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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노적봉의 소나무 / 김경자

by 부흐고비 2022. 6. 13.

갈바람 말미에 선생의 육성이 들린다. 끝없이 울리는 소리에 눌리어 더 이상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목소리는 대하소설 『혼불』*의 모든 것이 저장되어 있는 공간을 채웠다.

잠깐 서성이는 동안 나의 심장이 빨라졌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의 생전 육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고요하게 퍼지는 선생의 메아리는 어쩌면 우리 모국어에 대한 신비한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는 듯했다. 칼바람이 일어나는 한 겨울밤 걸음을 옮기며 한 줄의 글을 쓰기 위해 달이 기울도록 방문을 활짝 열어둔 선생의 모습을 떠올렸다.

처음 선생을 알게 된 것은 모 라디오방송국의 어떤 프로그램에서였다. 진행 중인 DJ는 그의 작품과 생애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만 17년간 오로지 대하소설 『혼불』에 온 정신을 투혼 하며 집필했다고 한다. 십수 년을 한 작품에 몰입하는 일은 예사롭지 않다. 누군가는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쓸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선생이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의 초청으로 한국학과에서 강연했던 글 <나의 혼, 나의 문학>을 고급 한국어로 채택하여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방송을 접한 이튿날, 사라져 가는 다양한 어휘와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방언과 그 상황의 배경 묘사가 탁월하고 실감 나게 그려낸 그녀의 작품 『혼불』 한 질을 구입했다. 당시에는 모국어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작품 내용의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작품집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도록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골랐다고 하니 작가의 정성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뒤늦게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한글이 우수성과 과학적인 체계로 이루어져 백성이 제대로 읽고 쓸 수 있도록 창제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학습을 통하여 국어 표기법의 역사적 변화와 맞춤법의 원리와 실제를 겨우 이해할 뿐인데 작가는 어떻게 방대한 표준어와 방언을 드넓은 세상에 드러냈을까. 얼마나 많은 공부와 연구를 했을까.

『혼불』은 주인공 강모의 혼례식부터 전개되어 남원 매안 이씨 집안 종가를 둘러싼 가족사를 나타낸다. 조모, 부모님, 효원, 3대가 주인공이다. 매암리 사람들, 일제 강점기의 삶이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언어와 문체 유형이 매우 다양하여 『혼불』 외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대반, 하님, 차일, 떡시루의 번, 부엌 바라지, 햇빛 오라기, 까작까작, 두실두실 모촘모촘, 벙울벙울, 쑤실쑤실, 우렁우렁, 얼금벌금, 까락까락, 어씩어씩, 허펑지펑, 가녈가녈… 넓은 세상만큼 표현도 각양각색이다. 그 누구도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각 권마다 참으로 많은 방언과 구어체가 있어 큰 노력을 기울였음이 매우 또렷이 나타난다.

작가는 표준어와 방언을 구분하지 않고 자유스럽게 써 내려갔다. 어떤 구절은 우리 민족 특유의 창을 불러도 좋을 만큼 문장이 친근하다. 나눔을 실천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처럼 가깝다.

책을 산 후 삼사 년 뒤 『혼불』 문학관이 설립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너 해 전 늦가을에 『혼불』의 주 배경이 되었던 노봉 마을과 문학관을 돌아보게 되었다. 가지 못하고 보지 못하면 더욱 궁금한 법이다. 소설 속의 숭고하고 절실한 언어가 탑재된 곳에 가기 전에는 작가의 내면이 강직한 성격을 가졌으리라 믿으며 신분 해방을 꿈꾸는 하층민에게 정신적인 우상일 거라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직접 가 본 느낌은 육성에는 따뜻함이 배어 있고 소설의 배경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청호 저수지에 가을빛이 황금가루처럼 쏟아졌다.

문학관에는 소설 속의 대표 장면이 디오라마로 전시되어 있다. 작품 속의 배경이 된 1930년대 매안 이 씨 종부의 3대 이야기와 더불어 효원의 혼례식, 인월댁 베 짜기, 청암 부인 장례식, 조왕신 습속, 윷 점 이야기 등이다.

늦가을의 하늘은 수채화만큼 맑고 투명하다. 탁 트인 전망, 나무와 꽃은 완연한 황금빛 햇살을 받아 바다 위로 떨어질 듯 자글자글 끓어오른다. 한옥으로 지은 문학관 뒤란에는 노적봉의 소나무가 우줄우줄 자라 문학관 지기가 따로 없다. 앞마당에는 『혼불』 본문 중에 있는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 (‘일천 번의 가을 동안 즐겁고 일만 년의 세월 동안 복을 누린다’) 글귀가 새겨진 기념석과 꺾임새 형태의 소나무가 방문객의 눈길을 끈다.

문학관 마당에 낮게 깔린 금잔디는 방금 빗질을 마친 듯 늦가을 햇발을 받아 윤을 내며 우거졌다. 높푸른 하늘에 때때로 지나가는 물결구름은 선생이 그토록 갈망하던 모국어를 실어 온 것인가. 아니면 뜨겁게 열망하던 우리말과 글을 실려 보냈을까. 작가는 언어의 최대 경지를 향하여 걸어가 긴 연서로 우리 시대의 가장 어둡고 아팠던 일제 강점기의 상처를 쓰고 또 썼다. 글로써 해원 했으리라 믿어진다. 문명의 발달을 거부한 채 만년필을 고집하며 일만 이천 장의 원고지의 속내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빨리 쓰는 양보다 만년필로 천천히 생각하면서 쓰는 글이 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라 믿으며 꼼꼼히 원고를 쓰는 작가였다고 한다. 원고를 수정할 때는 종이를 이곳저곳에 붙여가며 작가로서의 충실함을 보여주었다.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작가가 남긴 글에 눈길이 계속 이어진다. 지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분량을 쓰기까지 얼마나 힘이 드는 작업이었는지 충분히 알 수가 있다.

어떤 작가이든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글이 나오기까지는 인고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일 게다. 글쓰기의 힘듦을 이보다 절실하게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일단 태어나면 이미 정해진 시간을 이어갈 뿐이다. 대전제와 소전제, 두 전제로 짜인 삼단논법처럼 사람에게는 틀처럼 짜인 죽음이 있다. 사람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은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죽을 때라고들 한다. 세인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된 『혼불』 작가 최명희 선생은 문체를 꽃피운 문인이자 모국어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 훌륭한 작가였다.

『혼불』을 읽음으로써 모국어의 감춰진 비밀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세상을 더 넓게 보게 되었다. 10권의 책을 읽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내 생애에서 빠질 수 없는 목록 1호로 기억될 것이다.

노적봉의 소나무 끝에 걸린 낮은 구름이 선생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듯하다. 얼굴에 닿는 바람이 뜨겁다.

* 혼불 : 사람의 혼을 이루는 바탕. 수명이 다하여 사람이 죽으려면 미리 혼불이 그 집에서 공중으로 나가는데 이 불을 말한다. 남자는 대빗자루 모양의 길고 큰 불덩이가 나가고, 여자는 접시 모양의 둥글고 작은 불덩이가 나간다. <영혼>을 비유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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