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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서울 뻐꾸기 / 윤모촌

by 부흐고비 2022. 5. 31.

이른 아침 뒷산에서 우는 뻐꾸기 울음이 마을에 가득하다. 소나기가 걷힌 뒤라서 물기를 머금은 울음소리가 싱그럽다.

해마다 듣는 소리지만 그놈의 울음을 듣고 있으면 까닭도 없이 수심에 잠겨, 화창하면 화창한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처량하기 그지없다. 봄이 깊어져 여름으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성화같이 울지는 않으나, 간간이 바람을 타는 먼데 소리가 심금을 더 울린다.

그 울음소리가, 야삼경(夜三更)에 우는 접동새만 못해도, 봄날 한나절 우는소리엔 애상(哀傷)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겠으나, 이 강산 깊고 짧은 물줄기의 유역과 높고 낮은 산자락에서 우는 그놈의 울음은 청상(靑孀)의 한(恨)처럼 처량하다.

가난하고 서럽던 역사를 정선 아리랑으로 뽑아내는 것 같기도 하고, 갈라진 산하의 시름을 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놈의 울음에, 그래서 고향을 잃은 애상이 도지곤 한다.

한여름 울고 돌아갈 때는 산딸기 같은 피 눈곱을 달고 돌아간다는 말을 들었다. 피 눈곱을 달만큼 우는 것이라면, 그놈에게도 까닭이 있다는 말인가. 서울의 복판에서 뻐꾸기 울음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서울 뻐꾸기가 청승맞게 우는 것은 서울이 서러워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지만, 호사스런 세월 속에 묻혀 살면서 그놈의 울음을 왜 슬프게 들어야 하는가. 개구리의 소란스러운 울음이나 뻐꾸기의 울음소리 혹은 귀뚜라미 울음 따위에 마음을 쓰게 되는 것은, 삭막한 도시 속에서 아직은 정감의 샘이 남아있다는 증거인가. 서울 속에서 새소리 벌레 따위 소리를 들으며 산다는 것은 그래서 조금은 위안이 된다. 뒷산 뻐꾸기는 마음 밭에 그렇게 물을 준다.

뻐꾸기 울음을 처량하게 들은 것은 옛사람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자전(字典)에 적혀 있기를 슬피 우는 놈이라 했다.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산다고 하지만 우리와 정감이 다른 유럽 사람들도, 슬피 우는 소리로 듣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무려나 나는 뻐꾸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서울의 봄이 삭막할 따름이다.

뻐꾸기 울음은 분명 '뻐꾹'하고 들린다. 음운 체계에서 오는 의성어가 민족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민족마다 다르게 표현되는 그 울음소리가 흥미롭다.

한자명으로 뻐꾸기의 이름은 곽공(郭公) 또는 포곡(布穀)이라 적는데, 일인들이 말하는 울음소리는, 곽공(郭公)의 자기 나라 발음 '각꼬오'이고, 중국 사람은 포곡(布穀)의 한자음 '뿌꾸'이다. 음운 체계가 다르면 청각도 다르다는 말인지. 중국인의 뿌꾸 풀이가 그럴듯하다.

뻐꾸기는 봄에 울기 시작하는 새로, 씨를 뿌리라(布穀)는 뜻으로 따다 붙인 것이 농경 사회의 대륙인답다. 그들에게선 가뭄 속의 농부들에게 부지런히 씨를 뿌리라며 운다고 노래한 시구도 보인다.

서양의 쿠쿠 왈츠로 미루어 보아도, 뻐꾸기는 동서양이 한 가지로 서정의 정감은 일깨우는 놈이다. 야성이 강하기로는 다른 새와 유별나다.

뻐꾸기 울 때쯤이면, 나무를 타고 올라 새끼를 잘 꺼내는 소년이 있었다. 꾀꼬리 새끼나 때까치 심지어는 까마귀 새끼까지 꺼내다가 길들인다고 하던 그가, 뻐꾸기만은 어렵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사람의 손끝에서 자라고 나서도, 마음을 주지 않아 우는 법이 없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창덕궁 뻐꾸기 소리를 들어 보았느냐고 하던 사람의 말이 생각난다.

우는 모습도 여느 새와는 다르다. 나무의 가장 높은 촛대 끝에 앉아 몸을 돌면서 운다. 방향을 바꿀 때마다 멀리서 들리다가도 이쪽으로 돌면 가까이서 들려, 마치 강약을 붙여 피아노와 포르테로 우는 격이다.

나는 그렇게 우는 모습을 고향 뒷산에서 보아왔다. 생장과정도 특이해서 남다른 습속을 지녔다. 제힘으로 새끼를 치지 못하고,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넣는 것부터가 그러하다. 그런 것만이 아니고, 신세를 원수로 갚는 놈이다. 알 수 없는 것이 조물주의 조화인데, 뻐꾸기가 바로 그런 놈이다.

남의 둥지-개개비의 집에 알을 낳아 넣으면, 개개비는 제 알보다도 큰 뻐꾸기 알을 함께 품는다. 뻐꾸기 알은 개개비 알보다 먼저 깨어나고, 이때 희한하고도 기절초풍할 일이 벌어진다. 털도 나지 않은 놈이 움직이기 시작하여 필사적으로 개개비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천 길 아래도 밀어 내뜨린다.

그놈은 개개비의 품을 독점한다. 이런 광경을 TV 화면에서 지켜보면서, 배은망덕으로 생존을 잇게 해준 신의 섭리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놈의 울음이 사람의 심금을 휘어잡는다.

너누룩하던 하늘이 또 가라앉으며 한 줄금의 빗줄기가 시원스레 스쳐 간다. 그쳤던 뻐꾸기 울음이 비 걷힌 녹음 속에서 다시 들려오고, 서울의 아침은 소음 속에서 시작이 된다.

녹음의 골짝에서 질펀하게 우는 뻐꾸기의 울음을 깊은 산정(山情)에 안겨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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