다. 자기가 가꾸는 작물 주변에 돋아나는 풀들은 잡초라는 이름으로 보는 족족 뽑아낸다. 작물에 그늘이 지면 멀쩡하게 자라는 나뭇가지를 쳐낸다. 밑둥치 껍질을 도려내고 제초제를 뿌려 고사시키기도 한다.

그런 횡포는 같은 인류 간에도 볼 수 있다. 자기 이익을 위해 가혹한 갑질이나 위해를 가하는 강자로 인해 약자는 고통받는다. 국가 간에도 자원과 기술의 독점을 위한 개발 전횡은 우려스럽다. 지구의 허파라는 밀림을 개간하는 환경파괴는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협한다는 경고는 쇠귀에 경 읽기다.

조물주가 있다면 당신이 공들여 만든 지구별의 안녕을 위해 한 번쯤 개입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내가 아침에 송충이에게 소심한 위해를 가했듯이 그분도 수없이 개입하고픈 자연의 순환과 지구 사 地球 事에 극도의 인내력으로 자제하고 있으려나. 코로나 19가 인류에게 보내는 그분의 자제된 경고이자 개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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