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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등 굽은 나무 / 이인환

by 부흐고비 2022. 5. 26.

아차산(峨嵯山)을 오르는 중이다. 산 중턱쯤에서 언니가 멈춰 선다.

“이 나무좀 봐라, 나는 이 나무를 보면 그냥 못 지나가겠다. 그래서 이렇게 꼭 쓰다듬는다.” 언니가 말하는 나무를 보니 내 어깨 높이쯤, 한 가지는 남쪽으로 또 한 가지는 서쪽을 향하여 ㄷ자 모양으로 휘어져 있다.

“이 나무가 이렇게 휘어져 자라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겠니, 너무 안쓰럽다.”

언니 말을 들으며 나도 한번 나무를 쓰다듬는다. 반드레한 느낌이다. 나무가 거칠거칠하지 않고 반들반들한 것을 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휜 모습이 안쓰러워 아마 나무를 많이 쓰다듬었나 보다.

나는 휜 나무를 쓰다듬고 올라가면서 그렇게 휘어졌는데도 용케 살아남은 나무가 신통하게 생각되었다. 등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그 이유는 곧게 올라간 나무는 목재로써 쓰임새가 많아 곧 베어지고, 목재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은 나무만 남을 수밖에 없으니 그런 말이 생겼을 거다. 이 등 굽은 나무도 오래오래 살아서 아차산을 지키는 큰 나무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사자성어를 떠 올린다.

이 나무는 무슨 연유로 이렇게 ㄷ자로 휘게 되었을까? 아무래도 자라면서 외부로부터 어떤 자극을 받았음에 분명하다. 자연스레 그렇게 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상처를 입었든지 아니면 비바람에 꺾였다가 살아났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냥 자연적으로 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예기치 않은 사건을 만나게 된다. 모든 일들은 예고 없이 대책 없이 오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자연재해를 만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인재를 만나기도 한다. 그렇기에 노자의 도덕경에도 화(禍)는 복(福)에 의지하고 있으며 복(福)은 화(禍) 속에 엎드려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결국 세상사 길흉화복(吉凶禍福)은 화와 복이 같이 공존한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지 말고, 지금 불행하다고 말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행복의 정의를 요즘은 ‘경제적인 안정을 뜻’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은 창문으로 달아난다.’라는 속담도 생긴 것 같다. 민생고를 해결 못하는데 행복할 수야 있겠는가. 오죽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도 있고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할 사람 없다’는 말도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산을 오른다. 내 경우도 전혀 예고 없이 준비 없이 경제적 타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나 또한 어떻게 해결할 방법도 없이 그대로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방법이라는 말도 있다. 그 당시 나는 텔레비전 방송을 볼 때는 다른 프로는 안 보고 오직 ‘최고의 요리비결’이라는 요리 프로만 보았다. 내가 요리 프로를 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양식 중에서 음식문화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고 지금 형편이 어렵다고 영원히 어렵게 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게 되어 있고 이 시기가 지나가면 분명 지금보다 나은 상황이 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제 가을과 겨울 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산 것처럼 내 분수를 지키며 내가 처한 상황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생활하려 한다. 그중에 하나가 글을 쓰는 일이다. 문제는 글을 쓰면서 부족한 점이 많아 항상 고민을 하게 된다. 나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글을 쓰는데 갖추어야 될 문사철(文史哲), 즉 문학, 역사, 철학에 대해 너무 무지한 것을 알게 되었다. 독서도 많이 부족하고 외국어도 전혀 백지상태고, 기본 실력이 너무 없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기억해 내고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모든 것은 아는 것만큼 느끼는 것만큼 보이는 법이다. 아까 내가 쓰다듬었던 등 굽은 나무도 굽은 등을 견디며 살아가는 과정 또한 사람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나 사람이나 시련은 존재한다는 것, 나무나 사람이나 인내는 필요하다는 것, 비록 쓰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존재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 등등.

내려오는 길에 다시 등 굽은 나무를 쓰다듬는다. 눈물이 난다. 굽은 등을 가지고 비바람을 견디며 살아온 세월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등을 쓰다듬으며 그동안 고생했다.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거다 이렇게 위로해 주는 착각에 빠진다. 누군가를 위로하면서 나도 위로를 받는 모양이다.

어떤 이는 아차산(峨嵯山)을 농담 삼아 웁스 마운틴(oops mountain)이라고 영어로 부른다고 한다. 나 역시 살아가면서 실수나 실패를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웁스’하고 웃으면서 지내야겠다. 아차산을 갈 때마다 등 굽은 나무를 두 손으로, 마음을 담아 쓰다듬으며 격려해 주려 한다. 이렇게 휘어져 견디느라고 수고했다. 우리 앞으로도 잘 견디자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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